에브리바디 원츠 썸!!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조이 도이치 외 출연 / 콘텐츠게이트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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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아리게 하는 단어들이 있다. 숨 막히게 버거워서 심호흡을 길게 해야만 소화할 수 있는 그런 단어들, 첫사랑이 그럴지도 모른다. 첫사랑이 시작되던 때의 우리는 어땠을까. 나와 너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나. 우리는 풋풋했다. 서툴렀다. 그래서 싱그러웠다. 그 자체가 아름다웠다. 우리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서 빛나는 순간이었다. 청춘이었다.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마다 잊지 못할 것들이 있다. 청춘이 그렇다. 청춘이란 어쩌면 꽃잎이 저버린 후에야 앓고 마는 뒤늦은 열병일지도 모른다. 청춘 안에 있을 때에도, 청춘을 떠나보낼 때에도, 청춘과 멀어진 때에도 모두 다 청춘을 앓는다. 지독할 정도로 따뜻한 봄날이었기 때문이다.

종종 그리운 시절에 대해서 묻곤 한다. 나의 시대에 대해서 넌지시 질문을 던지고 나면 눈을 찌푸리고 만다. 자세히 떠오르지 않아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청춘을 보내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다시 묻는다. 나의 부모님의 시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그 시절은 어땠을까.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도로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땅에 닿을 듯이 낮은 차체에 올라탄 채 얼굴만 덩그러니 드러낸 운전자가 흙먼지를 이끌며 막의 끝으로 사라진다. 흙먼지가 벗겨지고 저 먼 지평선이 뚜렷해지며 부모님의 청춘시대가 필름사진처럼 빛바랜 형상으로 나타난다.

 

내가 세상에 울음을 터뜨리기 훨씬 이전의 시절임에도 낯설지 않은 것은 모든 기록이 절절하게 남아 있어서다. 표지가 누렇게 뜬 사진앨범에서 심심찮게 접해온 시절. 드라마와 영화에서 마주할 수 있는 시절. 그 시절의 청춘은 가까이에 있다.

 

에브리바디 원츠 썸!!(Everbody Wants Some!!)이 미국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 청춘물인데도 낯설지 않은 건 이처럼 청춘이란 단어에 담긴 의미가 전 세계적으로 같은 탓일지도 모른다.
직설적인 원색 계통의 의류, 허리를 꽉 졸라맨 허리띠, 뒤집어쓴 모자-홀드 사이로 머리카락을 빼주는 센스를 지녀야 진정한 패션리더인 법-와 알이 큰 안경까지 패션에 포인트를 주는 아이템이 그 시절 필수품이던 시절이 낯설지 않은 건 너무나도 많이 접해본 과거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과거라는 단어가 나오는 그때부터 어딘가 모르게 그리움이 묻어 나온다. '에브리바디 원츠 썸!!'은 그립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마냥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영화는 사람을 꽤 전투적으로 만드는데, 미칠듯한 지겨움이 훅 치고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 중반에 이르러 그리운 과거와 관련된 소품들이 제 역할을 끝내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지루함이 쏟아진다. 이는 영화가 줄거리에 충실해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줄기는 '개강 전까지 3일 15시간! 미친 듯이 즐겨볼까?'라는 문구에 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이 영화는 3일 15시간 동안 미친 듯이 노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큰 줄기가 되는 사건이 없다. '삐―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어떤 어떤 일이 일어나서 어떻게 어떻게 흘러 어떤 어떤 일과 마주쳤는데……'처럼 빠져들게 할만한 이야깃거리가 없다. 단연 사건이 없으니 갈등이 없다. 그게 청춘이 가진 무서운 성질이다. 청춘이란 그런 거다. 흐름의 안에 있을 때 모든 일이 사건이자 갈등으로 불거진다. 일분일초가 더디게 느껴지고 지루하다. 때론 과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건 후에야 재정립이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한가롭고 유쾌한 이벤트로 남기 마련이다. 이들(영화 속 등장인물)에게 3일 15시간은 가장 큰 갈등이자 사건이며, 지루하고 고루하지만 필요한 전야제인 셈이다.

 

전야제에 관한 불편한 사실이 영화의 단점을 부각시키는 데 다음과 같다. 하나, 전야제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 하나, 전야제로만 축제가 끝나버린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이제 시작되려나 싶을 때 영화가 끝나버리고 만다. 맥이 탁 풀리는 거다. 마치 콜라캔을 따자마자 거품이 캔을 흥건히 적실 정도로 터져 나오고, 수습하기도 전에 탄산이 푸시시 맥 빠지는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튀다 잠잠해버린 것처럼 맥이 빠진다. 한바탕 소동 끝에 마시는 김빠진 콜라의 맛을 아는가. 웁스.

하지만 김빠진 콜라에도 강점은 있다. 아주 진한 단맛이 남는 법. 김빠진 콜라만큼 단맛이 혀끝에 오래 맴도는 음료도 없다. 즉 이상하게도 여운이 남는 거다.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도 없고(그저 미친 듯이 노는 것뿐), 영화의 절반 이상이 의미 없는 헛소리(끝나고 기억나지도 않는)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묘한 여운이 남아버린다.
그건 보는 이가 플러머의 말("그래도 올해 재밌겠어.")에 동의해서다. 눈을 감는 제이크의 얼굴에 편한 미소가 떠오를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 무엇인지. 전야제가 끝난 후 펼쳐진 축제를 우리는 몸소 기억하고 있다. 청춘이니까. 말할 수 있다. "그래, 그해는 재밌었어."


청춘은 과도기일지도 모른다. 아이도, 성인도 아니라서 서툰 행동 하나, 하나가 혁명인 시절, 우리는 청춘을 아름답게 극복했다.


이제 사진앨범을 덮는다. 그래도 난 모자를 뒤집어 쓰진 않을 거야.

 

"난 신들이 시시포스에게 집중할 걸 줬다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했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과제를 준 거잖아. 남들 눈에 부질없어 보일지라도 노력할 일이 있는 건 축복이지."

"웃기긴 해. 산꼭대기로 바위를 올려도 올리는 족족 떨어지고. 근데 인생이 다 그렇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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