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침에 출근하는 경로는 이렇다.
집에서 화실까지 가는 길은 10여분 가량 소요되는데 도시고속도로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굳이 다른 길로 가자면 최소 30분 이상 걸리는 둘러가는 길이므로) 고속도로이긴 하지만 이미 고속도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고 내가 가는 경로는 도시고속도로의 끝부분, 금정구 방향이므로 별로 고속도로란 느낌을 못 느끼고 다닌다고 봐야 맞다. 아무튼 이 길을 몇 년째 다니면서 출근하는 기분은 대체로 상쾌한 편인데 그 이유는 주변의 자연 때문이다.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 직장인들이 막 출근이 끝난 시간대라 여유롭기도 하고 거리가 가까우니 시간의 압박감에서 자유로우니 더 그럴 수도 있다. 이런 내 출근길은 넓게 펴진 하늘을 보며 딴 생각에 빠질 수도 있고 길 도중에 만날 회동저수지를 보는 즐거움도 짧지만 강렬하다.
어디 그 뿐인가? 고속도로 끝 무렵에 펼쳐진 전경은 금정산의 능선이 쫙 펼쳐져 계절과 어우러져 하루도 똑 같은 풍경을 보여주지 않으니 매일 매일이 흥미진진하다. 이런 풍경들은 사계로만 구별한다는 것은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게다가 날씨라도 변하면 그에 따라 또 얼마나 많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 나의 출근길은 이 모습을 보느라 절로 속도가 늦춰지곤 하지만 다른 바쁜 발걸음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하면서 간다.
이렇게 출근길 풍경을 들이대는 이유는 안준철 시인 때문이다. 낭만 샘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매사에 낭만적인 이이는 산책을 무척 사랑하고 틈틈이 즐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대부분 산책 중에 만난 꽃 이야기거나, 도중에 겪었던 일이거나, 아니면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의 시선에 걸린 모든 풍경들이 때로는 멀리 전망되거나 아니면 숨결이 끼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서 관계를 맺기도 하고 이야기가 엮인다. 그렇다고 온전히 시로만 이야기를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퇴직 전 순천에 살 때부터 그 넓고 꼬불꼬불한 순천만을 구석구석 다니며 이야기가 새겨진 사진을 찍어 부지런히 카페에 올렸다.
그의 사진엔 갈대사이로 부는 한 줄기 바람도 찍혀 있었고, 순천 봄의 오후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시간을 그대로 옮겨주기도 했고, 여자만(순천만) 걷기를 해보자고 은근히 사진으로 꼬시기도 했었다. 그의 이런 작업은, 아니 산책은 고향인 전주에 돌아와서도 계속 이어졌다.
이럴 때마다 나는 공연히 발정이 일어 일탈을 꿈꾸기도 하고, 그의 시선과 시선이 가닿은 세계를 부러움과 놀라움으로 오래 들여다보기도 했었다. 그러니 오늘은 약간의 시샘으로, 나도 산책은 아니더라도 일상 중에 이런 정도는 하고 산다는 시위성으로 괜히 주절거려봤을 뿐이지만 말하고 나니 더 초라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를 소개하려면 시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다. 그래서 몇 편의 시를 소개한다.
4월, 조금 이른 아침
간밤에 춘설이 내렸나
산길에 눈이 조금 쌓여 있다
바람 조금 차갑고
햇살 조금 따뜻하다
차가운 것 조금
따뜻한 것 조금
서로를 조금씩 내어놓고
흥정을 붙이더니
어르고 달래더니
이내 알맞게 섞인다
그사이
초록, 조금 짙어진다
-<조금> 전문
요즘 세상에 조금으로 만족할 사람들이 어디 있나? 다들 많이 가지고도 더 가지지 못해 아득바득하고 조금보다 더 많이 가지고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적다고 여기는 세상이 아닌가? 그 반면에 힘든 일은 조금도 싫고 손해 보는 일은 조금도 안 하려는 각박한 세상에서 조금이란 말이 외려 낯설다.
시인은 춘설이 조금 쌓인 산길에서 바람은 조금 차갑지만 햇살이 조금 따뜻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산책길에 바람이 아직 차서 나갈지 망설이다가 햇살이 따뜻해서 나설 결심이라도 했나보다. 그리곤 차가운 것과 따뜻한 것이 적당하니 현 상황이 괜찮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초록은 조금 더 짙어지고.
이런 시인의 긍정적인 태도는 다른 시에서도 나타난다.
암 진단을 받고 보니
많은 것들이 달라 보인다
세상은 더 아름답고
사랑할 것들이 더 많아졌다
좋은 일이다
-<좋은 일> 부분
암 진단을 받고 보니 많은 것이 달라 보인단다. 세상이 전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할 것이 많아질 수도 있다고 수긍은 되는데 그게 ‘좋은 일’이라고 까지 여겨질까? 그래도 다행이단 심정까지는 몰라도 좋은 일이라고 까지는 아직...
작은 나무처럼 서있는
한 소녀의 자람이
나의 시듦으로 인한 것이라면
억울할 것 같지 않다는 즐거운 계산
-<병원 나들이 가는 길> 부분
우리 연배쯤 되면 아마 이런 비슷한 생각이 다들 든 적이 있긴 하겠다. 나도 얼마 전 손자 녀석들 재롱 보다가 참 세월 빠르다는 걸 실감하다가 그만큼 늙으신 어머니가 가실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울적해진 적이 있었던 것처럼. 그럼에도 그게 즐거운 계산이 될 거라고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나이 차만큼 마음을 더 닦으면 수긍이 될까마는.
병원으로 나들이간단 말도 낭만샘이 아니면 쓰지 못할 말이겠다.
두어 편 시를 소개하긴 했지만 내가 그럴 입장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시를 말할 수준이 못되는 나로서는 시인의 시에 감탄만 할 뿐이지 그 이상 뭐라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주절대며 글을 잇는 이유는 그를 좀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렇게 좋은 시가, 시에 담긴 그의 마음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라서다. 그리고 시인은 더 힘내서 많은 시를 써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만 한 가지 욕심은
내게 허락된
아니, 허락되었을지도 모를
내게 남아 있는
아니, 남아 있을지도 모를
천 번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기를
-<천 번의 산책> 부분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돌아간다고 노래했지만 그는 산책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보다. 그러나 아직 이런 시는 섣부르다고 생각한다. 희망이기는 하되 너무 겸손하고 낙관의 대가답지 못한 글이다. 천 번이라면 어림잡아 삼 년이 못되는 시간인데, 이리 연약한 말이 어디 있나. 천 번이 아니라 못해도 만 번은 해야 하고 굳이 천 번 이라면 열흘에 한 번씩 해서 천 번을 하던지 해야지 무슨... 그래서 시인의 시중 이 시는 마음에 안 든다고 감히 말한다. 그러니 열흘에 한 번씩 산책하고 꽃들과 만나고 사는 이야기도 더 하고, 나머지 아홉 날은 장모님과 연속극도 좀 더 보고 사모님과 장도 가고, 가끔은 우리 같은 덜떨어진 인간에게 좋은 말을 해줄 시간도 내달라고 이 글을 통해 강조해서 말한다.
그러니 며칠 전 통화에서처럼 이번 시집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