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의 왕자 - 노천명 수필집 노천명 전집 종결판 2
노천명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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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의 왕자

노천명 수필집




명수필은 시나 소설 못지않게 오랜 시간 두고두고 회자되며 사랑받는다. 하지만 그만큼 명수필이라고 불릴 만한 작품은 극히 드물다. 지난 달 출간된 노천명 전집 중 수필집인 언덕의 왕자는 명 수필집이라고 불릴만한 책이다.

우리에게는 시인으로 많이 알려진 노천명은 사실 시보다 수필을 더 즐겨 쓰고 더 많이 썼다고 한다. 생에동안 단 2권의 수필집만이 출간되었지만 실은 그보다 더 많은 작품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서고에서 잠자고 있던 그의 글들을 꺼내 새롭게 발표했다고.


그동안 고향인 황해도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노천명의 수필 속 주된 관전 포인트였다면 이번에 새로 소개 된 수필들 속에는 당대의 신여성적인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몇십 여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공감이 가는 통찰력 있는 예리한 문체와 재치있는 표현으로 독자로 하여금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흡사 예전에 안네의 일기를 읽는 것처럼 그의 글 속에 묘사된 많은 풍경들과 장면들이 절로 눈앞에서 그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 이상으로 몰입할 수 있었고 한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이라고 여겨질만큼 재미있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당시의 생활상이나 시대상이 고스란히 다가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노천명 수필집에서 가장 좋았던 글을 바로 책의 맨 앞에 수록된 '진달래'와 '비'라는 수필이었다.


'동관 대궐 뒤니, 비원이니 내 관심을 끌 것이 못되고 오직 진달래꽃이 내 온 정신을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나는 멀거니 서서 한참동안을 건너편 동산 안의 진달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물이 나도록 반가웠다. 내 어릴 때 잊어버린 친구, 아니 죽었던 친구가 지금 저 동산 안에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다. (중략) 이러면서 나와 함께 집에까지오게 된 진달래는 산엘 갔었다는 일과 치마를 찢었다는 일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는 나와 함께 내 손에서 무색하기 짝이 없다 "나는 어려서 꽃을 꺾으면 그 똑똑 소리 나는 것이 아프다는 소리라는 말을 어른들한테서 듣고 난 뒤로는 꽃을 보기는 해도 꺾기를 겁냈는데 저것은 어떻게 돼먹은 게 저러냐?" 고 하시며 한바탕 꾸지람을 내리시기는 하나 어머니의 손으로 옮겨지고 이어서 백단지를 하나 내어서 여기에 담겨지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아련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나에게도 꽃을 보며 죽은 친구가 살아있는 것처럼 반갑게 느끼는 순간이 올까?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 역시 익살스러우면서도 어렴풋이 향수를 느끼게 만들어 준다. 보고 나서 미소 한 번 띄울 수 있는 글, 이게 수필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 리뷰를 작성하면서 출판사 스타북스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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