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 그 30년 후의 이야기

심리치료 그 30년 후의 이야기 - 심리치료는 과연 내담자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가?
로버트 U. 아케렛 지음, 이길태 옮김 / 탐나는책 / 2020년 7월

심리치료 그 30년 후의 이야기 

심리치료는 과연 내담자들의 인생을 변화시키는가?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아케렛 박사는 심리 상담을 35년 이상 진행해 온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가 처음으로 상담 일을 시작한 시기부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내담자들의 현재 모습을 추적하여 기록한 책이다. 스무 살 초반의 여대생은 어느 덧 쉰셋의 중년이 되었으며 다른 내담자들 역시 30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살아냈다. 

책을 손에 쥔 순간부터 다 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술술 읽어 내려갔는데, 나의 집중력이 특별히 좋기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이 상당히 재미있고 넘치는 몰입력을 선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 도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내담자들의 사례들을 접하면서 소설보다 더 소설스러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인물들의 외양과 성격이 그대로 떠오를 정도였다. 

집필 당시 65세의 나이였던 로버트 아케렛 박사가 30년도 더 전의 이야기를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껴져서 더 재미있었다. 저자는 자신과의 상담이 끝나고 난 뒤 내담자들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고. 이를 연극의 도입에 비유하고 있었다. 내담자들의 인생을 극과 비교했을 때 자기는 그 극의 결말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사실 이런 기회가 흔하지는 않다. 30년 전 내담자들을 다시 찾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던 것을 실제로 실행시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로버트 아케렛 박사에게 기꺼이 감탄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에 소개된 다섯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문제를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문제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복잡한 과거사와 가족사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그 과거에 얽매여 있다고 표현하는게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자신을 스페인 백작 부인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오미와 북극곰을 사랑하는 남자 찰스, 가학기피성애와 공상에 시달리며 발기 불능으로 신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메리.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일종의 도피처로 문제행동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에게 정서적 폭력과 학대를 당하며 불안을 겪었던 나오미를 예로 들어보자. 그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로 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닌다. 그래서 학교 측에서 로버트에게 나오미를 상담해 보라는 부탁이 들어왔던 것이다. 알고 봤더니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상처를 지녔고, 심지어는 자신의 인종마저 부정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백작 부인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도 모두 이와 같은 까닭이었다. 심리 상담을 이어 나가던 중에 나오미가 외국으로 떠나게 되면서 상담은 일단락되었고, 로버트 박사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그녀를 수소문하여 다시 만난다. 나오미가 현재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책을 통해 만나보기를 바란다.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들도 모두 충격적이었다. 책에 나온 사례자들 중에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진 인물도 있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인물도 있고, 과거 만큼이나 비참하게 혹은 안 좋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로버트 박사와의 상담이 몇십 년 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굴곡에도 영향을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확실한 건 다섯 명의 내담자들 모두 심리 상담을 통해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현재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