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홍시뿐이야 - 제1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김설원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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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잠깐 고민이 되었다. 책 소개 위주의 리뷰를 쓸까 나의 감상을 적을까 그러다가 생각나는 대로 한 문장씩 써내려갔더니 줄거리와 나의 소감이 어느 정도 섞인 글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사실 별다르게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 <내게는 홍시뿐이야>는 한 번 책표지를 넘기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게 되는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처음에는 홍시라는 단아와 대안가족이라는 단어 때문에 읽게 되었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는 마지막에 수록된 김설원 작가와 윤성희 작가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서른 살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이 당선되었던 김설원 작가는 최소한의 경제 생활만 하면서 독서실에서 7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단다. 그러면서 매일 20매씩 소설을 써내려갔고 그 사이 삼십 대였던 나이는 사십 대가 되었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천천히 그리고 견고히 쌓아 온 근력이 그를 버티게 했단다. 이 이야기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나도 그처럼 더 치열하고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내게는 홍시뿐이야'라는 소설은 이런 작가 밑에서 탄생했구나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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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홍시뿐>

나에게는 누군가가 떠오르는 제목이었다.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 이름이 바로 홍시다. 친구가 홍시를 좋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SNS로 친구의 소식을 접하면 자연스레 마주하게 되는 존재였다.

창비 블로그를 통해 <내게 홍시뿐이야>라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에는 친구에게 이 책의 존재를 알려 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책 소개를 읽을수록 더 궁금하고 기대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줄거리>

열여덟 아란의 엄마는 임대아파트에서 나와야 할 형편이 되자 돈을 빌려주었던 지인의집에 아란을 맡기게 된다. 그렇게 남의 집에 얹혀 살기도 1년 쯤, 그 집 역시 계속되는 사업 실패와 경제 악화로 망하게 되면서 열여덟살 고등학생인 아란은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집이 망해 딸과 흩어져 제각기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아란의 엄마는 시종일관 당당하고 꿇릴 것 없는 태도로 일관한다. 처음에는 용돈도 보내주고 곧잘 연락도 닿았지만 그것마저 끊겨버리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 엄마마저 부재한 상황에서 아란이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도모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다른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희망이 보이는데...


<엄마를 찾아서>

'엄마를 찾아서'라는 주제는 어딘지 모르게 우리들에게 친숙하다. 어릴 적 보던 소년만화 은하철도 999에도 그렇고 엄마찾아 삼만리라는 유명한 만화도 그렇고. 플란더스의 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등. 우리가 어릴 적 즐겨보던 동심을 자극하는 만화영화 속에서 어려움과 시련을 이겨내며 엄마를 찾아가는 내용의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내게는 홍시뿐이야 역시 이런 '엄마를 찾아서'적 서사가 등장한다. 흔한 소재라고 하여 지루하거나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갑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읽는 내내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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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파산선고. 마냥 낯선 단어만은 아니다. 무작정 아란의 엄마나 또와 아저씨를 탓할 수도 없다. 살다보면 누구나 겪는 감정이다. 삶이 얼마나 고되고 팍팍한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나고 싶은 순간은 또 얼마나 많은지. 물론 아란이 고등학생 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조금은 혹독하게 느껴지기는 한다만 말이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편으로는 얼마나 아란이 어련히 알아서 잘 살 것 같아 보였으면 그랬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홍시'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 그 다음에는 책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대안 가족'이라는 단어에 매료되었다. 요즘 소가족 핵가족 시대를 넘어서 여러 갈래의 대안 가족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형적인 현연 관계나 혼인 관계로 이어진 가족들이 아니라 상호 필요와 서로에 대한 믿음 등으로 이루어진 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동갑내기 친구인 여자 둘에 고양이 넷이 함께 살고 있는 집 같이 말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황도 아니고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평범한 열여덟살 아란이 이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가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란이 막다른 벽에 부딪혔을 때는 나까지 멘붕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해서 읽어나갔다.

맨 처음으로 엄마에게 찢어져 살자는 통보를 받고, 그 다음에는 얹혀 살던 집에서 망했으니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학업비가 없어서 다니던 학교도 관두고, 갈 곳이 없어서 찜질방을 전전하고. 아란의 인생은 평범한 고등학생과 비교하자면 참으로 기구하다. 기구하다는 단어로는 부족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좀 가혹하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했던가. 열심히 지역 소식지를 보면서 일자리를 찾던 도중, 동네 작은 치킨집에서 일하게 된다. 게다가 헐값에 나온 독채방까지 구하게 된다. 그야먈로 굳세어라, 아란아! 이다. 아란의 사연을 알고보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쉽사리 이해하기는 어려운 상황. 치킨집과 월세방에서는 자퇴한 고딩이 아니라 휴학한 대학생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보호자 없는 삶을 꿋꿋하게 견디고 있는 아란은 일자리와 집을 마련한 후 엄마에게 이제 자신과 같이 지내자며 문자와 전화를 여러 번 넣지만 이미 한참 전에 연락 두절이 된 엄마와는 아무런 연락이 닿지를 않는다. 엄마가 즐겨 먹던 홍시만이 아란의 월셋방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한다.

한 편 아란이 일하는 치킨집에서 일 하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하나씩 들고 있다. 아버지의 재혼 이후 독립을 했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 온 사람, 부모의 부재로 인하여 오갈 데 없던 사람, 저를 두고 남편을 간병하려 자신의 나라로 훌쩍 떠나버려 홀로 남겨진 사람, 마지막으로 단둘이 살던 엄마와 흩어져 혼자 삶을 도모하는 사람인 아란까지. 그들은 저마다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서로를 친구삼아 가족삼아 그렇게 지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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