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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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귓속말

 
소설가들의 소설가, 이승우가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고 
그러나 표현되고자 하며 표현되지 않을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
나에게 소설은 그러하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바람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이번 <소설가의 귓속말>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할만한 그런 책이다. 젊은 나이에 등단을 하고 내로라하는 유명 문학상을 여러 번 수상한 이승우 소설가의 이번 신작은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30년간 소설가로 살아온 이의 인생 이야기. 그리고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많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든 문장은, 아무리 잘 쓴 문장도,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 그것이 문장의 속성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이 참여해서 하는 일종의 번역 작업이다. - 54P"

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소설가의 이야기가 유독 더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비단 오늘 내일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 작가에게는 어떤 유년시절이 있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난 건지, 무엇을 양분삼아 글을 키워낸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동안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 온 소설가라면 더욱이 말이다.








<소설가의 귓속말>의 차례는 이러하다. 앞 부분에는 작가가 직접 겪은 경험들과 느낀 것들이 주를 이루었고 중후반부로 가면서 다른 문학 작품들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발견한 것들에 대하여 다루고 있었다. 한마디로 저자의 어린 시절 일화부터 시작하여 여러 문학 작품들을 읽으며 느낀 감상과 의견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고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이나 소재를 다루기도 한다. 영역이 굉장히 유연하고 폭넓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저자가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어떻게 만들고 그려내는지 간접적으로 엿볼수 있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그가 소설을 쓰는 방법들에 대한 언질을 해주려고 제목 안에 '귓속말'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고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본문 중에 '귓속말을 하는 황제와 사신-카프카의 '황제의 전갈'을 읽으며' 라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서 바로 작가가 의도한 귓속말의 정의가 등장한다.


"귓속말은 듣는 자를 말하는 자에게 예속시긴다. 귓속말을 들은 자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귓속말을 들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비밀 준수의 의무를 떠안는다. 듣는 것이 비밀 준수 서약의 방식이다. 준수할 수 없거나 준수하지 않으려면 듣지 않아야 하는데, 듣지 않고서는 준수할 수 없는 것인지 준수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으므로 듣지 않을 수 없다. - 113-114P"

이승우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소설가의 귓속말>로 설정한 이유가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는 그에 대해, 또 그의 소설에 대해 판단할 수 없으므로 우선적으로 책을 읽어야만 한다. 더불와 그와 동시에 저자가 하는 귓속말을 들은 셈이므로 비밀 준수의 의무를 떠안아야만 한다. 물론 이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입소문을 내지 말고 함구하라는 소리가 아닌,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중히 여겨달라는 의미도 들어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속한 세계에 대해 쓰는 것이
곧 그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고
그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
곧 그가 속한 세계에 대해 쓰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그의 또 다른 소설임과 동시에 일기이자, 자서전이자, 자화상이 되는 것이다. 










<< 글쓰기의 기원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프다'이다. 이 아픔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해 있어서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받을 수도 없다.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표현하려면 똑같은 아픔을 경험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아픔은 고유하고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픔은 표현할 수 없는데도 표현되고자 한다. 아니, 어떤 식으로든 표현될 수밖에 없다. 표현될 수없는 아픔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무조건적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표현, 그것이 손을  뻗는 동작이고,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나에게는 소설쓰기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러나 표현되고자 하고 표현되지 않을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아픔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손을 내미는 동작이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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