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김소월 지음, 나태주 시평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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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한국 시문학사의 축복, 김소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김소월이라는 이름 석 자 모르는 이 없을 것이다. 교과서와 참고서에는 매년 그가 쓴 시들이 실려 있고 그의 시를 포함하여 시를 가사로 만들어진 노래들 역시 지금까지 크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학창 시절에 배웠던 진달래꽃, 초혼, 접동새, 엄마야 누나야 등의 작품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 난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 외에 다른 시들 역시 읽어보고 싶어져서 김소월이 남긴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읽게 되었다.


'여는 글 - 시(1장~5장) - 시혼' 이 책의 구성은 이러하다. 여는 글에는 나태주 시인이 김소월 시인을 바라보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언뜻 느낀 바로는 경외의 마음까지 느껴진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는 글을 다시 본다면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김소월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느낌이 들어서 새로웠다.

또한 책의 제일 마지막에는 시혼이 수록되어 있는데, 나도 어떤 글인지 자세히 몰라서 검색을 해 봤다. 시혼이란 명사로 '시를 짓는 마음' 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김소월이 쓴 시론이라는 의미이다. 이 시혼이 쓰여진 계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는데, 1923년 12월호 개벽에 김억이 김소월의 시를 논평하며 '시혼이 내부적 깊이를 가지지 못했다'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김소월이 이에 답하기 위하여 쓴 글이라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시혼은 1925년 5월호 개벽에 발표되었다.


1장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2장 -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3장 -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대로

4장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5장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각 장 별로 가장 마음에 와닿은 시를 골라 보았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지고 잎진 가지를 잡고

미친듯 우나니, 진난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지마를

눈물로 함빡히 쥐여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가는 봄을.

그대가 바람으로 생겨났으면!

달 돋는 개여울의 빈 들 속에서

내 옷의 앞자락을 불기나하지.

우리가 굼벙이로 생겨났으면!

비오는 저녁 캄캄한 영기슭의

미옥한 꿈이나 꾸어를 보지.

만일에 그대가 바다난 끝의

벼랑에 돌로나 생겨났다면,

둘이 안고 굴며 떨어나지지.

만일에 나의 몸이 불귀신이면

그대의 가슴 속을 밤도아 태워

둘이 함께 재되여 스러지지.

1

유월 어스름 때의 빗줄기는

암황색의 시골을 묶어세운듯,

뜨며 흐르며 잠기는 손의 널쪽은

지향도 없어라, 단청의 홍문!

2

저 오늘도 그리운 바다,

건너다보자니 눈물겨워라!

조그마한 보드라운 그 옛적 심정의

분결같은 그대의 손의

사시나무보다도 더한 아픔이

내 몸을 에워싸고 휘떨며 찔러라,

나서 자란 고향의 해돋는바다요.

섦다 해도

웬만한,

봄이 아니어,

나무도 가지마다 눈을 틔웠어라!

못잊어

첫치마

개여울의 노래

여수

수아

이번에 새로 출간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의 장점은 시가 수록된 각 장마다 수채 그림들이 함께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있어서 감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진달래꽃의 여는 글에서 보았듯이 원초적이며 자연발생적인 김소월 시의 특징처럼 자연과 풀과 꽃들이 그림으로 등장하는데 그러한 그림을 관찰하는 것 역시 하나의 재미로 작용하였다.


<김소월 시집 : 진달래꽃>에 실린 김소월의 시들을 읽으면서 전통 민요적 율격 맞추어 정교하리마치 짜여진 시의 구조에 놀람과 감탄을 거듭하였다. 일부러 글자 수를 맞추려고 해도 글 맛이 제대로 나지 않을 터인데 김소월은 시의 의미를 전혀 축소시키지 않으면서도 그 수를 맞춰낸 것으로 보아 아주 영민하게 단어를 배치한 것이 느껴졌다.

사실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면 내가 가진 지식은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어디까지나 시 속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냈는데 사실 약100년 전에 쓰여진 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만한 회한의 정서, 그리움의 정서들이 빛바래지 않고 고스란히 다가와서 신기하고 의미있는 시집이었다.

이것 역시 '시'라는 매개만이 지닌 힘이 아닌가 싶다. 어느 시대를 살던 간에 시를 통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어떠한 공통분모를 백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김소월은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우리가 김소월의 시를 통해 물리적인 시공간을 뛰어넘어 그와 마주하고 그의 시 속에 담긴 가치를 찾아내고 하는 모든 과정들까지 하나 하나 뜻깊고 소중하다.


시혼

그러나 여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밤에 께여서 하늘을 우러러 보십시오. 우리는 낮에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을, 그곳에서,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파릇한 별들은 오히려 깨어 있어서 애처롭게도 기운 있게도 몸을 떨며 영원을 속삭입니다. 어떤 때는, 새벽에 저가는 오묘한 달빛이, 애틋한 한 조각, 숭엄한 채운의 다정한 치맛귀를 빌려, 그의 가련한 한두 줄기 눈물을 문지르기도 합니다. 여보십시오, 여러분. 이런 것들은 적은 일이나마, 우리가 대낮에는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던 것들입니다. (중략)

우리는 적막한 가운데서 더욱 사무쳐 오는 환희를 경험하는 것이며, 고독의 안에서 더욱 보드라운 동정을 알 수 있는 것이며, 다시 한번, 슬픔 가운데서야 보다 더 거룩한 선행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며, 어두움의 거울에 비치어 와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보이며, 삶을 좀 더 멀리한 죽음에 가까운 산마루에 서서야 비로소 삶의 아름다운 빨래한 옷이 생명의 봄두던에 나부끼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곧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나 맘으로는 일상에 보지도 못하며 느끼지도 못하던 것을, 또는 그들로는 볼 수도 없으며 느낄 수도 없는 밞음을 지워버린 어두움의 골방에서며, 삶에서는 좀 더 돌아앉은 죽음의 새벽빛을 받는 바라지 위에서야, 비로소 보기도 하며 느끼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합니다. (중략)



진달래가 피고 지는 계절 속을 살고 있는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고 있는 탓에 일부러 꽃구경을 가는 것은 무리라도 집 앞과 산 속 바위 틈을 비집고 피어나는 진달래의 고운 빛깔을 보면 나도 덩달아 분홍빛 깨끗한 마음이 되는 것만 같다. <김소월 시집 : 진달래꽃>을 읽은 후, 진달래를 바라본

다면 어여쁜 동시에 참으로 애틋한 마음이 든다.

나태주 시인의 여는 글에서 그의 고향에 가서 그가 보고 느꼈던 그 땅을 두루 걷거나 살피고 싶다는 말이 등장한다. 나도 그의 말을 빌려오고 싶다. 이는 김소월이 바라보는 세상이 아름다운 까닭이요. 김소월의 시가 아름다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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