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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아시스
김채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월
평점 :
“내가 언제까지고 이렇지만은 않을거야.”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은 함께 갈 수 없는 배타적인 관념이라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소설집은 대답한다. 삶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부재의 자리가 있고, 죽음 역시 삶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완전히 마르고 부스러져도 빛 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으며 서울에도 오아시스가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표제작은 「서울 오아시스」 가 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상실을 겪고 무기력해져도 비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희망찬 낙관을 보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격정적으로 슬픔을 토해낼 힘조차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떠난 이의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 뿐이다. 끊임 없이 걷고 공허한 마음으로 착실히 할 일을 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그 무엇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노인의 얼굴 위로 무언가 물러나듯 햇빛이 드리웠다. 기분이 좋았다. 몸이 비교적 따뜻했다. 이대로 햇볕에 반쯤 바랜 자신이 죽음을 몰아내지 못하고 기진맥진해서 주차장 바닥에 여러 차례 으깨져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자 온 사방이 순식간에 눈부시게 환해져, 그와 동시에 교각 아래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며 바람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또한 상상했다.”
「빛 가운데 걷기」 47p
“구원은 바깥에 있지 않다. 상실—부재의 장소는 오히려 오아시스일 수 있고, 형벌 같은 삶에도 한 조각의 윤슬은 감추어져 있다. (…) 생과 죽음이라고 구획된 것들은, 명사형의 존재가 아니라 동사형의 생성들이다.
「공백과 무한」 김미정 문학평론가 해설 250-251p
“병정들은 물줄기를 쫓아다니며 그 주위로 점점이 흩어지는 시원한 물방울을 맞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얄밉고 마음에 안 들어 자영은 병정들에게 직접 물을 쏘았다. 병정들은 곧바로 넘어지거나 발이 엉켜 물웅덩이로 떠밀렸다. “아파, 아파!” 자영은 쏜 자리에 한 번 더 물을 쏘았다. “그만해. 너는 우리보다 크잖아, 비겁하게. 괴롭히지 마.” 괴로운 듯이 찡그리고 있었지만 병정들의 물기 어린 얼굴에는 분명한 생기가 돌았고, 자영은 그것을 보았다. 병정들이 자영에게 보여주었다. 번성하는 여러 개의 생명력을.”
「럭키 클로버」 166p
김채원은 화자가 발견하고 떠올린 것들을 나열하며 서술한다. 이를테면 엄마가 자신에게 알려준 것들을 “올바른 젓가락질, 시계 보기, 우비 입기, 모르는 사람의 날씨 이야기를 들어주기, 밤 까기, 친구를 기다리기, 손을 뻗기, 물 없이도 알약을 삼키기.”(82p)라고 나열하는 식이다. 다른 소설들 속에서도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자주 등장한다. 목격하거나 회상한 무언가로부터 파생된 단어와 문장이 생략되는 법 없이 줄줄이 기록된다. 화자의 생각과 시선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계속 퍼져나가기를 바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착하고 기억하는 것만이 부재의 자리를 살아있게 하니까. 살아야 한다며 보이지 않는 희망을 무작정 강요하지 않는 작가를 알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앞으로도 계속 그의 세계에 함께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