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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원하지 않은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지음, 박진희 옮김 / 황소자리 / 2018년 8월
평점 :
스릴러 장르팬 여러분 제발 이르사 책 많이 봐주세요 ㅠㅠ 이미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는 핫하다고 하고 스릴러의 여제라고도 불리고 각종 수상에 토라 시리즈에 이번 작품까지 전부 다 영화화 계약 되었다고 하는데! 왜 내가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소설 재밌어 하면 ....뭐? 이..이르 뭐? 하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일꽈?! 완전 보석 같은 작가인데 외우기 좀 버거운(?) 이름 때문인지 국내 장르 팬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낮은 것 같아서 슬프기 그지 없다. 한 1년 정도 반복해서 부르면 이름도 잘 외워진다. 나는 이제 책을 검색해 보지 않고도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의 이름을 한치의 망설임도 쓸 수 있다!
이르사 풀 네임 다 외웠다!
아무튼... 책으로 돌아와서; 기존에 출간된 이르사의 '마지막 의식', '내 영혼을 거두어주소서', '부스러기들'과 다르게 이 책은 토라가 등장하지 않는 독립 스릴러다. 화자도 다르고, 주변 등장인물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시대도 달라서 첫 장을 펴자마자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을 보면 이르사 특유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담백하면서도 깔끔하게 진행되는 전개와, 시대를 넘나드는 가족사에 얽힌 비극,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 엔딩. 작가로서의 그녀는 갈수록 노련하고 진행도 갈수록 능수능란하다. 마지막 의식 때만 해도 약간 어색한 느낌이 종종 느껴졌었는데, 그 후로는 나날이 발전해 굉장히 섬세하고 세밀한 듯 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물흐르듯 유려하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매 작품마다 정말 만족스러운 작가.
이르사의 신간 '아무도 원하지 않은'은 두 인물의 관점에서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는 40년 전 경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교화시키는 보호소에 근무하고 있었던 젊은 여성 알디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재를 배경으로 40년 전 소년 보호소에서 일어난 두 소년 사망 사건을 기초로 하여 과거의 인권 유린 사태를 조사 중인 편부 오딘. 책은 시대와 두 사람의 관점을 오간다.
알디스는 양부에게 성추행 당하는 자신을 오히려 비난하는 어머니에게 질려 가출하고, 돈을 벌기 위해 소년 보호소에서 일을 하는 젊은 여성이었다. 10대 후반의 소년들에게 젊은 그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한창 피어나는 나이의 그녀에게 소년 보호소의 풋내 나는 어린 소년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에이나르가 보호소에 입소하기 전까지는. 다른 입소자들에 비해 어른스럽고 큰 체격과 잘생긴 얼굴의 성숙한 소년은 금방 알디스의 관심을 끌었다. 알디스는 에이나르와 어울리며 보호소 내 알 수 없는 사건들을 보고 겪게 된다.
현재의 오딘은 이혼한 전처의 자살로 인해 어린 딸을 맡게 된 홀아버지다. 전처의 어머니인 장모님은 그를 정신 없이 쪼아대고, 회사에서도 갑작스럽게 사망한 전 직장 동료의 조사 업무를 일임 받게 되어 정신이 없는데다, 전처가 자살하던 시간에 방에서 자고 있었다던 딸은 정신적 충격을 받고 이상한 그림을 그리며 그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한다. 게다가 아무도 없는 다가구 주택에는 발소리가 들리며, 조사 중인 40년 전 목숨을 잃었다는 두 소년의 사진 속 두 쌍의 눈은 자신을 쫓는 것 같기도 하다.
40년의 간격을 두고 한 소년 보호소와 그 소년 보호소를 조사하는 이야기가 교차로 나오다가 점점 하나로 엮이기 시작하면서, 뭔가 으스스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흘러가던 이야기는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의 전 책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 작가 책 속에 나오는 희생자들은 늘 너무나도 크게 거창하거나 충격적인 무언가로 희생되지는 않는다. 그냥 욕심, 혹은 사소한 질투, 약간의 사소함, 질투심, 부주의, 소통의 부재 등, 너무나 나도 흔하게 벌이고 있는 일들. 그것으로 인해 이런 결과가 초래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 하고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소재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작가의 시선은 늘 공통된 구심점이면서도 새롭다.
제목의 '아무도 원하지 않은'은 참 의미 심장하다.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대상이 되었던 사람은 없는 것 같아. 태어나자마자 묻힌 아이도, 소년 보호소에 수감되어 있던 소년들도, 사망한 두 소년도, 알디스도, 오딘도, 그의 딸도.
오딘이 느낀 충격은 소름 돋았고, 마지막 장면은 좀 무서웠다. 흐...
덧. 오딘의 집을 쿵쾅거렸던 소리의 정체, 사진에서 눈이 따라다닌다는 현상의 정체, 룬이 두 소년의 사망 모습을 재현해 그린 것들은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