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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 허스토리
윌리엄 몰튼 마스턴 원작, 질 르포어 지음, 박다솜 옮김 / 윌북 / 2017년 5월
평점 :
원더우먼을 아는가? 본명은 다이애나, 금빛 티아라를 쓰고 방패를 들었으며 올가미와 팔찌를 메고 있는 DC 코믹스의 이 여성 히어로는 아마존의 공주이자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이다. 코믹스 사상 가장 인지도가 높은 DC 히어로이기도 하다.
최근 원더우먼이 개봉되어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작년 2016년 초에 개봉했던 배트맨 VS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마지막 부분에 잠시 그녀의 활약을 보여주었었고, 그때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능력과 액션, 아름다운 외모를 통해 우리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생소하거나 혹은 미용용품이나 기타 여성 팬시 등의 상품에서만 모습을 접할 수 있었던 원더우먼의 기대감이 커졌다. 얼마 전 개봉한 ‘원더우먼’은 그런 그녀를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국 내에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인기만큼 원더우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DC 코믹스에 대해서 잘 접해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나 같은 경우에는 원더우먼의 옷 색상을 보고 슈퍼맨의 여성형, 혹은 아류 캐릭터로 짐작을 하기도 했으며, 온 몸을 꽁꽁 전신 갑주나 의복으로 감싼 남성 히어로들에 비해 노출이 많은 의상을 보고는 DC 코믹스의 히어로물들을 즐기는 남성 독자들에게 눈요깃거리와 안주감을 주기 위한 자위용품 같은 캐릭터로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심지어는 DC 코믹스를 즐기는 팬층에게도 원더우먼의 기원과 의미는 생소한 성질의 것일 확률이 크다.
그러나 이것은 무지에서 오는 오해로, 원작에서의 그녀는 남성 히어로들이 할 수 없는, 혹은 미진했던 ‘사랑’을 통하여 정의를 구한다는 차별성을 가지고 그 시대의 여성 페미니즘사와 발맞춰 역사를 걸었던 히어로였다.
원더우먼 개봉 시기에 맞춰 이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페미니즘 책이 나왔다. 윌북의 ‘원더우먼 허스토리’라는 책이다. 질 르포어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가 방대한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단순 열거가 아닌 분석과 비평을 통해 원더우먼의 원창작자인 윌리엄 마스턴의 전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원더우먼에 얽힌 탄생 비화와, 상징,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루었다.
윌리엄 마스턴이라는 이름이 생소할 수는 있지만 ‘거짓말 탐지기’를 언급한다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윌리엄 마스턴은 거짓말 탐지기를 발명한 심리학자였지만 본업 외에도 여성 슈퍼 히어로 원더우먼을 창조하였고, 스토리 작가로서 그 시대의 흐름이었던 페미니즘적 가치관과 활동들을 원더우먼에 담기도 했다.
원더우먼 허스토리는 ‘책으로 읽는 원더우먼’이라는 요약으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책이다. 단순히 영화 원더우먼을 보고 화려한 모험 책을 생각하거나, 원작자가 누구일까? 전체 줄거리 흐름이 어떨까? 하는 식의 가벼운 접근으로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저자인 질 르포어는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치밀하게 분석하였고, 장 하나하나가 그러한 분석의 결과를 담고 있기에 한 장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원더우먼의 진실의 올가미는 현실 속에서 윌리엄 마스턴이 발명했던 거짓말 탐지기와 궤를 같이 하며,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와 작용을 하였는지, 그로 인해 얽혔던 인간관계와 흐름, 결말까지를 기원을 탐색하듯 하나하나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세밀함만큼 수많은 의문 또한 생긴다. 저자 또한 페미니즘의 고리로써의 원더우먼만이 아니라, 그에 반하여 여기저기에서 주장한 수많은 반박들과 의문점들을 책 내에 언급하였다. 그에 반박할만한 근거 또한 같이 제시되어 있지만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과연 그녀가 페미니즘적인 캐릭터가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다르게 판단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인다. 다만 분명한 사실인 것은, 수많은 모순과 의문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페미니즘의 사조 흐름에 따라 원더우먼은 계속해서 바뀌어갔고, 저자는 그 부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지는 않다. 그러나 거짓말 탐지기로 유명한 이 심리학자가 어떠한 환경과 배경을 가지고, 어떠한 가치관과 사고를 가지며, 어떠한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그리고 그가 몸담았던 1900년대 초 여성 참정권과 피임, 낙태 등의 여성 스스로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등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이 궁금하다면, 또한 원더우먼이 정말 페미니즘적인 캐릭터인지 아닌지, 그 모순을 곱씹어 스스로 사색하고자 한다면 ‘원더우먼 허스토리’는 너무나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