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다 했니? - 어린이시 선집 상상의힘 동시집 5
이지호 엮음, 이단디 그림 / 상상의힘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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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말을 귀하게 여기고, 아이들이 시를 쓸 수 있도록 했다. 선생님들이 참 고맙다. 이런 귀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주어서. <숙제 다 했니>에참여했던 선생님들이 각자의 엮음집으로 많은 어린이시선집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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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달 자연과 만나요 - 우리 동네 자연 이야기 녹색손 자연 그림책 1
임종길 글.그림 / 열린어린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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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거리며 자연을 발견하는 즐거움

『자연과 만나요』, 임종길 글 그림, 열린어린이, 2011.

 

자연과 만나려면 자연으로 가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자연으로 가는 것도 일로 여겨 아이가 조르고 졸라야 근처 사찰이나 동물원에 다녀오는 정도였다. 둘레길 걷기를 안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하지만 나에겐 둘레길 걷기도 작정이 필요한 것이라 아직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자연과 만나요』는 작정 없이 주변에 나가 두리번두리번 거리기만 해도 소중한 생명들이 바로 옆에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이 책은 달별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와 새, 꽃과 풀들을 담았다. 사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나무와 새, 꽃과 풀들의 이름을 잘 모른다. 아이가 어릴 때는 식물도감을 사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라는 식물들을 사진으로 보고 그림으로도 보았다. 문제는 식물도감에 있는 것과 밖에서 본 것을 연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식물들은 살아있는 것이니 일년 내내 변화하고 있고, 도감에 있는 것은 몇 장면 밖에 없으니 도감에서 본 것은 지식에 불과하였다. 그 이후 <심심해서 그랬어>처럼 이야기가 있는 사계절 그림책들을 보게 되고, 도시 풍경을 담은 가로수 아래 꽃다지가 핀 책을 보면서 독자들 대신 사물들을 관찰해 준 작가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번에 나온 『자연과 만나요』사물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또 이 책에서 자연을 만나는 방법도 알 수 있었다. 맨 마지막 장에 보면 작가가 동네 주변의 어디를 다녔는지 지도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우리 동네에도 그런 장소가 많다. 우리 동네에도 예전에는 논이었지만 아파트 공사 중인 곳도 있고, 주말 농장터도 있고 대학 연습림도 있다. 다행이 강이 흐르고 있어 강둑으로 나가면 볼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강 상류에는 습지가 형성되어 더 많은 생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자연을 만나는 방식은 아이와 함께 치러야할 여행이었고, 행사였던 것이다. 그냥 걸어가면서 두리번거리면 될 것을.

작가는 3월에 산개구리가 죽은 암컷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웅덩이에 산개구리 알이 해캄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가 남긴 깃털 하나도 주워서 이리저리 살펴 보았고, 멧토끼들이 눈 똥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관찰력은 사물을 새롭고 신기하게 여기기 때문에 더 예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정작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라고 소개 되어있었는데 자연을 생각하는 ‘도토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니 작가는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을 이미 터득하고 그것을 그림책으로 옮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가까이 볼 수 있는 꽃과 풀을 소개하고 있다. 6월 여름이 오는 뒷산 어디에나 볼 수 있는 꿀풀, 엉겅퀴, 고들빼기, 으아리, 인동꽃 10월에는 댕댕이덩굴 열매, 단풍 열매, 생강나무 열매, 산딸나무 열매, 이팝나무 열매 등을 볼 수 있다. 내가 아이에게 자연을 보여주는 방식이 급반성되었다. 하동에 매화꽃이 피었대, 하면 하동으로 가 볼까. 벚꽃이 한창이잖아. 그러면 벚꽃구경이라도 한번 다녀와야 할텐데. 뭐 이런 식. 좀 부끄럽다. 한번씩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정말 예쁘다, 감탄하면서 차에서 자는 애를 깨워서 저거 봐, 하더라도 애가 시무룩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지금은 11월이다. 11월 작가가 그린 그림 가운데 배추 속을 키우기 위해 묶어 놓은 배추, 아파트 경비실의 단풍나무가 정말 친근하게 느껴진다. 주변에서 늘 보는 것인데 작가의 눈에 들어온 것을 보고서야 아파트 주차장에 있는 단풍나무, 아파트 주변의 메타세콰이어 등등. 천천히 걸으면서 봐야 할 것들이 이제 많아졌다.

이 책의 12월에 나온 겨울 나무들이 키우는 꽃눈, 겨울눈들을 보면서 생명이 더 큰 생명을 키우기 위해 응집된 생명의 결정을 보는 것 같아 설렜다. 이제 목련꽃의 겨울눈을 보면 눈인사라도 해 주고 싶다. 아이도 이 책을 봤는데 아직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아는 것보다 아이가 이 책에서 아는 장면들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만큼 나는 서둘러 바삐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아이는 천천히 걸어서 두리번거리며 다녔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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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 - 마법소년 토머스는 멍청해! 열린어린이 인물그림책 2
돈 브라운 글.그림, 윤소영 옮김 / 열린어린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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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주변에서 자주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어떤 위인전을 읽히는 게 좋은가, 좋은 위인전 좀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되묻는다. 왜 위인전을 읽히려고 하세요? 아이들이 위인전을 읽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왜 읽히려고 하다니 뜬금없다는 표정이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위인전을 읽을 때 위인을 본받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이 궁금하기 때문에 읽게 된다. 내 주변 친구나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궁금해지는 것처럼 그 사람의 삶이 궁금할 때 그 사람에 관련된 책을 찾아서 보면 그 사람의 사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사람의 왜 그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이번에 나온 『토머스 에디슨-마법소년 토머스는 멍청해!』(돈 브라운 글 그림/윤소영 옮김/열린어린이/20011)는 인물 그림책으로 ‘열린어린이’에서 나온 두 번째 책이다. 첫 번째 나온 아인슈타인도 꽤 인상적이었다. 두 권 다 돈 브라운 글과 그림을 그렸는데 이 작가가 위인의 삶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 위인전들과 다른 접근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인물그림책이라는 점에서 삶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위인에서 주변 이웃 아저씨의 이야기처럼 어떻게 친숙하게 다가갈 것인가, 그러면서도 인물에 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우리는 에디슨에 대한 책을 읽지 않더라도 에디슨에 대한 정보가 있다. 위대한 발명가이며, 그 일화로 병아리를 품에 안고 부화시키려 했다는 일화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는 없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거들었으며, 학교 다닐 때 공상하기를 좋아해 산만하고 멍청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나와 집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실험과 독서를 했으며, 열두 살 때 신문팔이를 하다가 열네 살에 인쇄소에서 버린 기계를 가져와 신문을 발행했다. 이후 전신국을 들락거리다가 열여섯 살에 떠돌이 전신기사가 되었으며, 스물두 살에 전신국을 그만두고 발명에 몰두하였다.
결국 학벌도, 스팩도 없는 전신기사가 발명왕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당연히 위인전을 읽어야 한다는 엄마들은 이 책을 아이에게 권할 수 없을 것이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고, 껌이나 신문을 팔다가 떠돌이 전신기사로 살았던 20대까지의 삶을 어느 부모가 고개 끄덕이며 받아줄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의 삶이 궁금한 아이들에게 이 책은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천재들이 가질 수 있는 몰입의 시간, 발견의 기쁨,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가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사람의 삶은 공평하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재산이 많으면 명이 짧고, 재능이 많으며 질병이 따르거나, 권력을 쥐면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위대한 발명가에게도 구린 구석이 있고, 구질구질한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보통 위인전들의 과대포장은 더 큰 배신감을 안겨주는 반면 인물 이야기들은 집념과 근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시련을 어떻게 감당하는 가를 보여 준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조언이 필요할 때 친한 선배가 자기 삶을 들려주듯 인물이야기를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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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살아온 동네 이야기 그림책으로 만나는 지리 이야기 1
김향금 지음, 김재홍 그림 / 열린어린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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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커서 옛집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할까?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집은 30년 40년 뒤 유년의 집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안방에서 베란다로 거실로 뛰어다니며 놀았던 일, 베란다 화분에 꽃을 심어서 키웠던 일, 인형과 소꿉 장난감으로 놀던 일들을 생각할까? 아니면 엄마 눈치보면서 거실에 있는 컴퓨터 했던 일, 침대 머리 맡에 장난감 잔뜩 올려 두었다고 야단맞은 일들을 생각할까? 무엇이 옛집에 대한 기억으로 맺혀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 가족이 살아온 동네 이야기』는 삼대에 걸친 동네이야기다. 할머니와 엄마도 나와 같이 아홉 살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엄마가 아홉 살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은 어렴풋하게 짐작이나 갈 일이지만 할머니가 아홉 살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은 짐작조차 하기 힘들 일일 것이다. 아이들은 이 책에서 아홉 살이었던 할머니의 놀라운 과거를 보게 될 것이다.

아홉 살 할머니가 살았던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책을 펼치자마자 한 폭의 아름다운 경치에 입이 벌어진다. 역시, 김재홍 작가군. 어김없이 독자들을 그림으로 사로잡는다. 얼마 전에도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동강의 아이들』을 보여주었더니 모두 경탄해마지 않았다. 『고양이 학교』에서도 유감없이 고양이를 살아 움직이게 마법을 걸더니 이번 작품도 우리나라 시골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었다.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드리운 동네가 멀리 보이고, 왼쪽에 핀 노란 꽃들이 싱싱하게 흔들리고 있다. 동네는 안개로 정화되고 촉촉하고 상큼한 새벽 공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할머니, 아홉 살 연이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다녔으며, 소풍을 갈 때는 고구마와 밤을 싸 갔다. 친구들과 노는 건 각시풀로 인형을 만드는 거다. 엄마, 아홉 살 근희는 서울 청계천 영미다리 건너, 중앙시장 언저리에 살았다. 한 반에 70명이 넘는 아이들이 2부제 수업을 했고, 저녁 늦도록 동네 아이들과 고무줄 놀이를 했다. 아홉 살 나, 아차산과 광나루 사이의 아파트가 빼곡한 동네에 산다. 학교와 편의시설들이 모두 모여 있다. 엄마는 어린 시절 추억이 어린 옛집에 다녀와서 할머니와 옛집에 대해 전화로 한참이나 수다를 떤다.

옛집에 대해서는 모두 할 말이 많다. 어린 시절의 우리 삶을 보듬어준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십, 오십이 된 우리 형제들도 일 년에 한 두 번씩 만나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릴 때 살았던 집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 집의 구조가 어떠했으며, 그 집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렇게 밤 깊도록 이야기하다가 보면 어린 시절 한 집에서 같이 보낸 친동기간의 공감대로 똘똘 뭉쳐졌다.

이 그림책에서 시선을 끄는 한 장면, 남자 아이들이 발가벗고 멱을 감고 있는데 왼편에는 커다란 황소가 풀밭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아이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보초같기도 하고, 발가벗은 아이들의 물장난에 미소를 머금고 지그시 눈감아주고 있는 듯도 하다. 엄마의 아홉 살을 보면서 내가 살았던 집들이 떠오르고, 놀이가 떠오르고, 그 시절의 친구도 떠올랐다. 고무줄 놀이를 하는데 분홍 원피스를 입고 있는 아이, 아마 무척 잘난척하는 공주과의 아이, 그 아이를 부러워했던 나도 떠올랐다.

우리 아이는 아파트에 살면서 무엇을 떠올리고 추억할까? 안방과 작은방, 거실, 베란다의 똑같은 구조 속에, 학교와 학원, 학원과 집을 오가는 똑같은 일상 속에 집에 대한 따뜻한 기억, 즐거웠던 놀이가 남아있기나 할까 걱정스럽다. 전기밥솥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밥냄새라도 정겹게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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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밥 공주 창비아동문고 249
이은정 지음, 정문주 그림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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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보기와 같게 보기

『소나기밥 공주』, 이은정 글 정문주 그림, 창비


책여우. 2009.09.11. 한양하


설화에서 금기는 위반됨으로써 금기다운 가치를 가진다. 금기가 금기로만 존재한다면 금기는 관습이 될 것이다. 일상에서 금기는 금지로 드러난다. 우리는 어른은 이래서는 안 돼, 어린이는 이래서는 안 돼라는 금지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어른들은 어른의 권위를 잃고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고, 아이들은 순수함을 잃고 사악해서는 안된다. 그런 생각 속에서 살아왔던 관습은 어른을 옥죄고 아이들을 옥죈다. 『소나기밥 공주』(이은정 글, 정문주 그림, 창비, 2009)는 어른과 어린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한겹 벗겨낸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가 주인공의 행위에 도덕적 잣대만 들이대지 않았다면 끝까지 생생한 인물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기도 하다.


1. 이름, 달리 보기


『소나기밥 공주』주인공은 안공주다. 공주이지만 공주가 아닌 아이다. 알콜중독자인 아빠는 공주가 태어났을 때 왕이 된 것처럼 기뻐서 공주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주는 공주답게 살아보지 못한다. 지하방에서 여덟 살 때부터 집나간 엄마를 대신해서 살아야했으며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는 날에도 혼자 집을 지켜야 했다. 학교에서 먹는 급식이 하루 가운데 유일한 식사가 될 때가 많은 공주는 밥을 많이 빨리 먹어서 소나기밥 공주가 된다.

공주의 친구는 현미다. 공주의 처지와 대립되는 현미는 쌀 종류의 명칭이다. 현미네 엄마는 음식도 잘 하고 공주가 가면 맛난 음식을 내놓기도 한다. 공주와 현미의 처지는 대립적으로 보이며 공주가 안공주인 것처럼 친구 현미는 따뜻하고 고소한 현미밥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행복한 가정에서 살아가고 있다. 공주와 현미의 이름 짓기는 대조적인 처지에 놓인 공주의 현실을 더 잘 드러나게 한다.

공주의 아버지가 갇힌 공간은 희망의 마을이다. 아버지는 희망의 마을에 갇혀서 공주에게 희망을 주지도 못한다. 아버지에게 희망이었던 공주와 격리된 공간은 반어적 효과를 내고 있다.


2. 어른과 아이, 달리 보기


『소나기밥 공주』에서 주인공 안공주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다. ‘희망의 마을’에 갇혀 사는 공주의 아버지에게 희망은 공주다. 그러나 재활원에 갇혀 공주를 만나지도 못하고 공주의 안부도 모르며 공주의 생계에 도움조차 되지 못한다. 한마디로 무능력한 아버지다. 양육에 대한 책임도 저버리고 오히려 공주에게 보호받고 싶어 한다. 이는 공주와 아버지의 편지에서 드러난다.

공주의 편지

“아빠, 내 걱정은 하지 마. 며칠 뒷면 보조금도 나오잖아.”(47쪽)

아빠의 편지

“내가 또 술 마시면 네 딸이다!”(31쪽)

공주는 아빠의 편지를 받고 의연하다. 다시 술을 마시면 ‘네 아들이다’에서 ‘네 딸이다’로 바뀌었을 뿐이니까. 오죽하면 재활원에 들어가 자기를 구해달라고 초등학교 6학년 딸에게 편지를 보냈을까? 결국 공주는 아빠의 재활원까지 찾아가지만 만나지도 못하고 모셔오지도 못한 채 혼자 돌아온다. 이미 면회시간은 지나갔고 공주는 오히려 양육을 받아야 할 존재였기에 아빠의 구출자가 되지 못한다. 희망의 마을에 갇힌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희망을 남길 수만 있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 어른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을 갖추지 못했다. 아버지는 양육자가 아니며, 집주인 김씨는 자기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이고, 의심이 많으며, 탐정놀이를 하다 민망함을 당하는 인물이다. 팽여사는 공짜 좋아하고 자기가 본 손해는 몇 배의 보상을 받아내야 속이 시원한 드센 인물이다. 한마디로 ‘어른들이 뭐 이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들도 변화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의 변화는 성숙하는 삶이며, 어른도 자기 삶 속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는 알코올 치료를 받으면서 “아빠는 여기서 조금씩 건강을 되찾고 있어. 괴물 안 본지 좀 됐다. 아빠 꼭 건강해져서 돌아갈게”라며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 팽여사는 자기 손해 보지 않으려는 드센 인물에서 마음속에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는 측은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대문간에 쓰러진 공주를 병원으로 데려가며, 공주가 아빠 없이 혼자 지낸다는 것을 알자 공주를 안쓰럽게 여긴다. 물론 공주에게 병원비 영수증을 내밀며, 해님마트로 끌고 가 범인임을 자백하게 하기도 하지만 공주에게 죽을 끓여주며, 마트에서 전단지 돌리는 일도 방학 때 할 수 있도록 조정해 준다. 의심 많은 주인 김씨는 팽여사와 공주가 고기를 구워 밥을 먹도록 하기 위해 옥상 문을 열어준다.

『소나기밥 공주』에서 어른들은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주인공 안공주는 혼자서 밥해먹고 학교 다녀도 친구들에게 기죽지 않는다. 소나기밥을 먹는다고 놀림을 받아도 꿋꿋하게 먹고 더 먹기도 하며, 친구 현미를 집으로 데려오기까지 한다. 아빠를 구출하기 위해 두 시간이 넘는 곳을 혼자 찾아가기도 하며, 밀린 방값 때문에 주인에게 적당히 눈치를 볼 줄도 알며, 옆집 104호 총각이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기름을 더 주는 것을 알고 이천 원을 더 주고 오기도 한다. 공주는 어른답게 행동한다. 아이로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이 아닐 때 아니는 어른이 되어 자기를 책임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보육원에 가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는 작은 어른이다.



3. 욕망과 죄의식, 같게 보기


『소나기밥 공주』에서 이름의 설정과 어른과 아이의 역할에 대한 재고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어른도 성장할 수 있고, 아이도 어른 같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주의 허기진 욕망을 지나친 죄의식으로 다루는 것은 공주라는 인물의 성격부여에 일관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공주에게 양육자의 부재는 허기로 나타난다. 늘 배고픈 공주는 아빠를 희망의 마을에서 구출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죽을 것 같은 허기를 느낀다. 그 허기는 텅빈 지하방과 텅빈 기름통과 텅빈 냉장고로 표현된다. 그러나 공주가 202호 팽여사의 배달 물건을 가로채어 거짓말을 하는 순간 냉장고도 가득차고 공주의 뱃속도 가득하고, 지하방은 음식 냄새로 가득 차게 된다.

텅빈 것을 채우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허기에 시달리는 공주에게 탈탈 털어서 살 수 있는 것은 콩나물 560원어치였고, 그 콩나물로 끓이고 무쳐서 먹을 수 있는 게 전부다. 그러나 팽여사의 장바구니에 담겼던 것은 오만 원이 넘는 갖가지 음식재료들이었고 미역국, 달걀찜, 해물전을 해 먹을 수 있는 풍요로운 것이었다. 허기를 채우고 싶은 공주의 욕망은 훔친 물건들로 채워질 수 있었다.

공주의 욕망은 채워졌으나 죄의식은 폭식을 불러왔고 극심한 체기로 기절하고 만다. 결국 공주의 폭식은 허기진 욕망을 채울 수 없었고 부도덕한 일을 했다는 죄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공주가 팽여사의 장바구니를 훔치고 지독한 죄의식에 시달리는 모습은 아이가 겪을 시련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으로 살았던 사람이 한 순간 실수로 자기 인생을 더럽혔다고 생각하는 완고한 죄의식이다. 공주는 누구보다 발랄하고 씩씩하며 자기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작은 어른이었다. 어쩌면 장바구니에 든 재료들로 맛난 음식을 해 먹고 입 싹 닦고 팽여사의 딸 혜민이를 돌봐주고 팽여사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할 수 도 있을법하다. 공주의 폭식을 유발한 죄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공주에게 설정된 성격에서는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공주의 죄의식은 작가의 도덕관이이 개입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공주의 존재는 텅빈 냉장고였으며, 희미하게 빛이 나오다 꺼져버린 돼지손전등이었으며 뭉개진 560원어치의 콩나물이었다. 쓸쓸하고 무서운 지하방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공주는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지만 따뜻한 밥을 차려놓고 있기만 하다면 한번에 용서해 줄 수도 있을 만큼의 허기를 느낀다. 누가 공주에게 돌을 던지랴. 그런 공주의 욕망을 죄의식으로 몰고 가는 것은 도덕 교과서적 결말을 예고한다.


『소나기밥 공주』에서 눈여겨 볼 점은 개성 있는 인물이다. 안공주는 씩씩한 아이다. 자기를 구출해 줄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없을 때도 공주는 작은 어른으로 당차게 살아간다. 물론 욕망을 죄의식으로 고리짓지 않았다면 공주는 더 매력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팽여사도 겉으로 볼 때는 드센 아줌마의 전형이다. 공짜 좋아하고, 시비가 붙을 때는 창피한 줄 모르고 소리치고, 손해보고는 못 사는 인물이지만 아이 낳고 사는 여자로 측은지심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착한 아줌마로 변화하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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