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2662063
헌법이 맹위를 떨치던 1970년대. 양담배를 피워 문 다방에서, 머리카락이 어깨로 늘어져 경찰에 붙잡힐 수도 있는 길거리에서 한국인들은 크게 움츠러들게 마련이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행위가 어쩌면 범법(犯法)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7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이었다.
그 무렵 작가 정을병(鄭乙炳)은 옥중 체험을 시도한다. 억눌린 사람들이 감옥에 처박혀 어떤 경우를 당하는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는 7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단편소설 '육조지'를 발표한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냉소는 압권이었다. 조지는 자와 조짐을 당하는 자의 물리적.심리적 상호 관계가 잘 그려져 있다. 그 소설에 등장하는 육조지란 이런 내용이다. 집 구석은 팔아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형사는 패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얘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도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담긴 조건에서 옥에 들어와 앉은 죄수는 가족이나 친지가 넣어 주는 사식(私食)에 목마르다. 닥치는 대로 먹어 댈 수밖에 없다. 간수는 늘 죄수를 세기에 바쁘다. 한 사람이라도 빠뜨릴 수 없어 늘 점검에 바쁘다. 형사는 고함과 함께 혐의자를 패기 일쑤다. 바쁜 와중에 이리저리 신문할 틈도 없다. 빨리 패서라도 자백을 받으면 된다. 검사는 구치소에 수감된 죄수를 불러 댄다. 이리저리 죄목을 얽어 형을 확정하면 자신의 업무성적표는 괜찮게 그려진다. 판사는 어떨까. 법 절차는 늘 까다롭고 판결문은 항상 어렵다. 혐의자가 어리둥절한 틈에 그에 대한 판결을 늘 미룬다. 엘리트 판사가 된다는 것과 재소자 인권은 큰 관련이 없으니까.
'조진다'는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호되게 남을 때린다'다. 점잖은 해석이다. 실제로는 상대를 극한으로 몰아갈 정도의 그악스러움이 배어 있는 단어다. 속되게 사용되기 십상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13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청와대를 조지면 영웅이 된다는 말들이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도 이를 받아 검찰 공격에 나섰다. 걸핏하면 "언론이 우리를 조진다"고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쉬운 말이겠다. 하지만 정을병 소설 이후 30여 년이 흘렀다. 그런 고발 의식이 아니라면 이는 그저 막말에 불과하다. 국사를 논의하는 국무회의에서 거침없이 '조진다'가 입에 오르는 요즘 한국말 풍경. 그것도 그저 세태일 뿐인가.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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