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피아노 소설Q
천희란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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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피아노 - 천희란(창비)

 

 

책의 표지 삽화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범상치 않음이 소설 곳곳에 스며있는 책.

창비의 소설Q 시리즈의 마지막 책 천희란 소설의 [자동 피아노]이다.

소설은 전혀 소설의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게 하는 문체로 쓰여졌다. 작가는 자기 자신에 갇힌 인물이 내적으로 분열하는 목소리를 시작부터 소설의 끝까지 한결같이 내고 있다. 그 분열의 중심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에 대한 욕망과 충동 그리고 운명적 회귀. 그럼에도 이에 대응하는 삶에 대한 열망이 소설 속에서 부단히도 싸우고 있다.

 

책의 목차는 그저 1~의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고 각 장마다는 하나씩의 피아노곡이 수록되어 있다. 분명 자동 피아노에서 흐르는 피아노 소리일 것이다. 그 곡과는 상당히 별개의 내용이 소설로 풀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후에는 이 피아노곡이 소설의 각 장마다의 분위기를 완성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을 옮기게 되었다.

 

소설 전반에서 작가는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죽음에 대해 의식적으로 다가가지만 그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파생된 것들은 죽음이라는 생각에 경계를 흐릿하게 하곤 한다. 그래서 다시금 그 죽음으로 돌아오기 위해 작가는 자주 이 문장을 쓰곤 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 죽음, 그래 죽음이지.”

 

작가는 책의 마지막 즈음에서 말한다. “매번 그 연주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연주가 지속되는 만큼의 시간만을 살 수 있어서.” 죽음을 내내 이야기 하고 고뇌하고 끝내 방황하는 그 역시 단 하나 바랐던 것이 삶이었다. 어쩌면 삶을 바랐기에 끊임없이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았을까.

 

전반적으로 고독과 고뇌, 깊은 상실에 대하여 연주해 오면서 그 결론은 삶에 대한 열망과 어쩔 수 없는 체념, 그로부터 오는 슬픔을 이야기 한다. 결국 삶은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 삶을 체념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작가는 고통을 느낀다. 연주는 끝나가고 작가는 혼란스럽다. 연주는 끝나가고 또 작가는 길을 잃었다가 다시 죽음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을 지각한다. 연주가 끝나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여기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도 작가는 혼란스럽다. 언제 죽음에 대한 이러한 찬미를 시작했는지 도통 기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게 소설을 끝이 난다.

 

깊이를 바라고 읽어가기에는 책은 많이 껄끄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어떠한 서사도 없이 그저 삶의 불안과 죽음의 충동 그에 사로잡힌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뒤엉켜 있다. 쓰여진 인과에는 어떠한 근거도 논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역설이 역설이 아니게 되는 화법과 상충되고 모순적인 사유가 끝없이 반복되고 또 반복될 뿐. 단어의 이러한 비이상적인 나열과 문장의 이음새는 작가의 심리를 충분히 반영하였다.

 

책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고통 그에 대한 두려움을 원초적이면서도 아주 고차원적으로 써내려갔다. 이러한 모순이 이루어지는 책이다. 그러므로 나는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그리고 작가가 느꼈을 그 모든 감정에 대한. 작가는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독자들이 소설 속 인물에서 현실의 나를 보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그것이 독자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작가는 이런 인간의 그리고 본인이 겪었던 가장 깊은 진리에 대하여 용기 있는 사람이다. 또한 이것이 독자로 하여금 어떤 영향을 받게 할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고 상냥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쓰여지고 독자에게 심어져 어떤 상위의 깨달음으로 이어갈지에 대한 기대와 믿음으로 여전히 쓰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절대적으로 독자의 감성과 정신에 친절한 소설은 아니다. 허나 이 첨예한 글이 독자에게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꽃을 이우게 할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아픔을 겪고 일어선 사람이 아픔을 안아주는 법이 작가에게는 이러한 글을 끝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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