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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쇼 선생님께 ㅣ 보림문학선 3
비벌리 클리어리 지음, 이승민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평점 :
어린 소년이 정성스레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이 담긴 책 표지와 함께 <헨쇼 선생님께>라는 제목에서 우선 정감이 간다. 나 또한 리 보츠만큼 어린 시절은 아니었지만, 여고시절 무척 설레이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꽤 오랜 동안 편지라는 걸 써 본 경험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는지 모르募?
계절은 무르익어 햇살이 화창한 토요일 오후, 사흘 전에 받은 책을 시작도 못 하고 있었던 것은 엄청난 감기 몸살로 거의 침대를 끼고 지냈기 때문이다. 사흘 버티고 간 병원에서 놓아 준 주사 덕분인지 기력을 얻어 든 책은 도저히 손에서 뗄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이쪽 저쪽을 돌려 누워 가며 담숨에 읽어버린 책. 흡입력과 감동면에서 일단 합격점이다.
또한 어린 리 보츠가 헨쇼 선생님께 쓴 편지와 그의 일기로만 되어 있지만, 그 편지 속에 헨쇼 선생님의 편지글도, 리 보츠를 둘러 싸고 있는 많은 어른(엄마, 아빠, 프리들리 아저씨, 사서 선생님...)들의 말과 생각이 다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만큼 매끄럽고, 작가의 다분히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이 책은 2학년 리 보츠가 꾸준히 자신이 좋아하는 책 <개를 재미있게 해 주는 방법>이란 동화의 작가 헨쇼 선생님께 쓰는 편지글로 시작된다. 그리고 책 시작 부분 40여 쪽이 기존의 하얀색이 아닌 미색지로 되어 있다. 그리고 리 보츠의 비밀일기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하얀 색 본래의 책 색깔이 드러난다. 그러다가 다시 헨쇼 선생님께 직접 부치게 되는 편지부분은 미색으로 되어 있음으로 해서 책을 읽는 이의 즐거움도 더해진다. 편지는 보내는 이의 마음이 드러나는 글이다. 보내는 이에게 어떤 특별한 것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색깔로 표현되지는 않았는가 싶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기사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일을 한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더이상 기다리고 살 수만은 없다고 하여 이혼을 하게 되고, 어린 리 보츠는 엄마와 단둘이 살게 된다. 부모의 이혼과 새로운 학교로 전학까지 겹치면서 아마도 리 보츠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통해 작가에게 편지를 쓰게 하신 선생님과 엄마의 책읽어주기는 리 보츠의 정신적인 성장을 가져 오게 하는 동력이 된 것 같다.여느 어린아이처럼 부모의 이혼이 싫고,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싫고, 전학와서 낯선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엄마와의 진정한 대화, 무뚝뚝한 것 같지만, 다정다감한 아빠는 비록 이혼했지만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는 부모들이다. 또한 학교의 사서 선생님과 같이 리 보츠가 글을 통해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한 어린이를 지긋이 비켜봐 주고,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도움을 주는 어른, 학교의 잡다한 일을 하시는 프리들리 아저씨와 같이 진정으로 어린이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가득한 어른들이 있는 한 흔히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결손가정의 결손 아동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표면적인 결손보다는 속으로 곪아가는 결손이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우리나라 교육계가 빨리 깨달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자연스러운 글쓰기를 통해서 처음부터 매끄럽게 글을 잘 쓰는 아이 리 보츠가 아닌 어설프고 조금은 무례하기까지 한 편지글을 쓰는 마냥 어린 아이 리 보츠에서, 편지 예절과 진솔한 글쓰기를 터득한 성숙한 어린이 리 보츠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책에서보면 2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리보츠가 그려지고 있다.)가뜩이나 요즘 우리나라에 선풍적인 바람을 타고 있는 독서, 글쓰기 지도에의 열풍이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글쓰기는 하루 하침에 되는 것도 아니요, 무조건 돈을 들여 교습을 받는다고 되는 일도 아닌 것이다. 오랜 기간 아이의 마음의 성숙과 책과 경험을 통한 자기 수양이 함께 이루어졌을 때.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글을 쓸 수 있을 것인데, 여기 리 보츠가 <어린이 작품집>에 낸 <아빠 트럭을 탄 날>과 같은 글은 말하자면 지금은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께서 오랜 기간 강조하신 어린이의 삶이 녹아 있는 글쓰기의 전형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삶과는 동떨어진 괴물 이야기로 1등상을 받았지만, 정작 작가와의 만남의 날, 안젤라 배저 선생님이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것에 대해 가장 솔직하게 쓴 글이었기에 의미가 있다고 하신 대목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른사람을 흉내내지 않고, 가장 자기다운 글-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표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독서나 글쓰기를 아이들에게 억지로 강요하고 있는 이 땅의 엄마들이 꼭 읽었으면 싶다. 또한 글쓰기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나, 의기소침한 어린이들에게는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도처에 있을 한부모 가정의 자녀들에게도 모범과 힘이 되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본다. 어른들에 의해 강제된 어린이의 삶이 무조건 어른에 의해 난도질 당하지 않고, 차근차근 대화와 설득과 이해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그 과정이 있어 아름답다.
많은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많은 여운을 남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