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지정학 수업 - 대륙부터 국경까지 지도에 가려진 8가지 진실
폴 리처드슨 지음, 이미숙 옮김 / 미래의창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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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둘러싼 틀 속에서 살아간다. 물리적인 환경도, 심리적인 요인도 모두 하나의 틀이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재산과 시간적 여유가 풍부하지 않는한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이라는 물리적 환경에서 보내야 하고 한국에서 배우게 되는 문화와 관습, 사상과 가치관도 나를 알게 모르게 조종하고 제약하는 틀이 된다. 완전히 새로운 지정학 수업이라는 책에서는 지리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던 틀들을 의심하고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대륙부터 국경까지 지도에 가려진 8가지 진실이라는 부제가 알려주듯이 책에서는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숨겨진 지도와 지정학적 진실을 다루고 있다.

대륙 -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구분

저자가 가장 먼저 깨뜨리는 틀은 대륙의 정의이다. 우리는 5대양 6대륙을 사회책에서 공부했고, 이대로 알고 세상을 인식한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 돌을 던지며 우리가 가진 상식에 묻는다. 대륙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언제부터 구별되어졌는가?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질문에 생각보다 대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럽과 아시아는 다른 대륙으로 여겨지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나눈다고 정의되지만 우랄산맥은 히말라야처럼 경계를 명확히 나눠줄만한 험준한 산맥이 아니다. 아메리카는 과거 한 대륙으로 취급되다가 북미와 남미로 나눠졌다. 이처럼 대륙은 자연스럽게 나눠진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의도를 가지고 나눴고 인식해왔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인도는 아시아 대륙에 속하지만 판구조론으로 보면 오히려 호주와 같이 묶여야 한다. 과거에 대륙은 판게아라고 불리는 하나의 거대한 땅이었다. 이처럼 변해가는 지구 속 모습에서 대륙 구별은 인위적인 구분 짓기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를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대륙구도는 지리학자와 지도 제작자만큼이나 교사, 작가, 예술가, 정치인, 언론인의 작업을 통해 유지되는 정치적문화적 구조로서 오늘날까지 꿋꿋이 이어져왔다.

비록 대륙구도가 실제의 인적물리적 지형과 맞지 않을지라도, 끊임없이 재생산됨으로써 세계를 바라보는 자연스럽고 확고부동한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완전히 새로운 지정학 수업 - 59쪽

경계 - 대립이 아닌 협력

대륙 다음으로 저자가 의문을 가진 소재는 경계이다. 저자는 영국의 하드리아누스 방벽과 중국의 만리장성을 가지고 논지를 펼쳐 나간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하드리아누스 방벽이나 만리장성이 사람들의 생각처럼 이민족을 막는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민족과 만나고 교역하는 베이스 캠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드리아누스 방벽의 유산이 의미하는 것은 분리가 아니라 접촉과 이동, 만남이었다. 군사와 문화의 복합체인 방벽이 그 양편에 사회를 창조하고 이들의 세계를 연결하며 이동의 흐름을 조절했다. 제국의 전성기 시절 방벽 주변에서는 전쟁이 아닌 융성했던 공동체가 있었다. 장벽은 교류를 제한하기보다는 오히려 활성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반면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장막으로 상징되는 지금의 국가간 경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국경에서 위기와 긴장감을 높이는 요인은 국경과는 관계 없는 먼 곳에서 비롯된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장벽과 경계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아무리 장벽을 세우고 경계를 강화해도 경계를 넘어 들어오는 불법이민자를 막지 못하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국가와 주권 - 모호한 개념

저자는 국가와 주권에 대한 개념도 모호하기 이를데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국가와 주권도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것처럼 오래된 것이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사람들(주로 지배계층)이 자신들의 필요로 인해 만든 인위적으로 형성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국가는 산업혁명 시기가 도래하면서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다. 산업화가 시작되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이 시작되고, 교육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의 국민, 국가라는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국가라튼 틀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통치하고, 일하게 된 것이다. 언어가 표준화되고 철도망, 전신, 통신 수단의 발달로 연결성의 규모와 속도가 증가했고 이를 통해 상상 속의 국가 공동체가 실현되었다. 이는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상호 주관적 현실'이라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과거 민족적 공통점으로 형성된 국가 개념도 있지만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주권이란 것도 대체로 정의하기 어렵고 모순이 가득한 개념이라는 데에서 국가와 큰 차이가 없다. 주권은 국경을 구분하는 장벽 안에서는 구체적으로 명시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장소, 시간,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국은 브렉시트를 탈퇴하며 '통제권을 되찾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주권 국가가 휘두를 수 있는 주권이 얼마나 제한적인가를 영국이 브렉시트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국가 주권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을 뿐더러 언제나 주변 강대국이나 교회 세력 같은 경쟁 세력과 공존해왔다. 현대도 다르지 않다. 다국적 기업의 국경을 초월한 이해 관계, 자본 시장과 국제 금융의 변동성, 강력한 동맹국과 적국의 변덕, 그리고 초국가적 범죄 네트워크의 활동 같은 세계화의 특징으로 국가 주권은 약화되고 재구성되고 있다.

한 국가만의 고유한 주권은 허상일 뿐이다.


GDP - 한계와 문제점

GDP는 한 국가의 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최고의 지표 중 하나로 꼽힌다. 국가 단위로 경제 규모를 비교하거나,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확인하는데 있어서 가장 먼저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 국가들은 어떻게든 GDP 성장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현재 쓰이는 GDP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30년 경이다. GDP란 개념이 등장한 이후 GDP는 경제에서 핵심 개념이 되었지만 동시에 GDP에 대한 비판도 나타났다. GDP가 국민들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 GDP 계산에서 환경을 파괴하거나 범죄를 일으키는 것도 GDP를 올린다는 것이 주된 비판이었다.

저자는 GDP의 대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경제성장만 추구하는 방식에서 인간의 행복이나 가치, 인권을 추구하는 지표 등을 탐색해보자는 것이다.

러시아와 레반시즘 - 푸틴의 야욕

최근 국제 정세를 논할 때 빠져서는 안 될 나라가 바로 러시아이다. 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레반시즘(revanchism)의 부활'이라고 설명한다. 레반시즘이란 복수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과거의 입지와 권력,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것과 관련된 용어다.

저자는 러시아의 레반시즘과 팽창주의를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러시아는 표트르대제 이후 지속적인 팽창 정책을 통해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사람들은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 위해 꾸준한 팽창 정책, 남진 정책 등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사실 러시아는 이미 무르만스크라는 부동항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원한다는 건 환상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아도 이미 러시아는 흑해에 쓸만한 항구를 가지고 있다. 부동항은 러시아 팽창 정책의 근본적인 목표가 아니고, 그저 그런 명분의 하나일 뿐이었다.

저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러시아라는 국가의 이익보다는 푸틴 자신을 보전하고자 하는 욕구, 자신이 가진 권력과 부를 지키고자 하는 욕구가 더 크다고 지적한다. 레반시즘의 권력과 지위 회복이 러시아의 권력과 지위 회복이 아니라 푸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지키는 데 쓰이고 있음을 꼬집는다. 푸틴의 허황된 주장과 야망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인들과 민간인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는게 저자의 생각이다.

중국과 일대일로 - 지속불가능한 사업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과거 실크로드를 재현해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현대적인 교통망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 중국은 해당 지역 국가들과 협정을 맺고 대규모 금액의 차관을 제공하거나 인프라를 건설하는 사업을 맡았다.

저자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중국의 고속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성장 정책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내수 시장에서 더이상 건설업으로 경기 부양이 힘들어졌기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려서 해외 건설로 경제 성장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일대일로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인력과 자재들 중 상당수를 본국에서 가져다 쓴 걸로 유명하다. 남의 땅에 자기 돈과 자기 사람으로 인프라를 건설하면서 중국 경제를 성장시키는 전략이었다.

일대일로의 상대국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중국의 행동에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나라에서 중국의 개입을 비난하는 시위가 열렸다.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 없이 경제성이 낮은 사업에 자본을 투자하여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스리랑카의 경우 항구 운영으로 수익이 나지 않아 중국에 빚을 갚지 못해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기기까지 했다.

저자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지금과 같이 유지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과도한 개발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아프리카 -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아프리카를 대륙이 아닌 국가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이며 50개가 넘는 나라에 10억 명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엄청난 땅이다. 유럽인의 식민지 지배 전 각 지역별로 수준 높은 문화가 융성했으며 지역별로 기후 차이도, 인종 차이도, 언어 차이도 매우 심한 대륙이 아프리카다.

우리가 아프리카를 인식하는 관점은 유럽의 식민지 지배 이후 형성된 것이다. 아프리카를 낙후되고, 지저분하고, 못살고, 야만적이고, 야생인 지역으로 인식하는데 편견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시선을 '백인 구세주 컴플렉스'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예시를 제시한다.

백인들은 아프리카에 와서 고대 도시 그레이트 짐바브웨라는 유적을 발견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이렇게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유적에 대한 해석을 왜곡하고 조작했다. 그리고 온갖 진귀한 문화유산을 본국으로 가져가고 본인 국가의 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쳐박아 놓고 있다. 아무리 돌려달라고 해도 묵묵무답이다. 전시도 안 하고 연구도 안 하면서 돌려주지는 않는다.

유럽 열강들의 아프리카 식민 지배는 공식적으로는 끝났으나, 비공식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식민 지배의 후유증은 지금도 아프리카를 괴롭히고 있다. 과거 노예무역 당시 1,300만 명이나 되는 흑인 노예들이 아메리카로 팔려나갔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는 인구 증가가 다른 대륙에 비해 매우 더뎠다. 유럽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지배를 쉽게 하기 위해 식민지의 기존 지배층과 결탁했고 이들은 식민지의 피지배층을 착취했다. 유럽 열강이 떠난 후에도 이와 같은 지배 구조는 유지되었다. 여전히 빈부 격차는 크고, 부정부패는 심하고, 사회는 혼란스럽다. 유럽인들이 식민지를 지배할 때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어서 지배했어도 후유증을 피할 수 없었을텐데, 제대로 된 시스템 조차 만들어놓지 않았으니 혼란은 배가 됐다. 만들어 놓은 인프라도 자원 산지와 항구를 연결하는데 치중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저자는 아프리카를 온정적인 개입과 자선이 절실히 필요한 빈곤에 시달리는 땅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생생하고 활기찬 총천연색으로 살아 숨 쉬는 복잡한 곳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프리카는 경이로운 세계 문명의 발상지이자 인류의 궁극적인 기원이다.

정리

저자의 의도대로 가지고 있던 지정학적 틀이 좀 깨진 걸 느끼는가? 깨지지 않았다면 그만큼 살면서 익혀온 지정학적 개념이 강하게 박혀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새로운 세계가 어떤 곳일지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책을 일고 든 생각은 저자의 뜻은 좋으나,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저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저자의 생각은 유토피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낙관적이고 이상적이다. 각 국가들은 지금도 AI 시대에서 패권을 잡기 위해,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고,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온실 가스 감축은 미국의 미참여 속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국가간 경계는 확고하며, 경계에서 협력보다는 전쟁과 다툼이 더 많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행복과 안정, 평화보다는 국가의 GDP를 1%p 높이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와 행복, 탈권위와 친환경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자본과 권력의 논리가 앞선 세계에서 친환경과 탈권위, 인간의 행복과 평화라는 가치가 지켜질 수 있을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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