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를 듣고 출발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이미 늦다. 그들은 소리를 듣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이 끊어지는 그 순간 즉시 출발해야 히기 때문이다. 이만한 경청이 또 있을까. 침묵과 암흑에 귀 기울이는 것만 한 경청은 없다.
시를 읽는 일이 대저 그와 같다. 시에서 이야기만 추려 읽는 것은충분한 일이 못 된다. 우리는 시인의 목소리를 읽고, 침묵마저 읽어야 한다. 말한 것과 말한 것 사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 말로 하지 못한 것까지, 아니 시인 자신도 모르는 것까지, 보이지 않는암흑까지 경청하며 읽어야 한다. 물론 시인이라고 해서 제 목소리에취하지 않는 자는 아닐 것이다. 디만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목구멍이 아닌 귀로 들으려 애쓰는 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타인 대신 아파하고, 신음해 주고, 끙끙 앓는 소리로 간신히 침묵을 뚫고, 침묵을소리처럼 흘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마음으로 타인의 목소리를 읽고, 시인의 마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읽는 것. 그리하여 오동나무 소녀에게 목소리를 담아주고, 엘리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며, 인어 공주의 목소리를 회복해 주었으면 싶다. 목소리를 회복해 주는 것, 그것이 이 불통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이자 방식이었으면 싶다. 목소리가 살아야 사람이 산다. 목소리는 곧 그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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