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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란 책과 '제제'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지금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도 눈시울이 젖어온다. 나는 내가 '제제'가 되어 책 속 세상에 들어가 그 내용을 마음으로 겪었다. 책을 통해 우리가 '간접 경험'을 얻을 수 있다고 한 그 상투적인 말을 절절히, 가슴 시리게 느끼게 해 준 책이 바로 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세상에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누구에게도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오직 대자연만이 나를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만 포근함을 느꼈다. 특히 나는 '나무'를 좋아했다. 나는 마음 속에 한 그루 어린 나무를 심어 기르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정'은 없었지만, 그 나무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갈 데 없는 애정이 그 쪽으로 치우쳤던 것 같다. 점점 내 마음은 안으로만 안으로만 향해갔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이 책을 선물로 받아 갖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고 넘기고 또 넘기면서 나는 한없이 울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나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가면을 쓰듯이 감정을 참고 참았는데 왠지 이 책 앞에서는 발가벗은 어린아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쌓여왔던 많은 가슴 속 응어리들이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어리지만 그렇게 어리지도 않은 꼬마악동 제제를 보면서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말썽을 부리면서도 한켠에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아이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제제가 나는 좋았다. 그리고 제제를 가죽벨트로 내리치고 무쇠손바닥으로 뺨을 갈기는 아버지와 슬리퍼짝으로 때리는 누나들을 보면서 너무나 가슴이 저릿저릿해왔다.
누구나 그런 환경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만약 내가 제제였다면 그런 환경에 태어나게 한 신을 저주하면서 암흑 속에 갇힌 영혼으로 살았을 것 같다. 더군다나 모자람 없는 환경속에서 귀히 여김만을 받으면서 지내온 친구가 자전거를 자랑하는 걸 보면서 제제도 많이 부러웠을 거다. 크리스마스에 기대했던 작은 선물조차 못 받아 '예수님도 부자집에만 축복을 내린다' 던 제제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어찌나 가슴 에이던지... 제제에게 밍기뉴(어린 라임오렌지 나무의 이름)는 그런 위축된 마음을 어루만져 주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휴식같은 친구였다. 그러다가 제제는 뽀르뚜가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쌓아나간다.
제제는 뽀르뚜가에게 '아버지한테서 나를 사주세요' 라고 부탁하고 뽀르뚜가는 그런 제제를 안아준다. '이제 겨우 제제가 행복해지겠구나' 하고 조금 안심하고 있는데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망가라치바(기차)한테서 죽음의 냄새가 났다. 설마 설마 하면서 몇 장을 순식간에 넘겼다... 역시나... 제제에게 유일한 빛, 암흑 속에 빛 같았던 뽀르뚜가 아저씨를 망가라치바가 받아버렸다. 뽀르뚜가 아저씨는 이 세상을 떠나가는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제제 생각을 했을 거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나를 그렇게 떠올려줄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뽀르뚜가 아저씨를 잃고 제제는 많이 아프다. 거기에 더 아프게 제제에게 유일하게 남은 친구인 밍기뉴도 떠나간다. 꽃을 피우면서 어린 시절에 작별을 고하는 밍기뉴, 그리고 제제.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한 말은 마음 속의 작은 새를 잃어버린다는 뜻인가 보다. 제제는 그렇게 철이 들어간다.
철이 든다는 거,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얼마나 아프고 슬픈 일을 많이 겪으면 철이 들까? 아직은 제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내 마음 속에 무수한 상흔들이 조금은 무뎌지면 이 책을 웃으면서 읽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