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를 종료합니다 - 나를 괴롭히는 108번뇌 탈출 필사
필로소피랩 지음 / 각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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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숲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굳이 나에게 종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천주교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어릴 적 엄마는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다 따라가 보고 네가 선택해라.”는 말에 이끌려 여러 곳을 다녀본 끝에 내가 선택한 것은 천주교였다. 남편과 결혼을 결심할 때도 시어머니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반가웠다. 적어도 종교 문제로 갈등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묘한 생각이 든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어쩌면 종교의 경계를 크게 두지 않는 사람에 더 가깝다. 성당에 가면 하느님과 예수님께 진심으로 인사하고, 절에 가면 부처님 앞에서도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은다. 돌아가신 가족을 만나러 갈 때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안부를 전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교 자체보다도, 사람이 마음을 다스리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런 이유로 불교의 가르침 역시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번뇌를 종료합니다>는 그런 내게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다. 필로소피랩이 엮은 이 책은 ‘나를 괴롭히는 108번뇌 탈출 필사’라는 부제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108가지 고민을 다룬다. 불교 경전인 법구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지만 종교적인 설교보다는 생활 속 고민 상담에 가깝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다섯 개의 챕터를 통해 욕망, 분노, 무기력, 후회, 의심 등 인간이 반복적으로 겪는 감정을 정리하고, 필사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책이 다루는 번뇌들이 결코 거창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평화나 깨달음 같은 높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SNS를 볼 때마다 초라해진다”,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인정받지 못하면 허무하다”, “실수를 곱씹으며 괴로워한다” 같은 아주 현실적이고 사소한 감정들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여러 번 웃음이 났다.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면 왠지 고고하고 멀게 느껴지는데, 정작 책 속에 등장하는 고민들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찌질해서 오히려 공감이 갔다.



예를 들어 “나쁜 짓 한 사람이 멀쩡한 게 화가 난다”는 번뇌에 대해 책은 권선징악이 즉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그 감정의 뿌리라고 설명한다. 이어 법구경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결국 남의 인과응보를 기다리느라 내 삶을 낭비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악인의 결말은 우주에 맡기고 나는 오늘 내 몫을 산다”라는 짧은 문장을 필사하게 만든다.



이 책의 구조는 꽤 꼼꼼하다. 번뇌를 제시하고, 그 근원을 설명하고, 법구경의 문장을 들려주고, 현대적인 언어로 해석해 준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마음에 새길 한 줄 주문과 실천 목록까지 제안한다. 마치 상담가와 명상 지도자, 그리고 필사책이 한 권에 합쳐진 느낌이다.



그동안 여러 권의 필사책을 만났지만 <번뇌를 종료합니다>는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필사책이 좋은 문장을 옮겨 적는 데 집중한다면, 이 책은 먼저 내 마음속 문제를 찾아낸 뒤 그 문제를 다독이는 과정에 가깝다. 끊임없이 원하는 마음, 화내고 원망하는 마음, 멍하고 무기력한 마음, 들떴다가 후회하는 마음, 의심하고 주저하는 마음까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웬만한 감정들은 거의 다 담겨 있다.



아마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둘 것 같지 않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해당 페이지를 펼쳐 읽고, 또 한 줄을 따라 적게 될 것 같다. 번뇌를 완전히 종료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번뇌에 휘둘리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은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연습을 위한 꽤 다정한 안내서다. 마음이 시끄러운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고 필사해 보기를 추천한다. 별 다섯개로는 모자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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