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괴담
오카자키 하야토 지음, 민경욱 옮김 / 팩토리나인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점을 좋아한다. 특별히 살 책이 없어도 그냥 들어가서 책 냄새 맡고, 표지 구경하고, 종이들을 만지작 거리다며 어슬렁거리다 나오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당분간 서점에 못 갈 것 같다.


<서점 괴담>은 제목 그대로 서점을 배경으로 한 괴담 소설인데, 형식이 좀 독특하다. 슬럼프에 빠진 작가 오카자키 하야토와 담당 편집자인 히시카와가 서점을 소재로 한 히트작을 만들겠다며 전국 서점 직원들한테 괴담을 모으기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작가 본인이 주인공이다. 픽션인데 픽션 같지 않은 모큐멘터리 형식이랄까. 읽는 내내 이게 실화인지 아닌지 자꾸 헷갈렸다.

처음에는 그냥 괴담 모음집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펼쳤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기분이 슬금슬금 나빠진다. 갑자기 비명을 지를 만큼 무서운 게 아니라, 스며드는 느낌이다. 창문 밖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처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달라진 것처럼. 어느 페이지부터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어느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게 됐다.

사실 모큐멘터리 형식이 이렇게 효과적일 줄은 몰랐다. 작가 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실제 취재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어디까지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경계가 자꾸 흐려진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는 '이건 fiction이니까'라는 안전망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안전망을 교묘하게 걷어내버린다. 결국 독자는 계속 의심하면서 읽게 된다. 이게 진짜야, 아니야? 그 불편한 의심이 공포보다 더 오래 남는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조용한 공간, 점원이 묵묵히 책을 정리하는 공간, 누군가 오래 서서 책을 읽는 공간. 평소엔 그냥 편안하고 좋은 곳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조용함이 좀 다르게 보인다. 내가 자주 가는 동네 서점이 자꾸 겹쳐 보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단순히 무섭다기보다 기묘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괴담들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읽다 보면 뭔가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이야기들 사이에 숨어 있는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게 공포보다 미스터리에 가까워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 무서워서 못 읽겠다는 생각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멈출 수 없다는 쪽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한테 더 잘 맞는 책인 것 같다. 서점이라는 공간에 애정이 있을수록, 그 친숙함이 배신당하는 느낌이 더 크게 오니까. 공포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온도의 책이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데 너무 자극적인 건 싫다면, 딱 맞을 것 같다.

번역도 자연스럽게 읽혔다. 괴담이라는 장르 특성상 문장의 호흡이나 분위기가 번역 과정에서 많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읽는 내내 어색한 부분 없이 잘 흘렀다. 일본 특유의 서늘하고 건조한 감각이 그대로 살아있어서, 번역서를 읽고 있다는 걸 잊을 만큼 몰입했다.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무서워서라기보다, 뭔가 여운이 남아서. 서점이라는 공간을 이렇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좋아하는 공간이 조금 낯설어지는 경험,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좋았다.

서점에서 일해보는 게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