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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에게 ㅣ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113
산드라 르구엔 지음, 세실 그림, 박재연 옮김 / 북극곰 / 2026년 1월
평점 :
[이 리뷰는 리뷰의숲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크게 보면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한 아이가 세상에 오기 전의 기다림, 태어나는 순간의 벅참, 그리고 함께 살아가며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들. 스토리가 복잡하게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조용해지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미 곁에 있는 가족일 수도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아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속 문장들은 전체적으로 길지 않다. 문단마다 숨을 고르듯 여백이 많아서, 문장을 “읽는다”기보다 “머문다”에 가깝게 느껴진다. 한 줄 읽고 눈을 들어 그림을 보게 되고, 다시 돌아와 같은 문장을 또 읽게 되는 식이다. 산드라 르구엔의 글은 서툰 고백 같으면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야 할 수 있는 고백처럼 느껴진다. 막 사랑에 빠졌을 때의 들뜬 언어라기보다는, 밤에 아이가 잠든 얼굴을 보다가 비로소 마음속에서 조용히 올라오는, 그런 종류의 말들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목청껏 외치는 대신, “너와 함께여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를 조용하게 짚어 주는 느낌에 가깝다.

그림도 글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색감은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튀지 않는다. 과장된 표정보다는 일상의 순간들을 담담하게 포착한 장면들이 많다. 아이를 안거나 업고 있는 모습들이 따뜻해서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의 특별한 하루라기보다, 수많은 하루 중 하나인데도, 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해 주는 그림들이다. 그래서 이 책은 화려해서 눈을 사로잡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생각나는 몇 장면을 남기는 쪽에 가깝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나 자신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가 실제 아이일 수도 있고, 예전의 나일 수도 있고, 지금 노력하며 버티고 있는 나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라면서 종종 잊는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을 거라는 사실을. 부모가 있었든, 없었든, 혹은 그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고 느끼든 간에, 최소한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누군가 이렇게 나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상상해 볼 수 있다. 그 상상 자체가 이미 꽤 큰 위로가 된다.

출산을 앞둔 사람이나 막 아이를 품에 안은 부모에게 선물하면 얼마나 좋을까. 말로는 다 못할 축하와 응원을 대신 담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고생 많았어, 이제부터 또 다른 여행이 시작이야. 분명 쉽지 않을 거야. 그래도 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분명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이 될 거야.” 이런 말을, 굳이 장문의 편지로 쓰지 않아도, 이 한 권이 어느 정도 대신 전달해 줄 것 같다. 백일이나 돌, 혹은 생일에 아이에게 남겨 두는 첫 책으로도 잘 어울린다. 시간이 지나 아이가 글을 읽게 되었을 때, “이게 너에게 처음 선물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어”라고 건네줄 만한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남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꼭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엄청난 이벤트나 선물, 감동적인 편지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그저 매일의 시간을 함께 견디고, 웃고, 울고, 버티고, 다시 시작하는 그 반복 자체가 이미 커다란 고백일 수 있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에게』는 그 사실을 잊지 않게 부드럽게 상기시켜 준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결국 어른 자신을 위해 건네는 한 권의 에세이 같은 그림책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