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지막 황제 ㅣ 상호의존성단 시리즈 3
존 스칼지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21년 10월
평점 :
[우주클럽_SF서평단의 모집으로 구픽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2017년 첫 선을 보인 존 스칼지의 스페이스 오페라 상호의존성단 시리즈는 1편 <무너지는 제국>에서 인류 문명을 연결하던 시공연속체 '플로우'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를 연다. 각 행성들은 플로우를 통한 교역 없이는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구조 속에 얽혀 있고, 그 사실을 인지한 새내기 여황제 그레이랜드 2세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이 시리즈의 큰 뼈대다.
2편 <타오르는 화염>에서는 세계관이 한층 세밀해지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귀족 세력과 황제의 정치적 대결이 더욱 팽팽해지고, 캐릭터들의 행동에 설득력이 붙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망의 3편, <마지막 황제>.

솔직히 말하면, 나는 좀 더 화려한 해피엔딩을 꿈꿨다. 빵빵 터트리고, 빌런을 시원하게 우주 밖으로 날려버리고, 주인공들의 결혼식 같은 게 나오는, 그런 뻔한 해피엔딩. 근데 스칼지는 그걸 주지 않는다. 1, 2편을 흥미롭게 읽었던 독자라면 예측했을 법한 엑소더스 대신, 작가는 끝까지 인물들의 주도면밀한 심리극과 반전에 공을 들인다. 그게 실망이냐, 아니면 오히려 가슴에 더 오래 남는 방식이냐,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와중에 키바의 등장이 더 잦았다면 훨씬 신나게 읽었을 것 같다. 키바는 정말 사랑스럽다.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책을 손에서 내려놓기 어렵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아래 대목에서는 잠시 멈춰서 다시 읽게 됐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인류의 운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순간에 인간 문명이 감당할 수 있는 이기적이고 자기정심적인 사람들의 수는 상당히 줄어든다. 대단한 계시 같은 순간은 아니었지만, 키바는 불현듯 뭔가를 깨닫고 잠시 멈칫했다. 이전보다 근복적으로 덜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혹은 다른 사람들을 덜 이기적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하느냐." p48
욕쟁이 자유영혼으로 시작한 키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게 이 시리즈의 성장 서사 중 가장 조용하고 강한 순간이었다.

플로우 붕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도 귀족들과 집권층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급급하고, 위기의 실체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며, 대응을 미루는 모습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 지구 온난화 앞에서 강대국과 대기업들이 보여온 태도와 너무나 닮아 있다. 먼 미래의 SF처럼 읽히다가도, 결국 이 이야기가 지금 여기를 향해 손가락을 뻗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스칼지의 의도가 분명히 있겠지만, 그 의도를 의식하지 않고 읽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더 무섭기도 하다.
또 하나, 이번 편에서 등장하는 '지위'라는 존재는 이야기의 흐름 자체를 바꿔놓는다.
"어떤 숨겨진 정보가 지위의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되기까지는 수년, 혹은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비록 속도와 계략은 부족할지언정, 지위는 끈질겼다. 숨어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걸리게 되어 있었다." p55
이야기의 핵심을 쥔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어떻게'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의 문제로 게임이 전환되는 느낌이랄까.

'플로우'라는 개념은 세 권을 읽는 내내 시각적으로 잘 그려지지 않았다. 대충 은하수와 오로라를 섞어 상상을 정리해버리고, 그냥 주인공들의 매력에 푹 빠져 읽었다고 하는 게 솔직한 독서 경험이다. SF치고는 우주를 내달리는 스펙터클보다 대화와 설명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차분하게 따라가기에 더없이 좋았다.

화려한 폭죽 같은 마무리를 기대했다가 살짝 김 빠진 게 사실이지만, 돌아보면 그 여운이 나쁘지 않다. 읽고 나서도 자꾸 키바와 카르니아, 그리고 마르스가 생각이 나고, 지위의 그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고, 귀족들의 행동이 뉴스 속 얼굴들과 겹쳐 보인다면, 이 시리즈는 오래 읽힐 자격이 충분히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결국 사람 이야기고 지금 이야기다. 그걸로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