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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제국 ㅣ 상호의존성단 시리즈 1
존 스칼지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23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너지는 제국(The Collapsing Empire)>을 읽고 난 뒤의 첫인상은 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제목부터 이미 무너지고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총 3권으로 그려진 이야기의 세계관을 설명해야하고, 등장인물들의 배경과 성격을 보여줘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처음에는 조금 더디게 느껴졌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비로소 리듬을 찾는다.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인류는 ‘플로우’라는 항로를 통해서만 우주를 이동한다.
각 행성은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채 서로에게 의존하는 제국 체제 속에 있다.
플로우가 붕괴하고 있다는 과학적 경고가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그러나 제국의 정치 권력과 상업 귀족들은 이를 은폐하거나 권력 다툼에 이용한다.
겉보기에는 견고한 제국이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균열이 시작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여성 인물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여제 카르데니아와 상인 귀족 가문의 키바는 처음부터 분명하게 여성으로 제시된다. 강한 주인공 캐릭터를 여성으로 잡는다. 독자는 이 두 인물에 대해 혼동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들에서 반복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대사제, 주교, 경호원, 경찰 같은 인물들이다.

읽는 동안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남성으로 상상한다. 직위 때문인지, 익숙한 서사의 관성 때문인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몇 페이지 뒤, 혹은 무심한 한 문장을 통해 그 인물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 작가는 이를 강조하지 않는다.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의 머릿속 고정관념을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키바는 이 소설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인물이다. 거침없는 입담과 욕설, 성적 농담을 섞어 던지는 말투는 분명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이야기의 활력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매력적인 역할을 한다. 제국의 정치극이 무거워질 때마다 키바의 대사는 공기를 바꿔 놓는다. 품위와 체면으로 유지되는 세계 안에서, 가장 노골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키바가 등장하는 장면은 대체로 속도가 붙는다.

초반부는 솔직히 조금 지루했다. 세계관과 정치 구조를 설명하는 데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다 보니, 이야기의 추진력이 약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177페이지, 브레나가 동생 마르스를 구하러 등장하는 장면에서 분위기가 바뀐다. 이때 던져지는 작가의 말장난과 대사는, 그동안 눌려 있던 이야기에 갑자기 숨을 불어넣는다. 그 장면 이후로 소설은 훨씬 경쾌해지고, 인물 간의 충돌도 생동감을 얻는다. 앞부분의 정체감이 준비 구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부터다.

전체적으로 <무너지는 제국>은 무겁지 않게 읽기 좋은 소설이다. 복잡한 세계관과 정치 구조를 다루고 있지만, 문체와 대사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다. 빠른 호흡으로 장면이 전환되고, 인물들의 말이 상황을 끌고 가기 때문에 길게 설명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서 설정이 많은 SF임에도 불구하고,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야기를 깊이 해석하기보다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읽기에 적당한 책이다.

이 소설은 분명히 ‘시작’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제국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고, 갈등은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렇기에 다음 이야기에 대한 여지를 충분히 남긴다. 다음 권 <타오르는 화염>에서는 이 불안정한 구조가 어떻게 흔들리고,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이미 시리즈 3권을 모두 가지고 있고, 끝까지 읽을 예정이라 이 제국의 균열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차분히 따라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