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 알고 있으면 척하기 좋은 지식의 파편들 세계척학전집 1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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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리뷰의숲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알고 있으면 삶이 조금 달라질까, 아니면 그저 말솜씨만 늘어날까. '모티브 출판사'의 <세계척학전집>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제목 속 ‘척학’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장난스럽지만 동시에 꽤 도발적이다. 아는 척, 지적인 척, 이해한 척. 이 책은 그런 태도를 풍자하는 동시에, 왜 우리가 그렇게 ‘척’하게 되는지까지 슬쩍 건드린다.



책을 읽으며 느낀 첫 인상은 의외로 차분하다는 것이었다. 철학과 과학, 인식과 사유를 다루고 있지만 문장은 과하게 힘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옆에서 천천히 말을 건네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부담이 없다.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 대신, 생각해보라는 여유가 먼저 온다.



이 책은 특정 이론이나 철학자를 깊이 파고들기보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해온 방식의 조각들을 모아 보여준다. 데카르트의 회의, 과학적 사고의 태도, 우리가 ‘안다’고 믿는 감각의 불완전함 같은 이야기들이 일상의 언어로 이어진다. 그 덕분에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책 속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내 삶과 겹쳐진다. 내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생각들,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관점들이 사실은 꽤 취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떤 문장은 금세 넘어가지만, 어떤 문장은 자꾸 멈추게 한다. 다시 읽고, 고개를 들고, 잠시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은 속독을 허락하지 않는다기보다,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에 가깝다. 그렇게 "내가 안다는 것이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인지, 혹은 안다고 믿는 것인지"로 시작해 "나는 누구인가?"까지 주춤주춤 다가간다. 이런 질문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저 한번쯤,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또한 이 책의 인상적인 점은, 지식을 ‘소유물’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우위에 서는 구조가 아니라, 질문을 던질 줄 아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흐른다. 그래서 제목에 담긴 ‘척’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농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아는 척을 하게 되는지, 정말로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무엇이 다른지, 그런 질문들이 읽는 내내 따라붙는다.


저자 이클립스는 복잡한 개념을 쉽게 풀어내는 데 능숙하지만, 그 과정에서 핵심을 희석시키지 않는다. 쉽게 읽히지만 가볍지는 않고, 친절하지만 단순하지 않다. 이 균형감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지적인 허영을 부추기지 않으면서도, 생각하는 즐거움은 분명히 남긴다.



<세계척학전집>은 한 번 읽고 덮는 책이라기보다, 생각이 막힐 때 다시 펼치게 되는 책이다. 지금 당장 모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이 책이 남겨두는 여운이다. 어떤 질문은 바로 답이 나오지 않고, 어떤 문장은 며칠 뒤 갑자기 떠오른다. 그런 식으로 이 책은 독자의 일상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건 아마 이것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완벽히 알 수 없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생각은 조금 더 정직해진다. <세계척학전집>은 그 출발선에 서게 해주는 책이다.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생각의 자세를 점검하는 독서. 그래서 이 책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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