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 - 국내 최초 나우아틀어 원전 기반 아즈텍 제국의 신화와 전설 드디어 시리즈 9
카밀라 타운센드 지음, 진정성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약 7년 전, 칸쿤에서 한 달 살이를 한 적이 있다. 맞다, 자랑이다.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내가 부럽다. 유카탄 반도의 푸른 하늘과 지글지글 타오르던 태양, 그리고 곳곳에 남은 거대한 유적지들 속을 걸으며 느꼈던 그 공기와 냄새는 아직도 선명하다. 치첸이사와 뚤룸, 그리고 이름 모를 작은 마야 마을의 돌기둥들.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어떤 불씨처럼 남았다. 그때부터였다. 아즈텍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쿵, 하고 뛰기 시작한 건.




치첸이사를 설명하던 원주민 가이드가 마지막에 던진 말이 지금도 귀에 맴돈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승자가 기록한 겁니다. 그러니 많은 부분이 다를 수도 있어요.”

그 문장은 나의 호기심을 묶어두는 매듭이 되었다. 언젠가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그래서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를 보았을 때, 반가움이 밀려왔다. 믿고 읽는 ‘현대지성’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니, 어쩐지 내 오랜 기다림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그동안 아즈텍 문화를 연구하기 어려웠던 이유, 그리고 서구 중심의 시선 속에서 왜곡된 오해들을 먼저 짚어준다.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이나 상징만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부터 다시 보여준다.


아즈텍 신화는 네 번의 세상을 지나 다섯 번째 시대를 맞이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재규어의 시대, 바람의 시대, 비의 시대, 물의 시대. 이 네 번의 세상은 각각의 멸망으로 끝나고, 그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세상이 태어난다. 그들의 신화 속 세계는 언제나 순환한다. 끝은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어쩐지 그 사유가 지금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다. 무너짐을 끝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반복의 리듬 말이다.




이 책은 승자인 스페인의 기록이 아닌 아즈텍 고유의 언어 ‘나우아틀어’를 기반으로 다시 쓰인 이야기다. 우리는 늘 정복자의 기록을 통해 문명을 배워왔다. 그러나 이 책은 패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다시 읽는다. 그 속에서 비로소 신화가 ‘그들만의 진실’로 살아난다. 패자는 죽었고, 그래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도 많다는 것이 아쉽다.


책 곳곳에 들어간 삽화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의 단서로 작용한다. 그림 하나하나가 아즈텍의 상징과 색을 품고 있어, 마치 오래된 벽화를 천천히 복원하듯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든다.


읽다 보면 어느새 ‘신화’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게 된다. 이 책은 단순히 전설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고, 인간을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인간은 신에게서 멀어지지 않았고, 신 또한 인간의 일부로 존재했다. 그들의 세계에는 경계가 없다.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신과 인간이 뒤섞이며 흐른다.


책을 덮은 뒤, 나는 다시 유카탄의 태양 아래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먼지와 땀, 그리고 돌의 온기.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이제는 그들의 신들이 내 안에서 이야기하는 듯하다. 아즈텍 문명은 멸망했지만, 그들의 신화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책을 읽기전의 내가 그곳에 있었듯, 이 책을 읽은 후의 유카탄 지역 여행을 꿈꾸게 된다.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만나는 아즈텍 신화>는 과거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몰랐던 ‘다른 시선’을 회복하는 일이다. 세상의 중심을 바꾸어보는 경험, 그 낯선 눈으로 다시 인간을 바라보는 시도.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신화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끝은, 언제나 또 다른 시작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