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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수요일 토요일
페트라 펠리니 지음, 전은경 옮김 / 북파머스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정리한 서평입니다.>
린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그저 중2병에 시달리는 사춘기 아이의 투덜거림 같아 보인다. 학교에 가기 싫고, 엄마와는 늘 티격태격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달고 산다. 하지만 그 안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삶에 진지하게 맞서는 철학자가 숨어 있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이야기를, 그것도 철없어 보이는 15살 소녀의 시선으로 풀어낸다는 것. 얼핏 들으면 가벼운 농담 같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 세계는 깊고 묵직하다.

린다는 일주일에 세 번, 월요일, 수요일, 토요일마다 후베르트 씨를 찾아간다. 86세의 전직 수영장 안전요원이었던 그는 이제 자신이 씹은 빵을 목구멍으로 넘길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날에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의사나 보호자의 눈에는 그저 치매 환자일 뿐이지만, 린다의 눈에는 여전히 한 사람, 한 인간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그를 환자가 아닌 ‘후베르트’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누군가를 마지막까지 한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단단한 존중인지 책은 담담하게 보여준다.

린다는 겉으로는 늘 투덜거리고 귀찮다는 표정을 짓지만, 사실 누구보다 사랑이 많은 아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하면서도,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추억을 만들어주려 애쓰고, 사소한 순간조차 의미로 채우려 한다. 그녀에게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을 고민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린다는 정말 철학자 같았다.
책 속에는 몇 명 안 되는 등장인물들이 린다와 하루하루를 만들어 간다. 늘 예민하게 굴지만 누구보다 헌신적인 엄마, 린다의 단 하나뿐인 친구 케빈, 후베르트를 곁에서 보살피는 마음약한 요양보호사 에바, 그리고 후베르트의 딸까지. 단출한 인물들만으로 이야기는 풍성하다. 각자 상처와 외로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서로 부딪히고 기대며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가족사진처럼 따뜻하게 남는다. 책을 덮고 나면 나도 모르게 부모님을 떠올리게 되고, 사춘기 시절 내 안에 숨어 있던 서툰 마음들이 불쑥 고개를 든다.
책을 읽는 동안 평소에 써본적이 없는 ‘애잔하다’는 단어가 몇 번이나 떠올랐다. 하지만 단순히 슬프다거나 가엾다는 의미의 애잔함이 아니라, 한없이 따뜻하면서도 언젠가 놓아주어야 할 것을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에 가까웠다. 후베르트의 치매는 돌이킬 수 없는 퇴행이지만, 그와 함께 보낸 시간들은 린다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삶을 단단히 붙들어주는 기억이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프지만 동시에 애틋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래전 좋아했던 ‘모모’를 떠올렸다. 미하엘 엔데가 그린 모모의 맑은 눈빛이 린다의 모습과 겹쳐졌다. 시간이 흘러 어린 모모가 자라 소녀가 되면, 그리고 철학자가 되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독일어권 문학이 그려내는 소녀는 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속에 여러 가지가 동시에 남는다. 치매 부모를 둔 자식으로서의 불안, 반항하는 청소년의 순수함에 대한 연민, 그리고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 앞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 이 소설은 거창한 메시지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소박한 하루하루를 통해 삶의 무게를 보여주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랑을 드러낸다. 읽고 나면 마음 한쪽이 먹먹해지고, 동시에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다.
결국 이 책이 전하는 감정은 애잔함과 애틋함 그 사이에 있다. 삶의 끝을 향해 가는 노인과 삶의 시작선에 서 있는 소녀가 만나 서로를 비춘 순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힘이고, 읽는 내내 내 마음을 붙잡아 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