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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 하나, 내 멋대로 산다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서교책방 / 2025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정리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오시 하나라는 인물의 생생한 기운이었다. 칠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화려하게 단장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그녀. 흔히 노년을 ‘자연스러움’으로 포장하며 주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말하는 사회의 시선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다. 오시 하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이는 본인이 아니라 남들이 잊게 만들어야 한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나이 듦을 애써 감추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태도로서 “늙음에 주눅들지 말라”는 선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꾸밈을 줄이고, 사회적 역할에서 물러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오시 하나는 정반대다. 오히려 더 치장하고, 더 화려해지고, 더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책 속의 그녀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노인의 가장 큰 적은 자연스러움일지도 모른다.” 자연에 맡기면 몸은 늙고 기운은 꺾인다. 그런데 그녀는 그에 맞서 당당하게 외친다. “나는 내 멋대로 살겠다.”
그런 태도는 단순한 허영이 아니다. 삶을 끝까지 움켜쥐려는 의지다. 실제로 많은 리뷰에서 오시 하나가 던지는 말들이 인생을 흔드는 울림이었다고 말한다. 나도 책을 따라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왜 꼭 노년은 고요하고 단정해야만 하지?’ 노인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고, 치장할 수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삶의 활기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삶이 마냥 화려하고 경쾌한 것만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떠난다. 오십년이 넘게 곁에 있던 사람, 삶의 대부분을 함께한 존재가 사라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커다란 상실인데, 남편이 남긴 유서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숨어 있었다. 또 다른 사랑, 그리고 서른여섯 살의 숨겨진 아들. 오시 하나의 세계는 한순간에 뒤집힌다. 믿어온 기반이 무너지는 경험,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시 하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일어난다. “내 멋대로 산다”는 말은 화려한 장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진짜 삶을 붙잡는 방식이었음을 보여준다. 가장 큰 충격 앞에서도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사랑과 배신, 상실과 자유가 한데 얽힌 상황 속에서, 여전히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태도는 놀라울 만큼 단단하다.
책을 읽다 보면 자꾸 현실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어느 모임에 나가면 나이든 어른들이 한탄처럼 “나이 드니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오시 하나를 보면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자신을 단장하고, 새로운 무대에 서고, 자기만의 기쁨을 찾아도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내 멋대로 산다’는 말은 쉽게 오해받는다.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내 멋대로는 전혀 다르다. 남에게 피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는 방식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사회가 어떻게 규정하든, 결국 자기 기준대로 살아야 한다는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는 오히려 타인에게도 울림을 준다. “나도 조금은 내 멋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중얼거리게 만드는 힘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나이들어 가고 있는 나를 한번쯤 돌아볼 수 있는 책이라 그것만으로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