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꽃체 필사 노트 - 미꽃 글씨로 따라 쓰는 인생시(時)
최현미 지음 / 시원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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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필사하고 소감을 정리한 글입니다.>


손글씨는 말보다 느리고, 타이핑보다 불완전하지만, 그렇기에 더 자주 진심을 품는다. 나는 내가 글씨를 잘 쓴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 분명 손글씨를 좋아하고, 자주 쓰는 편이다. ‘미꽃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도, 어쩐지 궁금함이 일었다.




우리는 흔히 어린아이처럼 동글동글하고 기울어진, 어쩌면 조금은 흐트러진 글씨를 쓰며 살아간다. 스마트폰 자판과 키보드에 익숙한 요즘엔, 손글씨는 더더욱 개인적인 취향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글씨에 오래 익숙해지다 보면, 정갈하게 뻗은 ‘정자체’가 괜스레 그리워진다. 가지런한 획과 일정한 자간, 또박또박 선이 맞닿아 있는 그 단단함. 단정한 글씨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힘이 있다. 그건 아마, 바르게 서보려는 마음이 글씨에도 고스란히 스며드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책을 펼치자마자 바로 따라 써보았다.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일단 써보자. 시키는 대로 해보면 답이 나올지도 몰라.” 그런데 곧 알게 되었다. 답은 ‘글씨의 생김새’가 아니라, 글씨를 써내려가는 순간의 마음에 있다는 걸. 손이 서두르거나 마음이 불안할 때는 획이 삐끗하고, 줄이 금세 비뚤어진다. 눈과 손이 맞지 않는 날에는 선이 흔들리고, 자꾸만 다시 고쳐쓰고 싶어진다. 결국 글자는 마음의 숨결과 같다는 것을, 나는 이 필사 노트를 통해 다시 느끼게 되었다.





급하게 메모를 남길 때의 글씨와, 좋은 문장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천천히 옮겨 적는 필사는 전혀 다르다. 이 노트는 그 다름을 정확히 짚어준다.

1. 먼저 내 글씨로 시를 써본다.

2. 흐릿하게 인쇄된 미꽃체 위에 덧대어 써본다.

3. 같은 문장을 다시, 또다시 반복해 쓴다.

매번 쓸수록 글씨는 조금씩 달라지고, 마음은 점점 가라앉는다. 획 하나, 줄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어느 순간 글씨체가 조금씩 미꽃체를 닮아간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는 ‘나의 리듬’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시를 좋아하지만, 시를 자주 읽지는 않는다. 독서라고 하면 언제나 흥미롭고 자극적인 문장에 더 손이 간다. 도파민을 뿜어내는 이야기들, 한 장을 넘기면 그다음이 궁금해지는 책들. 그래서일까, 가끔 시를 접하면 머릿속이 맑아지는 걸 느끼면서도, 막상 내 일상 속으로는 잘 들여오지 못했다.




그런데 이 미꽃체 필사 노트는 나에게 다시 시를 꺼내 읽는 ‘시간’을 만들어줬다. 윤동주, 나태주처럼 익숙한 이름의 시인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이름의 시인들까지. 어쩌면 그동안 놓치고 지나간 보석 같은 시구들이 이 노트에 곱게 담겨 있었다. 짧지만 깊고, 단순하지만 여운이 긴 문장들. 한 편의 시를 천천히 베껴 쓰다 보면, 그 시가 단지 종이 위 문장이 아니라 마음속 어딘가에 가만히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예쁜 시 52편을 하루에 하나씩 따라 쓰다 보면, 어느새 나의 하루가 달라진다. 중요한 건 글씨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보냈느냐는 점이다. 천천히 손을 움직이고, 입 안에서 조용히 읊조리며, 글자가 품은 감정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시간. 그건 글씨를 ‘다듬는’ 시간이자,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문장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며 문득 생각했다. 곧고 바른 글씨는 단지 보기 좋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연습일지도 모른다고. 단정한 글씨체를 얻게 되는 것은 분명 보너스다. 이 노트의 진짜 선물은, 하루의 숨을 고르게 해주고, 마음을 맑게 만들어주는 조용한 의식이 아닐까.

앞으로 나는 하루에 시 하나씩 또박또박 써내려갈 생각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는 날에는 두 편, 가슴이 먹먹한 날에는 세 편이라도 써야지. 그렇게 글자를 따라 걷다 보면, 언젠가 마음도 단정히 자리를 찾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조금은 더 단단한 글씨체를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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