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을 일렬로 나열하며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그림을 통해 각각의 사상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고, 어떤 과학적 성과로 남았는지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 해석을 통해 독자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게 아니라, 철학과 과학적 사유의 맥락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여러 학파를 정리해주는 철학 입문서도 많고, 명화를 해설하는 미술책도 많지만, 이 책처럼 오직 그림 한 장을 깊게 파고들며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사유를 펼쳐내는 방식은 흔치 않다. 철학과 예술, 역사와 과학이 한데 얽힌 이 그림은 마치 서양 문명의 집약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저자는 그 복잡한 구조를 풀어 독자가 따라갈 수 있게 정리해준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통해 철학자들의 사유를 다시 읽는다
이 책은 라파엘로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일까?
둘 다일 수도 있고, 동시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지적 뿌리를 되짚는 과학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 책이 과학책으로 분류되기를 희망하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해 현대 과학과 문명에까지 영향을 준 철학의 궤적이 단 하나의 예술 작품에서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고 있다.
철학의 기초나 과학에 대한 아무 사전 지식이 없는 내가 읽기에는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도 있다. 몇 번씩 반복해서 읽어야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이해하려 애쓰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이름만 익숙했던 철학자들이 어떤 상징으로 표현되는 사상을 가졌는지를 이렇게 직관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은 드물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고, 그 안에서 철학을 비롯한 시대적 학문을 ‘느끼는’ 경험이 가능하다.
책은 두껍지 않고, 삽화가 빽빽히 들어 있어 몰입을 돕는다.
필사를 하면서 천천히 따라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을 옮기며 생각을 정리하고, 그림을 다시 보며 철학자의 시선을 상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그 아테네의 뜰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결국, 이 책은 철학을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철학을 감각하게 한다.
그림 하나로 시작된 철학의 여정. 나는 그 속에서 조금 느리고 서툴렀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사유의 장면을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