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 어느 노비 가계 2백년의 기록
권내현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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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혈통에 대한 관심은 뿌리 깊다. 학맥, 인맥, 지연 등 여러 사회자본 가운데 친인척이나 문중 등을 기반으로 한 혈연 역시 주요한 사회자본으로 한국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다. 성묘철이 되면 붐비는 성묘객들로 고속도로가 막히고, 여전히 족보가 활발하게 편찬되고 있다. 인기를 끄는 ‘막장’드라마들에서 잊고 살았던 친자가 등장하면서 기존에 있던 관계에 긴장과 갈등을 빚는 모습은 낯익은 장면이다. 그런데 이렇게 혈통(특히 부계 혈통)과 뿌리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그 출발은 조선 후기 정도로 잡을 수 있다. 최근 역사비평사에서 출간된 권내현 교수의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은 그러한 과정을 한 가계를 통해 압축적이면서도 역동적인 형태로 잘 보여준다.

 

책에서는 경남 단성에서 다량으로 보존된 단성호적을 주 자료로, 한 양반가의 노비에서부터 출발하여 노비의 후손들이 노비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중간층, 나아가 양반층으로 편입해 들어갔던 200여년 동안의 과정이 잘 묘사되고 있다. 관청이나 개인의 소유물로 취급받았던 노비들은 혼인을 하더라도 주인집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노비 부부가 각기 주인이 다를 경우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주인에게 노역이나 현물을 바쳐야 했다. 각종 천대를 받았던 노비들은 조선 후기 사회의 변동과정에서 도망가거나 자신들의 힘을 키워서 노비 신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갖가지 노력을 다했다. 수봉의 가계는 자신이 모은 재산을 통해 노비라는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자연재해대책으로 국가에서 필요한 구휼 비용을 마련할 때, 수봉은 재산 일부를 바치고 노비에서 평민으로 인정받았다. 비록 노비 신분이었지만 국가에 많은 곡식을 바칠 정도로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신분 해방에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은 주인에게 복종하면서도 틈틈이 토지를 경작하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재산을 늘려나갔다. 이어서 당시 본관과 성씨가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노비 출신의 수봉 일가는 김해 김씨를 성씨로 삼았고, 평민으로서의 행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평민이 되자 그들에게 다가왔던 것은 군역이라는 세금 부담이었다. 평민으로서의 만족감보다는 양반이 아니어서 부담을 지게 된다고 느꼈을 때, 그들은 평민이라는 신분을 또 다른 장애물로 여겼다. 또 한 번 신분 상승을 꾀하게 되는 동기였다.

 

수봉의 후손들이 곧바로 양반이 될 수는 없었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중간층으로의 진입을 꾀하였다. 그들은 호적에 중간층(업무, 업유 등)으로서의 직역으로 기록되었고, 이로써 점차 군역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수십년이 지나면서 수봉의 후손들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유학(幼學)’이란 호칭을 누리게 되었다. 이때가 19세기 중엽이었고, 수봉이 노비로부터 벗어난지 2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 과정에서 수봉의 후손들은 조상들의 직역을 새롭게 윤색하는 작업을 벌이면서 노비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또 김해 김씨에서 당시 권세가였던 안동 김씨로 본관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부계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양반들이 활용했던 입양 제도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족보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지역사회에서 양반으로 인정받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전통 양반 가문들은 이들을 경계했고, 신분제 질서는 여전히 강고했다. 수봉 가문이 실질적인 양반으로서 행세하려면 후손들 중에 과거 급제자가 배출되거나 지역에서의 학문적 업적을 쌓아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다음 목표는 자제들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교육과 학문의 세계로 입문하는 욕망은 근대 이후 더욱 활발하게 분출되었다.

 

노비들은 신분 해방을 꿈꿨고, 평민으로 성장한 뒤에는 군역 등 불평등한 세금 부과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다. 나아가 양반이 되기 위해 양반들의 가족질서를 모방하고 전유해갔다. 하층민들의 신분 상승 노력을 기존의 양반들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수봉 가문은 빈틈을 파고들었고,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물론 이 가운데 훨씬 많은 이들은 좌절을 경험했다. 이렇게 수봉 가문이 행한 모방은 전 사회적으로 일어났고, 그러한 신분 상승의 욕망은 근대 사회에 이르러 신분제가 폐지되는 데 밑바탕을 이루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은 노비와 일반 평민, 양반 사이의 길항 관계를 잘 보여준다. 양반 중심의 신분제 사회가 점차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양반들의 문화(부계 혈족의 강화, 가문의 윤색, 족보 편찬 등)와 이를 모방하려는 평민과 노비들의 행위를 통해서 잘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노비와 양반의 가계를 더듬어가면서 조선시대의 가문과 가계, 가족관계, 그리고 성씨 등에 대한 상식을 넓혀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노비의 이름에 왜 수많은 돌쇠와 마당쇠가 등장하는지, 개똥이의 한자식 표기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이야기도 독자에게는 흥미를 끌만한 부분이다.

 

오늘날 자기의 가문이 아주 고대부터 오랫동안 계속 이어져왔다는 환상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불과 2~300여년 전만 해도 대다수의 가문은 이 수봉 집안과 같은 운명에 놓여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환상을 깨주고 있다. 그렇지만 저자도 에필로그에 언급하듯이 오늘날 경제력과 학력은 서서히, 아니 이미 특권화하였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에 아직도 많은 이들은 닫혀가는 문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문 안으로 들어가는 자보다 못 들어가는 자들이 훨씬 많다. ‘될 놈 될 사회’는 너무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다. 또 다른 ‘신분’사회의 출현을 가만 두고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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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쟁점으로 읽는 20세기 한일관계사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8
정재정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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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좋아질 기미가 잘 안 보이는 요즈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기획된 ‘20세기 한국사시리즈의 하나로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오랫동안 한일역사 공동연구에 참여해온 정재정 교수의 책이 반갑다. 정재정 교수는 책을 통해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현대 한일관계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한일관계 개선에 필요한 지혜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동안 한일관계를 다루는 많은 책들이 특정 분야에 국한된 논의만을 다룬 경향에 비춰봤을 때, 여러 분야를 포괄하여 한일관계의 역사를 조망하고 있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점에서 저자가 바라듯이(14) 한일관계를 이해하는 데 조그만 길잡이내지는 친근한 안내서정도로는 충분히 성공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이 책에서는 현대 한일관계의 발단으로서 일제의 한국강점문제와 남북 분단국가에 이르는 일본제국의 유산 문제, 한일회담 추이와 한일조약 체결 및 국교재개, ‘버려진재일한인의 문제와 그를 통해본 남..일 관계, 경제발전 과정에서 양국의 관계, ‘한류일류같은 문화 교류의 차원, 역사인식의 상호이해와 평화공영에 관련한 문제 등이 폭넓게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책을 통해 여러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910년 이후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강점인지 합방인지 한일 양측의 논리를 알 수 있다. 1965년 체결된 한일조약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과 지배가 명시되지 않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고, 한국병합조약에 대한 무효문제라든가 한반도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이를 해소하지 못한 채 봉합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이때의 조약 체결에서 덮어뒀던 문제들이 현재 한일관계에서의 역사인식 갈등이나 식민지배와 전쟁 과정에서의 배상문제, 북일 수교 교섭 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국교 재개 과정에서 한일 사이의 비공식 채널의 가동과 밀사외교, 포항제철 건설 등 경제관계에서 한일 간 인맥이 작용한 매커니즘 등을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다. 또한 한일 역사갈등의 연원이 무엇이고, 역사 교과서 문제라든가 야스쿠니산사 참배 갈등, 독도 영유권 논쟁, 전후배상 문제 등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는 데도 이 책은 도움을 준다. 이처럼 이 책은 20세기 한일관계와 관련하여 기본적인 상식을 제공해준다. 이 책을 일독하면 매스컴에 보도되는 한일 관련 사안들이 어떤 논리와 배경에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아쉬움은 서술상 균형에 관한 부분이다. 6장 역사갈등과 평화공영 부분에서는 일본 쪽의 역사 망언이라든가 일본의 역사인식에서의 특징 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일본 쪽 역사인식의 문제 등을 서술하였고, 한국에서의 역사인식의 문제는 없는지 의문이다. 또한 글을 맺으며부분에서는 1990년대 이후 한일관계의 위상 변화를 설명하면서 한국은 민주화 이후 대체로 성장의 시각에서, 일본은 전반적인 보수화 국면에서 역사인식과 과거사처리에서 퇴행적인 모습이 보이는 시각으로 서술된 느낌이다(359~360). 이런 부분들을 읽을 때면, 한국보다는 일본에서의 문제들을 지적하는 데 더 치우쳐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작년에 한국 내에서도 소위 뉴라이트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고, 여전히 논란은 수면 아래에 잠복중이다. 교육행정 당국과 일부 보수언론은 기존 교과서의 역사서술을 일방적으로 좌편향이라고 매도하면서 성장적.팽창적인 사관을 담아내고, 때로는 친일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는 내용을 서술한 교과서를 의도적으로 옹호한 바 있다. 이런 점을 목도할 때 저자가 한일관계에서 한국에서의 한계와 문제점에도 서술을 할애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저자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잘못만을 지적하고 나아가 규탄하는 방식은 결국 상대방으로부터의 또 다른 비난의 화살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한일관계에서 쳇바퀴 돌듯이 봐왔다. 이런 방식으로는 말 그대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재구축하기 어렵다. 이와 함께 내셔널리즘 중심의 역사인식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는 일본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그런 분위기를 사회적으로 조성해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지를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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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어떨까? ‘철도 민영화’ 문제를 둘러싸고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이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주요 언론’의 보도는 ‘국민의 발을 묶어놓는다’거나, ‘수출 물량 수송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식으로 일관된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일으키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보도태도는 그 이전부터 줄곧 계속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몇 가지만 묻자. 그럼 노동자는 ‘국민’이 아닐까? 나는 노동자가 아닌가. 만약 내가 내 직장에서 어떤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위에서 물었던 답을 제시해주는 책은 아니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농민으로 대변되어왔던 ‘민중’에 대한 역사서술에 관한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책은 아니며, 주로 역사학이나 역사 관련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와 사회변혁의 물결이 휘몰아치던 80년대 한국사회에 ‘민중사학’의 바람이 불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민중사학’은 역사발전의 주체는 민중이며, 역사 발전 과정을 민중의 주체성이 확대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고, 민중이 주역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전망을 모색하는 학문경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경향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시민/민중의 분리라는 한국사회의 다변화 과정에서 과연 ‘민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받게 되었고, 학문 내적으로 주역이 되어야 할 민중이 오히려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종속되는 민중으로서 그려지는, 따라서 ‘민중사학’은 엘리트 지식인에 의해 상정된 민중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됨으로써 1990년대 중반 이후 쇠퇴하였다.

 

그러다가 IMF 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이 진행되면서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하였고, 노동과정의 유연화 속에서 과거 민중사학이 내걸었던 실천성과 비판의 정신을 되살려보고자 하는 흐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역사학계 일각에서 ‘새로운 민중사’를 표방하는 연구자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역사문제연구소 내 연구반인 민중사반이 그 대표적인 연구자 단체이다. 이 책은 바로 민중사반이 ‘새로운 민중사’를 내걸고 발표했던 글들을 새롭게 묶어낸 것이다.

 

‘새로운 민중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믿음” 속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12쪽). 그런 관점에서 이 책에서는 ‘민중’을 투쟁하는 주체에 앞서서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생활자로서 받아들이고, ‘민중’이 특정한 계급연합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다양한 구성과 정체성을 내포한 여러 목소리를 갖는 주체로서 상정한다. 또한 저자들은 민중을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억압받기 보다는 종속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담지하고 있는 주체로서 바라보고자 한다. 이러한 각도에서 저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실천적인 역사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과거에 ‘민중사’가 가능했던 것은 노동자, 농민으로 대변되는 계급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들이 주체가 되고, 그들의 투쟁에 의해서 역사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하는 한국사회의 조건이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87년 ‘절차적 민주화’가 일정 부분 달성된 이후 사회 분화가 훨씬 심화하면서 탈중심, 다변화한 사회로 바뀌었다. 이랬을 때 그 다양한 사회적 주체를 역사학적으로는 어떻게 서술하고, 표현하고, ‘재현’해갈 수 있을지, 그러한 현실에 대한 고민이 이 ‘새로운 민중사’ 시도에 많이 녹아 있다. 그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고, 그런 고민들을 실제 역사서술에 녹아내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러한 연구 결과물들을 ‘민중’, ‘대중’, ‘다중’ 등으로 표현되는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그럼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전망해가고 만들어갈 수 있는 일은 만만지 않다. ‘새로운 민중사’를 펼쳐나갈 때, 그것이 역사학계의 학문적인 방법론에 관한 검토에만 머무른다면 과거 민중사학에 대한 ‘실천성’에 대한 비판적 계승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민중사’가 나아갈 방향이 쉬운 것만은 아닌 상황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바뀌려면, 앞에서 언급했던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바뀌려면(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지식업계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이지만^^), 이 책에서 고민하고 있는 ‘새로운 민중사’는 충분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연구 성과들을 기대해본다.

 

끝으로 <미국민중사>의 저자이자 미국의 살아있는 지성이었던 고 하워드 진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나는 노동자든, 유색인이든, 여자든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하고 저항함으로써 운동을 일으킨다면 어떤 정부도 억누를 수 없는 목소리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 하워드 진, 앤서니 아노브 엮음,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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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사를 다시 말한다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지음 / 역사비평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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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절차적 민주화’가 일정 부분 달성된 이후 사회 분화가 훨씬 심화하면서 탈중심, 다변화한 사회로 바뀌었다. 이랬을 때 그 다양한 사회적 주체를 역사학적으로는 어떻게 서술하고, 표현하고, ‘재현’해갈 수 있을지, 그러한 현실에 대한 고민이 이 ‘새로운 민중사’ 시도에 많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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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어떨까? 지금 ‘철도 민영화’ 문제를 둘러싸고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주요 언론’의 보도는 ‘국민의 발을 묶어놓는다’거나, ‘수출 물량 수송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식으로 일관된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왜 파업을 일으키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보도태도는 그 이전부터 줄곧 계속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몇 가지만 묻자. 그럼 노동자는 ‘국민’이 아닐까? 나는 노동자가 아닌가. 만약 내가 내 직장에서 어떤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위에서 물었던 답을 제시해주는 책은 아니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농민으로 대변되어왔던 ‘민중’에 대한 역사서술에 관한 물음을 제기하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책은 아니며, 주로 역사학이나 역사 관련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와 사회변혁의 물결이 휘몰아치던 80년대 한국사회에 ‘민중사학’의 바람이 불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민중사학’은 역사발전의 주체는 민중이며, 역사 발전 과정을 민중의 주체성이 확대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고, 민중이 주역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전망을 모색하는 학문경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경향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 시민/민중의 분리라는 한국사회의 다변화 과정에서 과연 ‘민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받게 되었고, 학문 내적으로 주역이 되어야 할 민중이 오히려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종속되는 민중으로서 그려지는, 따라서 ‘민중사학’은 엘리트 지식인에 의해 상정된 민중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됨으로써 1990년대 중반 이후 쇠퇴하였다.

 

그러다가 IMF 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이 진행되면서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하였고, 노동과정의 유연화 속에서 과거 민중사학이 내걸었던 실천성과 비판의 정신을 되살려보고자 하는 흐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역사학계 일각에서 ‘새로운 민중사’를 표방하는 연구자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역사문제연구소 내 연구반인 민중사반이 그 대표적인 연구자 단체이다. 이 책은 바로 민중사반이 ‘새로운 민중사’를 내걸고 발표했던 글들을 새롭게 묶어낸 것이다.

 

‘새로운 민중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믿음” 속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12쪽). 그런 관점에서 이 책에서는 ‘민중’을 투쟁하는 주체에 앞서서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생활자로서 받아들이고, ‘민중’이 특정한 계급연합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다양한 구성과 정체성을 내포한 여러 목소리를 갖는 주체로서 상정한다. 또한 저자들은 민중을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억압받기 보다는 종속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담지하고 있는 주체로서 바라보고자 한다. 이러한 각도에서 저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실천적인 역사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과거에 ‘민중사’가 가능했던 것은 노동자, 농민으로 대변되는 계급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왔고’ 그들이 주체가 되고, 그들의 투쟁에 의해서 역사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하는 한국사회의 조건이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87년 ‘절차적 민주화’가 일정 부분 달성된 이후 사회 분화가 훨씬 심화하면서 탈중심, 다변화한 사회로 바뀌었다. 이랬을 때 그 다양한 사회적 주체를 역사학적으로는 어떻게 서술하고, 표현하고, ‘재현’해갈 수 있을지, 그러한 현실에 대한 고민이 이 ‘새로운 민중사’ 시도에 많이 녹아 있다. 그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고, 그런 고민들을 실제 역사서술에 녹아내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러한 연구 결과물들을 ‘민중’, ‘대중’, ‘다중’ 등으로 표현되는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그럼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전망해가고 만들어갈 수 있는 일은 만만지 않다. ‘새로운 민중사’를 펼쳐나갈 때, 그것이 역사학계의 학문적인 방법론에 관한 검토에만 머무른다면 과거 민중사학에 대한 ‘실천성’에 대한 비판적 계승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민중사’가 나아갈 방향이 쉬운 것만은 아닌 상황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바뀌려면, 앞에서 언급했던 ‘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바뀌려면(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지식업계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이지만^^), 이 책에서 고민하고 있는 ‘새로운 민중사’는 충분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연구 성과들을 기대해본다.

 

 

끝으로 <미국민중사>의 저자이자 미국의 살아있는 지성이었던 고 하워드 진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나는 노동자든, 유색인이든, 여자든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하고 저항함으로써 운동을 일으킨다면 어떤 정부도 억누를 수 없는 목소리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 하워드 진, 앤서니 아노브 엮음,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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