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학을 전공했고 벤야민에 대한 해설서를 쓴 바 있던 한 저자는 이 책에서 독일의 유태인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을 파고들었다. 보통 어느 인물의 행위나 사상적 내용을 파고들 법한데, 그 사람의 행동과 사상의 수단이면서 방법이 되었던 공부법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독특한 점이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주된 관심은 벤야민이 품었을 법한 질문을 추적하고, 그 질문에 벤야민이 어떤 경로로 답을 찾아갔는지, 그에게 공부란 무엇이었고,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11).

 

저자에 따르면 벤야민은 학자도 종교인도 번역가도 철학자도 시인도 아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벤야민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저항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는 점이다(16). 이때 글쓰기는 그의 삶의 방식이었는데,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대화하려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과 더불어 시대의 문제에 맞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항상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29). 벤야민은 사람들에게 으레 그러하다고 강요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흠집 내는 방식으로 저항했고, 이미 자리 잡은 길에 대해서는 길이 아닌 곳에서 길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갔다.

 

그는 규격화한 정규 학교 공부에 싫증을 내면서 독서토론회를 조직하고, 청년운동 단체를 조직하면서 몸부림을 쳤다. 기존의 글쓰기 장르나 분야에서 요구하는 일반적인 글쓰기의 문법에 대해서도 반항하였다.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파리를 여행하고 경험할 때에도 지도에 그려져 있는 형태가 아니라, 자신만의 도시를 헤매는 방식으로 자본주의 문화가 담겨 있는 여러 파편들을 찾아내려 하였다. 이를 통해 새롭게 공간을 재편함으로써 좀 더 인간에 어울리는 미래를 선취하려 하는 그의 목표(107)를 실현시키려 하였다. 또 남들이 으레 할 만한 방법으로 공부하지 않았다. 쓸모없어 보이는 자료들도 수집하여 자신만의 의도에 맞게 정리하여 새롭게 배치해갔다.

 

이런 삶을 살다보니, 그는 교수가 될 수 없었고(애초부터 원하지 않았을 수 있다), 끝내 망명에 실패하여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일반적인 시선에서 그는 괴짜였고, 삐딱한 인물, 주변과 조화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벤야민의 삶, 그의 공부법은 실패한 것일까? 이를 두고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표현한다면 저자의 의도 또는 벤야민의 의도하고는 멀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벤야민은 끊임없는 야인이었다. 그가 글쓰기에 대해서 남긴 말을 인용해본다.

 

지식인의 프롤레타리아트화는 한 사람의 프롤레타리아트조차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부르주아계급은 지식인에게 교양의 형태로 하나의 생산수단을 부여했기 때문이고, 또 이 교양의 특권에 의해서 지식인으로 하여금 부르주아계급과 연대 의식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 생산자로서의 작가(이 책 244~245)

 

이것의 의미를 저자는 지식인, 작가는 곧 자기 출신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작품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되는, 프롤레타리아의 편에 서고자 하는 글을 쓰는 것이라고 평가하였다(245).

 

책에 대한 두 가지 아쉬움 또는 의문이 있다. 첫째, 벤야민을 일반 독자들은 잘 모를 수 있다. 벤야민이 세상을 의심하고 불화했던 양상을 그의 저작에서 나오는 내용이라든가, 그의 정치적 행동, 인간 관계 등을 통해 좀 더 부연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공부법만 갖고 이해하는 데는 다소 추상적이고 생소한 느낌도 든다. 둘째, 벤야민이 추구했던 삶을 벤야민은 스스로 어느 정도 이뤄낼 수 있었는지 이에 대한 저자 나름의 냉정한 평가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이러한 생각 역시 기존의 방식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반증할까? 그래서 저자는 벤야민의 공부법을 그저 보여주는 방식, 따라가는 것에 그치고 말았던 것일까?

 

끝으로 되물어보자. “손쉬운 화해에 대한 의심과 불화”(259)하려면 권력으로부터 인정받는 것, 세속적인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 그것을 나는, 우리는 할 수 있는가? 끊임없는 수양과 성찰이 필요하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대화하려는 지식인이라면, 또 자기 시대의 문제와 고투하며 그것을 헤쳐갈 수 있는 역량에 대해 고민하는 지식인이라면, 그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과 더불어 시대의 문제에 맞서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을 언제나 갖고 있었다. 그가 직면한 시대의 문제는 자본주의와 파시즘이었다 -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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