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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 - 불안, 걱정, 회피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기 위한 뇌 회복 훈련
샐리 M. 윈스턴.마틴 N. 세이프 지음, 박이봄 옮김 / 심심 / 2023년 6월
평점 :

<<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 샐리 M. 윈스턴, 마틴 N. 세이프
우물쭈물 살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의도적 오역이지만) 버나드 쇼가 묘비명으로 남긴 말이다.
가끔 삶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팔다리는 멀쩡하지만 걱정과 불안으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한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은 내 속의 비겁함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불안이 심해졌다. 갓난아기 때는 매 순간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혼자서 등교하겠다는 아이를 엄마의 고집으로 3학년 때까지 데려다주었다. 혼자 등교시켜 놓고 오만가지 걱정을 하느라 조마조마하느니, 교문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내 눈으로 지켜봐야 마음이 편해졌다.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마치 보초를 서는 초식동물처럼 항상 살피고 경계한다. 육아하는 내내 '건강 염려증'과 '안전 과민증'은 전문상담을 받아야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원래 덤벙거리는 성격이었는데, 육아에는 한치의 실수를 용납할 수 없다보니 매사에 꼼꼼하게 더블체크를 했다.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해야 할 시간을 고민, 불안, 걱정이 차지해 버렸다. 신경쇠약에 걸릴 것만 같았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게 된다는 것이었다. 우주보다 귀한 아이들에게 왜 그렇게 화를 내게 될까 내 속을 파고들었더니, 그 속에는 불안과 걱정에서 비롯된 창의적 상상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도 망설이다 하루가 다 갔다>> 이 제목을 보자마자 나를 위한 맞춤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서의 제목을 찾아봤더니 Overcoming Anticipatory Anxiety 였는데 번역을 기막히게 잘해 놓으셨다. 한국어로 출판되면서 표지 디자인도 제목도 원서보다 더 감성적으로 변한 것 같다. 예상과 다르게 에세이보다는 심리학책, 혹은 논문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수천 명을 치료한 불안장애 전문가로, 심리학 이론뿐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습득한 뇌 훈련법을 담고 있다. 기술이나 요령보다는 사고방식을 전환하도록 쓴, 좀 더 근본적인 지침을 담은 뇌 회복 훈련서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불안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과정들을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불안에서 회복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앞부분을 넘기고 곧장 뒤에 있는 해결책으로 달려가고 싶은 유혹을 어떻게 알았는지, 저자는 서문부터 결론까지 순서대로 읽기를 강력히 권한다. 해결책이란 근본적인 과정과 메커니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예기불안 anticipatory anxiety : 상처가 나기도 전에 피를 흘리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과에 다닌다고 하면 사회적인 시선이 곱지 않았고, 우울증 또한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정신건강의학과로 이름이 바뀌면서 조금씩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전체 인구의 약 10퍼센트가 우울증을 경험하고 15퍼센트의 사람들이 예기불안의 영향을 받는다고 추정된다. 김미경 학장님은 이런 것들을 창의적 좌절 금지라고 명했었다. 불안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과민하고도 창의적인 상상력은 파국적인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가스레인지를 끄지 않고 외출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집이 불타는 것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충격을 받는다. 예기불안은 대처 방법이 아니라 역효과를 내고 불안을 지속시킨다.
과거의 기억이 만든 예기불안도 있다. 예전에 친정엄마가 크게 아프신 적이 있는데, 조금이라도 비슷한 징조가 보이면 조건반사처럼 강렬하게 불안을 느끼고 움츠러들게 된다.
"이전에 어떤 상황에서 큰 고통을 경험했다면, 그 상황은 불안한 감정과 자동적으로 연합되고 연결될 수 있다. _p.51"
만성적인 망설임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큰맘 먹고 비싼 착즙기를 샀으나, 몇 번 써보고 나와는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물건을 잘못 구매하는 일들이 누적되다 보니 새로운 물건을 살 때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으니 돈도 절약되고 환경도 보호하고 좋은 점이 있지만, 꼭 필요한 물건도 고민만 하고 결정을 회피해서 아예 못사는 일이 많아졌다. 이는 최고의 선택 시도하기(지나친 분석으로 마비되기)가 일상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아이들의 코로나 백신 접종을 두고 엄청난 양의 조사를 하고 의사와 상담도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민 중이다. 만성적인 망설임은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결정을 회피하는 습관이다. 앞서 말했던 예기불안이 그 원인이다. 일을 미루는 사람들을 흔히 게으르거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있는데 사실은 완벽주의자들, 강박장애를 지닌 사람들일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너무 많은 생각과 상상이 중요한 원인이다. 그리고 이는 행동을 마비시킨다. _p.69"
"존재하는 모든 위험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모든 위험을 피하려는 시도는 중요한 마감일을 놓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_p.79"
"위험부담이 전혀 없는 결정을 추구하지만 사실 그런 결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_p.79"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고 이웃에게 봉사도 하고 싶다. 지금 실행하고 있지 못한 것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비된 시점은 절대 오지 않았다. _p.94"
꼭 알아야 할 유용한 사실은 망설임으로 인해 마비되었을 때 부정적인 대가가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아서 생기는 위험부담과 대가도 고려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는 것,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갇혀 나아가지 못하는 것, 뒤처지는 것, 자기 비난과 부끄러움을 낳는 것 등이다. 타인을 실망시키기도 하는데, 남들에게 이기적이고, 배려 없고, 믿을 수 없거나 미성숙하다고 비춰질 수 있다.

불안에 사로잡힌 사고 : 늘 최악을 상상한다
심리학자들은 마무리해서 목록에서 지워진 과제보다 마무리하지 못했거나 중단되었던 과제를 사람들이 훨씬 더 잘 기억하는 현상, 자이가르닉 효과를 발견했다. 마무리하지 못한 과제는 불안, 망설임의 감정과 함께 기억 속에 남는다.
모든 생각이 다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며, 반복되는 생각이라고 해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생각이든 애써 짓누르려고 하면 더 반복되기 쉬운데, 이는 어떤 생각이든 에너지를 쏟으면 신경망의 연결을 키우고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없애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강력하게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계속 떠오르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용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미워하면 할수록 내 안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쌓이고 나의 귀한 시간을 내어주는 꼴이 된다.
"예기불안은 가만히 내버려두었을 때 오히려 진정된다. 만약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거나 해결하고자 애를 쓰면, 즉 계속 반추하거나 회피하면 예기 불안은 더욱 심해진다. _p.172"
나는 원래 집순이고, 원래 여행을 좋아하지 않고, 그냥 반복되는 일상대로 사는 것이 좋다. '내가 그냥 원래 이런 사람'을 자처하며 자신의 한계를 불필요하게 제한하기도 하는데, 예기불안과 만성적인 망설임은 불변하는 성격 특성이 아니라 반응 패턴에 불과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완벽주의 : 모 아니면 도라는 사고방식
우리 집에서는 모 아니면 도라는 사고방식을 모도정신이라고 부르는데, 책에 등장해서 놀랐다.
"완벽주의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유연성 없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을 완벽하거나 형편없다고 평가한다. _p.180"
회색지대를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인 완벽주의는 인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결정에 대한 극심한 압박감으로 이어진다. 실수를 완전히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활동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목표를 달성했는지, 과정이 얼마나 완벽했는지가 아니라, 그 활동이 가져오는 성장과 즐거움에 있다. _p.183"
동네에 단골 치과가 있다. 다른 병원과 달리 그곳의 원장님은 진료중에 신입 간호사분이 실수를 해도 화내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차분하게 반복해서 설명해준다. 새로운 경험 앞으로 우리 모두는 초심자다. 지금은 능숙하게 치료를 하는 원장님도 초심자에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들을 느끼지만 그런 감정들을 지닌 채 나아갔을 것이다.
우리는 사실상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 버스를 타면서 운전기사님을 믿지 못하면, 타는 내내 혹시 모를 사고의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치과선생님을 믿지 못하면, 무시무시한 기구가 가득한 치과 의자에 앉아 입을 벌릴 수 없다.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불확실성을 피할 방법은 없다. 무언가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불편한 감정을 인정하고,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최선을 다해 짐작하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확실히 알고자 하는 불가능한 욕구를 버린다.
"사실에 대한 모든 정보를 검토한 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올바른 선택이 무엇인지 최선을 다해 짐작하기뿐이다. _p.206"

집안에 아픈 사람이 없는 가족은 없는 것 같다. 가족이 아파서 병간호를 하면 여러 가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선택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병이 좋아지면 다행이지만, 결과가 안 좋았을 때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사, 병원, 치료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불안이란 미래에 사는 일이다. '만약'이 아닌 '지금' 자신의 상태로 초점을 옮긴다. 최선을 다하지만 완벽하게 알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루하루 주어진 기프트의 시간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사용하고 싶다.
가능하면 아이들을 따라다니려고 한다. 아이들이 어디에 있든지 이동시마다 문자를 보내게 하고 안전한지 수시로 체크한다. 저자는 그런 걱정들이 사랑이 아니라 걱정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라고 말한다. 오해는 계획과 걱정의 차이를 혼동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걱정은 생산적이지 못하고, 문제해결을 돕지 않는다. 걱정은 보호하지 못한다. 많이 동감했던 것은 인생에서 우리에게 닥치는 정말로 나쁜 일들은 거의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치유를 향한 내려놓음
치유를 향한 사고방식은 생각의 내용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메타인지적 관점과 '예상'하고, '수용'하고, '허용'한다로 요약될 수 있다. 불안한 생각에 관여하지 말고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저 관찰하라. 곱씹고, 반박하고, 묵상하고, 이유를 파고드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려놓는 태도를 갖는 것이 회복하는 길이다. 포기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불안과의 싸움을 그만둔다. 회피하지 않는다. 불안을 대하는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치유를 향한 내려놓음은 통제하려는 노력을 내려놓고, 그저 믿고 시도하고, 잘 된다는 보장이 없더라도 결정이나 행동에 전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려놓음은 DANCE 의 다섯 가지 원리로 기억할 수 있다.
-Discern 파악하기, 자신과 분리하여 거리를 두고 파악한다
-Accept 수용하기, 의심과 불편한 감정을 수용한다
-No 거부하기, 걱정과의 싸움, 회피, 너무 많은 생각을 거부한다
-Commit 전념하기, 행동이나 선택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Embrace 끌어안기, 현재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내버려 둔다, Let it be~
DANCE는 예기불안과 만성적인 망설임에 좋은 효과를 보인다. DANCE의 원리에 따라 여유롭게 춤을 추는 연습을 하면 뇌에서 긍정적인 회로가 생성된다고 한다.
마음을 울리는 감정에 호소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단편적인 스킬이 아니라 관점과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치료법을 제시한다.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중요한 것들을 반복해서 설명해준다. 40여 년의 전문가답게 실천적인 사례도 풍성해서 좋았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낄 때 다시 찾아서 읽으려고 한다.
"밤에 차를 운전하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추어주는 만큼밖에 볼 수 없지요. 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 전체 여행을 다 끝마치는 겁니다. _p.328"
나의 불안과 걱정은 가족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 것 같다. 모든 가능성을 다 대비하려는 불가능하고도 소모적인 계획을 내려놓기로 결심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