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일 밥상머리 대화법 - 아이의 50년을 결정하는 하루 5분 식탁 대화의 비밀
김종원 지음 / 카시오페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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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말에 관한 책은 많지만 <<66일 밥상머리 대화법>> 처럼 근본적인 이해를 돕는 책은 흔치 않다. 수학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것은 개념을 때려잡지 못하고 문제 유형별로 스킬만 익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책들이 수학의 '유형서' 같았다면, 이 책은 원리를 꿰뚫는 '개념서' 같은 느낌이었다. 본질을 파고들어 응용력,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준다.

상황별로 해줄 수 있는 예쁜 말을 암기해 보기도 했었는데, 변수가 생기면 적절한 말을 찾아내기 힘들었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이런 상황은 책에서 못 본 것 같은데...' 한계에 부딪히면 다시 잔소리를 시작하거나, 침묵이 금이라며 입을 꾹 다물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읽고 난 후 제시된 예시와 다른 상황에서도 응용이 가능했다.

김종원 작가님은 치열하게 사색하며 글을 쓴다고 한다. 그의 글은 간결하고 정확하다. 어려운 단어가 없어서 사전을 찾을 일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멈추게 된다. 멈추고 생각하고 나를 뒤돌아보게 했다.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갔나?’ 싶을 정도로 삶에 바로 적용되는 문장들이 많다. 머리가 아니라 삶으로 쓴 글은 마음을 움직인다.

"어쩌면 이 책을 쓰기 위해 제 인생 전체가 필요했을 수도 있습니다." (p.7)

이 책은 그의 인생 전체로 썼다고 한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치열한 사색의 결과물임이 느껴진다. 허투루 쓰인 문장이 없어 필사하기에 좋다.

66가지의 대화법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끊어서 읽기는 힘들었다. 읽기 시작하면 빨려 들어가서 끝까지 읽게 된다. 아무래도 66일은 낭독과 필사를 통해 책 속 언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습관의 시간인 것 같다.



명절이 되면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많은 음식을 장만해 놓고 밥상머리에서 꼭 싸우는 집이 있다. 싸우려고 모이는 건 아닐 텐데 모임이 가족 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는 대화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유대인의 위상을 만들어 낸 하브루타 대화법이 떠올랐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형 하브루타를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책이 아닐까 싶었다.

학교에서 부모와의 대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한 시간은 훌쩍 넘으니 난 참 괜찮은 부모구나 싶었는데, 돌아보면 식탁에서의 대화가 빠져있었다. 각자 책을 읽거나, 뉴스를 보며 밥을 먹기도 했다.

식탁을 무대로 하는 대화는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아이가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주제와 지식으로 아이생각을 자극하고,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식탁은 부모와 아이의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최고의 현실 밀착 교육 장소이다. (p.6)



혼자서는 귀찮아서 있는 반찬도 안 꺼내먹게 되지만 아이들 밥상만큼은 정성을 쏟는다. 밥상을 잘 차리려다가 내가 가진 능력보다 오버하다 보면 지친다.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은 깃털만큼의 스트레스만 더해져도 버티지 못하고 못된 말을 내뱉는다.

중요한 것은 밥을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안 주는 것이다. 밥상은 음식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밥상은 '음식'과 '말'로 차려진다. 오늘은 또 무슨 반찬을 해야 하나 여전히 고민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식이 '부모의 말'임을 잊지 않고, 말을 잘 만들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몸에 좋은 음식이 아이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처럼, 마음에 좋은 부모의 말은 아이에게로 전해져서 아이의 미래를 가장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p.34)

음식을 만들다 보면 몸이 지쳐서 밥상을 느긋하게 즐기기보다는 빨리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식탁 대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즐거움'이라고 한다. 바쁘게 해치우고 때우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즐기는 시간을 만든다.

“식탁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즐긴다’라는 표현에 있어요.” (p.19)

유대인들은 어떤 잘못을 해도 밥상에서 아이를 혼내는 일이 없다고 한다. 밥상에서의 대화를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식탁대화에서 온갖 멋진 지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나누고 일상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소한 일상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나누는 말이 쌓여 나와 가족의 삶의 철학을 구성하는 농밀한 재료가 된다. (p.21)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고 다양한 말을 통해서 아이에게 필요한 수많은 지적 감각을 가장 높은 곳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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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처럼 명령어만 남발한다면 식사 분위기만 망치게 될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잔소리가 듣기 싫어 일부로 부모를 피하기도 한다. 심지어 부모의 말에 상처받고 연을 끊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자식이 미워서 하는 소리는 아니었을 텐데, 우리네 부모님들이 말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 말이 그런 식으로 밀이 까칠하게 나가는 경우가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부모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기억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결국 세상을 떠나지만, 부모가 남긴 말은 여전히 아이를 키웁니다." (p.115)

나에게도 아이에게 루틴처럼 반복하는 잔소리 세트가 있다. 잔소리 참 많이도 했는데 아무리 해도 통하지 않는다. 소리치고 화를 내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 ... 실제로 삶의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 입바른 소리 해 봤자 괜히 사이만 나빠지고 효과는 없이 부작용만 늘어간다. 잔소리하다 보면 마음에도 없는 못된 말이 나오고 아이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천사처럼 자는 아이를 보며 담지 못할 후회를 반복하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가르치는 것과 윽박지르는 것은 다르고, 잘못을 알려주는 것과 분노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p. 43)

아이가 자기 행동을 바꾸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부모가 자기 말을 바꾸기도 똑같이 어려운 일이다. (p.205) 듣고 자란 말이 아니어서 그런지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처럼 어렵다. 그래서인지 "낭독하고 필사하며"는 작가가 예외적으로 반복해서 하는 말이다. 새 신발처럼 불편한 언어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작가는 사랑하면 습관대로 익숙한대로 말하지 말고 필사하고 낭독하고 외워서 말해주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의 인생이 바뀔거라고.

이 책은 언어의 가치와 본질을 파고든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본질을 해결해야 수많은 문제가 풀린다. 당장 적용하게 만든다.

"잔소리와 지적이 아이들의 식사 예절을 바르게 바꾸지 못한 이유는, 그 안에 있는 본질을 바꾸지 않고 포장지만 바꾸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p.39)

"내 것이 더 작아요!" 음식을 똑같이 나눠줘도 자기 것이 더 작다고 불평하고 투정 부리는 아이에게 논리를 대고 수학을 하고 증명을 하며 승부를 겨루듯 말했다. 소리치지 않고 아이를 바꾸는 방법은 먼저 아이의 마음을 수용하는 마음으로 다정하게 말하는 것이다.

유튜브나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를 억압해봤자 중독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 본질이 무엇인지 보면 답은 저절로 풀린다. 가장 먼저 마음을 이해하려고 다가가야 한다. 아이의 마음이 반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면 아이의 마음을 열게 된다. 스스로 시간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만든다. 본질에 닿아야 비로소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본질을 건드려주는 기본의 말을 자주 활용하면 지적하는 말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지혜로운 표현을 통해 아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된 태도를 고치게 할 수도 있다.



본질에 다가서 반복해서 간단하게 말하는 것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내 인격보다 큰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사랑은 지치지 않고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인도해 준다.

아이에게 들려주는 말은 내 안에 '상처받은 어린아이'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된다. 사색의 가치와 언어의 힘을 알게 되면 아이의 인생뿐 아니라 나의 삶도 바꿀 수 있다.

“아이에게 예쁜 말을 들려 주는 일은, 곧 여러분 자신에게 들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p.129)

"김치도 좀 먹어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부모가 나서서 "넌 김치를 안 먹는 아이야."라고 확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가 스스로 바뀌길 바란다면 확정의 언어를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한다. '확정의 언어'를 '가능성의 언어'로 바꿔서 반복해서 들려준다.

온 가족이 공부를 잘하는 집안을 보면서 역시 공부머리는 유전인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은 '좋은 태도와 언어'를 가진 부모가 말을 통해 자식의 태도를 변화시켰을 확률이 높았겠다는 것이다. “수학은 원래 어려운 과목이야” 가 아니라 "수학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과목이지"라고 말해주면, 수학에 대한 아이의 태도를 바꿔줄 수 있다.

"부모가 던진 질문의 수준과 방향이 아이 삶의 깊이와 가능성을 결정합니다." (p.90)

“오랫동안 하나를 꾸준히 생각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참 근사한 일이야.” (p. 281)


내가 하지 않아도 아이는 세상에 나가서 비교당하고 평가받으며 살게 된다. 나는 부모라서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 검열, 지적, 비난, 억압, 명령의 수준 낮은 말버릇으로 아이의 생각을 가로막지 말고 '생각을 자극하는 말'로 아이를 격려해주고 싶다.

내 말에 토 달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순종적인 아이가 되길 바란 적이 있다. 작가는 일상에서 '왜'를 삭제하면 아이가 '왜'를 묻지 않게 되면서 생각을 멈추게 된다고 말한다. 큰일 날뻔했다.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문화에서 어른의 말꼬리를 잡는 것은 버릇이 없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말꼬리를 잡는 것은 언어의 뒷덜미를 잡을 센스가 있어야 가능한 일로 대문호와 지성인들은 말꼬리 잡기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우리 아이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주변의 소리에 맞춰서 내 아이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전에 자신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다. 최고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키운다.

믿기 힘들었지만, 김종원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 국어와 독서를 그렇게나 싫어했다고 한다. 그를 80권의 책을 쓰는 사람으로 이끈 것은 부모님께 그리고 할머니에게 자주 들으며 자란 '말'이라고 한다. 팬으로서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는데 아쉽다.

책장에서 부모의 말에 대한 책 중 단 한 권만 남겨야 한다면 나에게는 단연코 이 책이 넘버원이다.

"아이는 지금도 무럭무럭 크고 있고,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요." (p. 13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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