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브뤼셀 / 대논쟁
막스 프랑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파울 에렌페스트, 막스 보른, 닐스 보어, 에르빈 슈뢰딩거, 루이 드브로이, 헨드릭 크라머스, 볼프강 파울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양자물리학의 거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만 봐도 "기대감은 하늘을 찌른다."
"보어에게 아인슈타인의 평가는 매우 중요했다.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물리학의 교황이기 때문이다. _p.305"
OB vs. YB
회의가 진행되면서 '옛날 양자물리학자 vs. 새로운 양자물리학' 사이의 갈등 전선이 명확해졌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플랑크, 로렌츠 같은 나이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미 확립된 고전 물리학 질서를 방어한다.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디랙으로 대표되는 젊은 도구주의자들은 철학이나 의미론 또는 쓸데없이 꼬치꼬치 따지는 데는 인내심이 없다.
한 편지에서 에렌페스트는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대화가 마치 체스 경기는 보는 것 같았다 표현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상대성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태도로 양자이론에 반대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양자 문제를 상대성이론보다 100배나 많이 숙고했다' 털어놓은 바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 누구보다 양자역학을 더 잘 이해했지만 그것이 볼완전하다고 여겼기에 단지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반박과 재반박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토론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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