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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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챗GPT를 써보고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가 영화 속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겠다. 당분간 인공지능 개발을 멈추자는 의견들이 모였지만 거대한 흐름을 막기는 역부족이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어지럽다.

저자는 왜 지금 1900~1945년에 주목할까? 20세기 초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인류 최대의 비극이 일어났던 그 때 역설적이게도 물리학이 찬란하게 꽃피우게 된다. (전쟁의 때 과학이 급격하게 발전한 것은 정치가들의 필요에 의해 과학에 막대한 인력과 돈이 들어갔기 때문인걸까?)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이다.

'21세기 초'를 살고 있는 우리가 '20세기 초'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불행했던 과거가 관성처럼 반복될 것이다. 과학이 주도하고 있는 대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어 불안하다.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비극적인 미래를 막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이 책에 묻어있는 것 같다. 과학사를 통해 지금을 사는 지혜를 구해본다.

책은 연도별 시간순으로 전개된다. 100년 전 물리학자들의 사생활을 들추며 펼쳐진다. 상상력으로 지어낸 픽션도 아니고, 어떻게 과학 논픽션이 이렇게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담아낼 수 있었을까 싶었는데 과학자들이 썼던 편지, 메모, 연구 논문, 일기, 회고록에서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소설처럼 재밌는 요소들이 이곳저곳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내면의 묘사가 꽤나 구체적이다. 현재형으로 서술된 순간들은 긴장감이 넘친다.

가정파괴범을 싫어하는지라 존경했던 과학자들의 불륜 이야기가 나오자 편집된 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그들에게 적잖이 실망했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이라고 해서 사생활까지 완벽하리란 보장은 없나보다. 학창시절 물포자(물리를 포기하려는 자)였던 나에게 양자역학 이야기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드라마처럼 물고 늘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1903년 파리 / 균열의 시작

1903년. 지금까지 알던 세상이 뒤집어지기 시작한다. 여성 연구자, 마리 퀴리의 손끝에서 굳건했던 고전역학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고전역학 : 뉴턴의 운동법칙을 기본으로 하는 역학)

"방사선은 저절로 생긴다. 아무런 원인 없이. 이 주장으로 마리 퀴리는 물리학의 토대인 인과 법칙을 흔들었다 ... 물리학의 철칙인 에너지보존법칙도 과감히 버렸다. _p.37"

반짝이는 업적처럼 화려할 것 같았던 마리 퀴리의 연구과정은 전혀 우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뼈가 부서지는 작업이었다." 살인적인 중노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수 라듐을 상상하고 손에 쥐며 행복했다고 하니 과학자는 그녀의 천직이었나 보다. 엄마로서의 삶은 어떠했을까?

"다만, 행복 가운데에서 불행한 한 사람이 있었다. 퀴리 부부가 헛간에 실험실을 차리기 전에 세상에 온 그들의 딸, 이렌이다. _p.39"

마리 퀴리의 딸은 연구로 바쁜 엄마 아빠의 얼굴을 거의 못보며 자랐고 분리불안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자녀를 할아버지에게 맡겨놓고 일하면서 지금의 워킹맘들과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1915년 베를린 / 완벽한 이론, 미숙한 관계

"그가 지금 몰두하는 작업은 다름 아닌 뉴턴의 역학을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벌써 수년째 이 쿠테타를 준비해왔다. _p.85"

아인슈타인은 20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완벽한 이론과는 별개로 그의 가정생활은 미숙했다. 내연녀에게 쓴 편지에서 어린 아들이 아파서 요양을 가는데 혼자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모습이나 아내에게 쓴 쪽지에서 드러난 남성 우월주의 어조는 실망스럽다.

"좋은 소식일 수 있는데,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가게 될 테고, 그러면 나는 한동안 베를린에 혼자 있게 될 테니 말이오. _p.83"

"세끼 식사를 방에서 할 수 있도록 제대로 상을 차려 대령하시오. _p.83"




1919년 카리브해 / 개기일식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노벨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노벨상 상금을 모두 아내에게 주기로 약속하면서 이혼 합의에 도달한다. 과학자로서의 자부심도 놀랍지만, 인류의 평화를 위해 쓰여야 할 노벨상 상금이 이혼 합의금으로 쓰였다니 씁쓸하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스타가 된다. 각종 언론에서 그와 상대성이론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상대성이론이 새로운 과학 아이디어의 신대륙을 열었다 _ 왕립학회 회장, 톰슨"

"과학의 혁명 / 우주의 새 이론 / 뉴턴의 아이디어가 전복되다 _ 런던 타임스"

그러나 나치주의와 독일물리학을 앞세운 반대 운동이 싹텄는데, 현대 이론물리학을 '유대인의 과학'이라며 거부하며 평화주의자 아인슈타인에게 적개심을 드러낸다. 반유대주의자들의 살해위협에도 아인슈타인은 문화적 시오니즘(유대인들의 민족 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을 옹호하고 여성의 낙태할 권리, 동성애자가 처벌받지 않을 권리, 개방적 성교육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여자들을 함부로 대했던 것을 보면 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1922년 괴팅겐 / 아버지를 찾은 아들

전자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다. 입자면 입자고 파동이면 파동이지, 어떻게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 거시적 세계에 살고 있는 내가 미시적 세계를 이해하기는 힘든 일이다. 영화 '앤트맨'은 재밌게 봤지만 영화 속 양자역학 스토리는 공감하지 못하고 흘려버렸다. TV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물리학자 김상욱교수는 "양자역학은 이해보다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한 학문"이라고 말했다.

"전자를 입자 또는 파동으로 상상할 수 있다. 둘 다 맞지만 완전히 맞진 않다. 전자는 어떤 면에서 입자처럼, 어떤 면에서 파동처럼 행동한다. 우리의 직관은 전자의 이런 이중성을 거부할지 모르나, 현실세계가 그렇다. _p.131"

보어는 다른 물리학자들 달리 계산하지 않고 '공감과 추측'으로 지식으로 얻었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보어를 '철학적 의미에서 물리학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보어는 이러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원자 구조, 양자역학에 기여할 수 있었다.

"보어의 강점은 직관이다. 그는 직관으로 세계의 구성 성분을 감지한다 ... 그는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시인처럼 단어와 씨름한다. _p.132"

"보어의 논문에는 과학 못지않게 예술도 많이 들어 있었다. _p.136"




1923년 코펜하겐 / 보어와 아인슈타인

용호상박. 여기 전차를 타고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친 채 대화 삼매경에 빠진 보어 아인슈타인이 있다. 나는 꾸벅꾸벅 졸다가 내려야 할 지하철 역을 놓친 적이 많은데, 그들은 물리학에 관한 대화에 깊이 빠져들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아인슈타인 교수님, 잘 생각해보십시오. 정확히 보셔야 합니다 ..." 보어가 덴마크 억양의 독일어로 맞선다.

"아니, 아니죠 ..." 아인슈타인이 보어의 양자 도약을 반박핮다.

"하지만, 하지만..." 보어 역시 물러서지 않는다.

두 사람은 다른 승객의 놀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친 것도 모른 채 한참을 더 간다.

"여기가 어디죠?" 아인슈타인이 묻는다. 보어도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_p.150"


1927년 브뤼셀 / 대논쟁

막스 프랑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파울 에렌페스트, 막스 보른, 닐스 보어, 에르빈 슈뢰딩거, 루이 드브로이, 헨드릭 크라머스, 볼프강 파울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양자물리학의 거장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사진만 봐도 "기대감은 하늘을 찌른다."

"보어에게 아인슈타인의 평가는 매우 중요했다. 아인슈타인은 여전히 물리학의 교황이기 때문이다. _p.305"

OB vs. YB

회의가 진행되면서 '옛날 양자물리학자 vs. 새로운 양자물리학' 사이의 갈등 전선이 명확해졌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플랑크, 로렌츠 같은 나이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미 확립된 고전 물리학 질서를 방어한다.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디랙으로 대표되는 젊은 도구주의자들은 철학이나 의미론 또는 쓸데없이 꼬치꼬치 따지는 데는 인내심이 없다.

한 편지에서 에렌페스트는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대화가 마치 체스 경기는 보는 것 같았다 표현한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상대성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태도로 양자이론에 반대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양자 문제를 상대성이론보다 100배나 많이 숙고했다' 털어놓은 바 있다. 아인슈타인은 그 누구보다 양자역학을 더 잘 이해했지만 그것이 볼완전하다고 여겼기에 단지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반박과 재반박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토론이 깊어진다.




1930년 브뤼셀 / 2라운드, 완패

1930년 브뤼셀 솔베이회의.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결투 2라운드를 위한 장이 열렸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 등장한 아인슈타인이 베른 특허청에서 일했을 때 발견한 비장의 무기 E=mc² 공식을 이용해 양자역학을 공격한다.

"아인슈타인은 늠름하게 허리를 곧추세우고, 여유롭게 담배를 입에 물고, 옅은 미소로 승리를 만끽하며 조용히 메트로폴 호넬로 돌아갔다. _p.332"

그의 뒤에서 화가 난 보어는 흠씬 두들겨 맞는 개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날 밤 보어는 잠들지 못했고, 고뇌로 밤을 샌 보어가 다음 날 아침 당당하게 흠씬 두들겨 맞은 개와는 거리가 아주 먼 모습으로 호텔 식당에 나타났다. 보어는 아인슈타인이 간과한 것을 내놓으며 방어한다. 이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말문이 막힌 쪽은 아인슈타인이다.

1931년.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한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를 노벨상 후보자로 추천했다고 하니 그는 완고하되 쩨쩨한 사람은 아니었다.


1933년 베를린 /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

독일에 사는 50만 유대인에게 암흑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강연 여행 중인 아인슈타인이 다시는 독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히틀러는 유대인에게 관대하다는 인상을 주느니 차라리 독일 과학을 버리는 사람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책들도 화염에 던져졌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세계는 불확실해졌다.




1943년 프린스턴 / 약해진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도 참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자역학에 설득된 것은 아니었다.

"양자이론의 위대한 첫 성공이 나로 하여금 신의 주사위 놀이를 근본적으로 믿게 하지는 못합니다. 비록 젊은 동료들이 이것을 노인의 고집으로 해석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더라도 말입니다. _p.466"

보어는 이따금 고등연구소 옆 아인슈타인 집에 들렀고, 두 노신사는 양자역학에 대해 다퉜지만 그것은 이제 결투가 아니라 소중한 루틴에 가까운 위로였다.


1945년 / 원자폭탄

마이트너와 프리쉬는 원자핵의 새로운 모형을 설계했다. 핵에서 나오는 폭발 에너지를 추측해보았는데 어마어마한 수치가 도출되었다.

"원자핵에서 나오는 이 에너지가 할 수 있는 것은 파괴이다. 그리고 이 파괴는 모든 물리학자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빨리 일어날 것이다. 그것이 빛나는 물리학의 시대를 어둡게 할 것이다. _p.439"

자칭 신념 강한 평화주의자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에게 원자폭탄 개발을 촉구했고, 몇 년 뒤에 그는 이것을 "인생 최대 실수"라고 부르며 후회했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공격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 상황은 더 나빠졌고 루스벨트는 원자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수많은 세계 최고 물리학자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물리학자들은 수십만 명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는 느꼈다.

"내가 25년 동안 함께 겪었던 원자물리학의 진보가 수십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직시해야만 했다. _p.477"

"이것이 바로, 마리 퀴리의 손끝 균열에서 히로시마의 원자 폭탄까지 이어진 역사의 어두운 면이다. _p.478"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프린스턴, 캠브리지, 옥스포드 등 지금도 명문대로 통하는 유수의 대학들. 천재 과학자들의 지식 협력은 현대물리학의 황금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그 황금기의 끝에 원자 폭탄이 자리하고 만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과학이 발전하면 뭐하나? 그들의 유능함은 전쟁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는데 쓰였어야 했다. 최악의 어리석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같은 바람으로 <<불확실성의 시대>> 가 쓰여졌다고 생각한다.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볼 수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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