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의식, 실재, 지능, 믿음, 시간, AI, 불멸 그리고 인간에 대한 대화
마르셀루 글레이제르 지음, 김명주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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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석학들은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질문들에 어떻게 답할까? (금방 밑천이 드러날 것이므로) 지적인 대화에 낄 자신은 없지만, 위대한 지성의 대화를 듣고 싶어 읽게 된 책이다.


차례를 보니 신경과학자와 철학자의 대화, 불교학자와 이론물리학자의 대화, 천문학자와 철학자의 대화, 과학과 종교의 대화 ... 모두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대화할 뿐 아니라 궁금해할 만한 질문도 받는다. 주제는 의식의 본질, 과학과 종교, 의식과 유물론, 시간의 신비 등 폭넓고 만만치 않다. 한 권의 책이지만 어느 한쪽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지성들의 견해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초반에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뒤로 갈수록 흡입력이 있었다. 이런 생각의 세계도 있구나 감탄하기도 하고, 대화의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혹시 나처럼 1장까지만 읽고 쉬어가시려거든 2장부터 슬슬 재밌어지니 조금만 더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올까? 20년도 더 된 영화지만 철학적인 주제가 담긴 <매트릭스>는 충격이었다. 영화가 현실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지만 ChatGPT를 직접 써보고 인공지능의 놀라움을 경험해보니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매일 초록창을 통해 뉴스를 검색하고 쇼핑을 한다. 이제 초록창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빌게이츠는 앞으로 인공지능 없이는 일상생활이 매우 불편해질 것이라 예언했다.


알파고의 등장도 놀라웠지만 ChatGPT의 등장은 무섭기까지 하다. 일론 머스크, 유발 하라리 등은 AI가 인류에 심각한 위협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AI 개발을 6개월간 멈추자'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각자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AI 연구소들이 한마음으로 멈추게 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나같은 개인은 일단 멈추고 천천히 생각할 수 있다. 책의 저자 '마르셀루 글레이제르'가 과학자와 인문학자를 불러 모아 우리 시대의 가장 도전적인 질문들에 토론하고 논쟁하며 모은 대담의 결과물이, 그 위협을 관리할 수 있는 '분별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기술 발전은 우리 과학의 발전의 분별력에 의문을 던지며 다양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_ p.12"


라떼는 문과 이과의 구분이 확실했지만, 요즘 학교에서는 창의 융합적인 인재 양성에 뜨거운 것 같다. 이 책도 인문학과 과학의 대립과 배제를 지양하고 학제간 '건설적 협업'을 지향한다.


"과학이나 인문학 어느 한쪽이 다루기에는 복잡한 질문들로, 점점 시급해지는 이 문제들을 해결해 인류의 실존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서로 다른 앎의 방식을 결합하는 다원적 접근법이 필요하다."




의식의 신비: 신경과학자 '차머스' & 철학자 '다마지오' 대화


과학과 인문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은 가장 먼저 철학의 한복판을 차지해왔던 '의식'의 문제로 시작된다. 그들은 의식에 대해 지나치게 환원주의 (reductionism)적인 관점을 반대한다. 의식을 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동의하는 것 같다.


"의식을 전적으로 물리적 과정으로 설명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_ p.33"

"우리의 마음은 뉴런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_ p.34"


실재의 본질 nature of reality : 이론 물리학자 '션 캐럴' & 불교학자 'B. 앨런 월리스' 대화


"물질은 오직, 한 원자 입자를 진동하게 하고 그 원자의 가장 미세한 위성들을 하나로 묶는 힘에 의해 생겨나고 존재한다. 우리는 이 힘 이면에 의식적이고 지적인 마음이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_ p.72"


월리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인 맹인과 코끼리 은유를 쓴다. 맹인들은 각자 코끼리의 머리, 발, 꼬리 등을 만졌고, 코끼리를 부분적으로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묘사를 내놓았다. 물리적 실재의 핵심에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20세기 백인 남성 물리학자, 우주학자, 수학자 들이 저마다 맹목적이고 눈먼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다투고, 언쟁하고 논쟁한다는 것이다.


"잘 모른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근거들이 있을 때는 의심하고 잘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_ p. 79"


월리스는 과학이 마음을 다루는 환원론적이고 유물론적인 방식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캐럴은 마음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것을 소환할 필요는 없다며, 모든 것이 뉴런으로 귀결된다고 반박한다. 다만 한 가지, 과학 이전의 전통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혜에 대해서는 열려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글레이제르는 실재의 성질이 매우 혼란스러운 주제이지만 우리가 존재에 대한 근복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즐기며 서로 다른 온갖 층위가 있고, 상보적인 앎의 방식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모든 관점을 겸손한 자세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


지능의 미래 : 천문학자 '질 타터' & 철학자 '퍼트리샤 처칠랜드' 대화


지능의 미래는 기계지능과 외계지능을 말한다.


"놀랍게도 세계 챔피언 이세돌과 겨뤘을 때 신경망은 다섯 경기 중 네 경기를 이겼습니다. 이 승리는 누가 뭐래도 극적인 성취였고, 세계는 이에 열광했죠. 너무 극적인 승리라 닉 보스트롬과 같은 사람들은 기계가 바둑을 둘 수 있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_ p.120"


(책에서 우리나라의 이세돌 선수 이야기가 등장해서 덮어놓고 자랑스럽고 반가웠다. 책의 흐름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이세돌은 신의 한 수로 알파고를 무너뜨렸다. 이세돌 선수는 바둑에서 인공지능을 이겨 본 마지막 인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처칠랜드는 기후변화, 멸종, 그래고 팬데믹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때에 기계가 세계를 장악하고 인간을 없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건 예측의 지평선을 훌쩍 벗어나 있으며 쓸데없는 추측에 시간과 신경 활동을 낭비하는 일이라 일축한다. 매우 복잡한 패턴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능의 종류이지만 대단히 제한된 종류의 지능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위협에 대한 소동을 헛소리로 치부하는 발언이 다소 과격할 수 있겠으나 그의 주장은 꽤 설득력있었고, 안개처럼 막연한 두려움을 걷어내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의견이 마음에 든다.


"뉴런은 학습기계에서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죠. 뉴런은 그 자체로 일종의 컴퓨터 장치입니다. _ p.154"


타터는 우리라는 별 부스러기 조각은 철, 칼슘 등 수십억 년 전 폭발한 거대란 별 내부에서 만들어졌다며 한 인간을 만드는데 우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를 우주에 떠 있는 하나의 실체로 바라본다. 또한 행성은 거기 사는 생명에게 영향을 줬지만, 그 행성의 생명 또한 행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의 신비 : 과학사가 '히메나 카날레스' &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 대화


아이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의 시간으로 가는 상상을 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시간의 상대적 속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간의 과학적 설명은 누구에게나 흥미롭다.


카날레스는 역사학자답게 아인슈타인과 베르그송이 벌인 논쟁을 중심으로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을 설명하는 방식과 그에 수반되는 역설을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데이비스는 빅뱅이 물질과 에너지 뿐 아니라 공간과 시간의 기원이며, 빅뱅은 시간의 시작이라 말한다.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몯는 것은 '북극의 북쪽에 무엇이 있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으며 빅뱅 이전과 같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시간은 경과하지 않으며 변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 나라고 주장한다. ​


트랜스휴머니즘 : 신경과학자 '에드 보이든' & 작가 '마크 오코널' 대화


이번 주제는 트랜스휴머니즘, 육체와 기계의 융합이다.


에드 보이든은 MIT에서 뇌 공학 연구팀을 이끌며 뇌 지도를 작성하는 일을 한다. '반응성 중합체'는 삼투압에 의해 물을 흡수해 부풀게 하는데, 이 기술을 이용해 뇌를 물리적으로 확장시켜 세포들 사이의 아주 작은 연결을 지도로 나타내는 일을 한다고 한다. '반응성 중합체'는 아기 기저귀 재료를 폼 나게 말하는 방법이라며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준다. 그의 목적은 세밀한 뇌 지도를 만들어 뇌작동을 컴퓨터에서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다. 뇌세포를 활성화하는 지정 단백질의 유전자를 추출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얻어걸린 행운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며 '참 겸손하신 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연구의 동기는 대체로 뇌졸중, 중독 등의 뇌 질환 치료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참 근사하게 보인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미래에 자신의 뇌를 스캔해 그 데이터를 기계에 업로드함으로써 불멸을 얻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_ p.260"


일론머스크는 뉴럴링크라는 뇌 연구 스타트업을 설립했는데, AI에 맞서기 위해 인간의 뇌에 컴퓨터를 이식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능 향상이 목적이며 인간을 초인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미친 소리인지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인지 모르겠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마음이 0과 1로 번역되는 미래, 마음이 몸을 벗어나 기계에 업로드 됨으로써 완전히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지는 미래를 말한다. 영화 <아바타 2>에서는 아바타 쿼리치 대령이 등장하는데, 그는 아바타 생체에 이미 죽은 쿼리치 대령의 기억과 경험을 데이터로 만들어 이식한 존재이다. 아바타 쿼리치는 인간 쿼리치와 같은 존재일까?


오코널은 우리 모두가 인간의 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고, 자신을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생각을 불편하게 여기며 그들과의 분명한 선을 긋는다.


커즈와일은 마음을 AI 슈퍼 컴퓨터에 업로드하고 AI와 융합함으로써 생물학적 존재에서 최종적으로 해방될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는데, 나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가능해진다고 해도 진짜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 생각한다. 컴퓨터가 점점 소형회되고 강력해져서 우리의 몸, 뇌, 혈류로 옮겨 갈 가능성은 있는 것 같다.


글레이제르는 스마트폰이 몸의 기계적 연장이며, 휴대전화는 탄소로 된 우리 몸을 디지털로 연장한 것이라 말하는데, 그래서 아이들에게서 스마트폰을 떼어놓으기가 힘든가보다.​


인간과 행성의 수명 : 환경주의자 '엘리자베스 콜버트' & 의사 '무케르지' 대화


불과 100년 전 사람들은 50세를 넘겨 사는 일이 흔치 않았다고 한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지난 100년은 놀라웠으며, 감염병을 정복해 수명이 길어졌다."


콜버트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를 말한다. 우리가 지구를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기후를 바꾸고 있으며, 바다를 산성화시키고, 지구 표면을 매우 빠르게 바꾸고 있다. 콜버트는 우리가 지구를 함께 쓰고 있는 다른 모든 종을 희생시킨다며 인류가 맞이하게 될 미래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보여준다.


무케르지는 인간과 동물의 게놈을 조작하는데 근복적 제약을 언급하며 우리는 크리스퍼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의견에 동의하며,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복제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초거대 AI시대. 그들이 어련히 알아서 인류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AI를 개발할 것이라 믿고 싶다. 내가 직접 그 방향을 틀 수 없겠지만, 적어도 소비자로서의 한 표는 행사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이 기술들을 사용하고 싶어 할 겁니다. _ p. 275"

"우리는 소비자로서 힘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_ p. 315"


인정사정 없는 끝장 토론이 아니라 품격있는 토론을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걸 압니다"이다. 역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옳은 일을 하기가 쉬워져야 합니다 ... 인간은 자고로 쉬운 걸 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요? _ p. 389"

"기후 변화와 인구 과잉에 맞서 싸우고 싶다면 가난한 나라 소녀들을 교육하는 일에 기여해야 한다. _ p. 390"

"사실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과학 강연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 사실들을 감정적으로 와닿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_ p. 395"

"인문학자들은 능수능란한 이야기꾼들입니다 ... 이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조하려면 둘(과학과 인문학)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만으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 않을 테니까요. _ p.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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