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마흔 수업 -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위한
김미경 지음 / 어웨이크북스 / 2023년 2월
평점 :
절판



"40대 정말 좋아요. 제가 정말 좋았거든요. 앞으로 10년 참 좋을거에요." 이금희 아나운서가 마흔에 되었을 때, 열 살 나이차가 나는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녀는 선배의 말을 이따금 떠올리며 '지금이 좋을 나이지'라고 생각하며, 졍말로 좋은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10년이 지나 그 선배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어쩌지? 지금부터가 진짠데. 50대가 진짜 좋아요. 50대 너무 좋았어."라고 했단다.






아이를 낳고 수유에 집착하던 때가 있다. '거울도 안보는 여자' 그게 바로 나였다. 어느날 밤, 우연히 베란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얼굴은 초췌했고 뱃살은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처렴 접혔다. 헝크러진 머리를 질끈 묶고 후즐근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배불뚝 아저씨 같았다.


남편은 내게 로션이라도 좀 바르고, 옷도 사입고, 꾸미는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지만, "내가 다시 시집갈 것도 아니고, 애도 이미 낳았는데, 뭘 꾸며?" 아이들 키우는 일만이 유일한 지상명령인듯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완전히 끊고 살았다.


지금 당신이 불안하고 우울한 이유


나는 무의식적에서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라고 단정지었던 것 같다. 20대를 황금기라고 알고 있었으니, 20대 황금기가 끝나고 남은 인생은 응당 아이들에게 갈아넣어야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30~40대가 되니 양가에서의 책임도 늘어 갔다. 미경쌤의 표현대로 "돈과, 일, 가족 등 워낙 많은 것들이 각자의 명분을 가지고 입체적으로 얽혀있으니 내 인생의 배치도에서 무엇 하나 함부로 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마흔의 우울과 슬픔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다 떠안고 가기에는 힘에 부치지만 줄일 것도, 뺄 것도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40대가 되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느낌이 드는 이유다. _p.7"



그런데 정작 '나'는 쏙 빼고 살고 있었나보다. 마음이 이상했다. 아이들은 말도 못하게 예쁜데, 우울감이 몰려왔다. 세상이 캄캄해지고 지하로 꺼지는 느낌.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랬다. 울고 있는 엄마가 되기는 싫었다. 고민 상담할 곳도 마땅치 않고 답답했던 그때. 내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김미경쌤을 만났다. 아이들을 재우고 이불 속에서 미경쌤의 강의를 듣고 혼자서 울며 웃었다. 인생을 나름대로 재해석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마음을 치유해나갔다.


마흔인데 이룬 게 없다고? 정상입니다

마흔이 되면 다 이루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삶을 꿈꿨다. '나이만 많이 먹었지... 여태 뭘 했을까?' 실제로 마주한 마흔의 나는 여전히 허둥지둥 불안정했다. 이뤄놓은 커리어도 없고, 새치라고 우기고 싶은 흰머리만 늘었다. 이상적인 나의 모습과 실제의 내 모습이 다르니 그 괴리감이 우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마흔에 다 풀고 정점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_p.9"


"마흔 ... 이 시기에 받는 인생 숙제가 가장 무겁기 때문이다. 40대는 집도 사야 하고 기본적인 생활비부터 아이들 용돈과 학원비까지, 내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줄을 선다. _p.35"


미경쌤은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라고 한다. '지영'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미 다 겪어봤고 실컷 울어봤기 때문이란다. 마흔까지 살아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잘 했다며 40여 년 간 함께 뛰며 고생한 나 자신을 다독여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다만 스스로에게 착각하지 말자고 말해주자.


"내 인생의 정점은 지금이 아니야. 착각하지 말자. 지금껏 열심히 잘 살아온 나를 다그치지도 말자. 내 마흔이 뭘 어쨌다는 건데? 너,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 더 잘할 거야!" 잘못된 것은 마흔을 너무나 크게 본 나의 착각이다. _p.38


인생의 황금기를 언제로 정의할 것인가

내가 어렸을 때 바라봤던 60대는 노년이었다. 노후가 잘 준비되었다면 쉬면서 가끔 여행을 할 수 있고 조용히 인생을 마무리 해야 할 시기였다. 그러나 그녀는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수동적인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며 생애 주기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고 60대를 황금기로 정의한다.



"생각할수록 60대의 하루는 온통 장밋빛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다 독립해서 더 이상 '엄마, 몇 시에 와?'라고 묻지 않는다. 아이들이 묻지 않으니 종일 내 질문에만 대답하면 된다 ... 시간은 어찌나 많은지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게다가 세상 자유롭다. 눈치 볼 시댁도 없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타이트하게 서로의 시간은 잡고 있던 남편과도 느슨한 연대를 유지할 수 있다.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세상이 오다니! 모든 40~50대들에게 '여기 엄청 좋아요, 얼른 오세요!'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 이제는 100세 시대의 황금기를 40대가 아니라 60대로 정의해야 한다. 내겐 60대라는 시기가 황금기를 넘어 '두 번째 스무살'처럼 느껴졌다. 스무 살처럼 자유롭게 꿈꿀 수 있고, 내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_p.44"





60대가 되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고 기운도 없을 것만 같았는데 "여기 엄청 좋아요, 얼른 오세요."라고 말해주는 롤모델이 있어서 다행이다. 인생에서 제일 좋은 시절을 맞이했다는 그녀는 60대 이후 해외에 나가서 영어로 강의하고 싶다는 '두 번째 스무 살'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모두가 늦었다고 반대하는 나이 50대 중반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님을 영어로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고 홀딱 반했다. 55세에 처음 시작한 영어가 유창해서가 아니다. 인터뷰 몇 달 전부터 책을 다 읽고, 영상 스크립트도 뽑아서 외우다시피 하고, 질문할 내용도 미리 다 외워 영어 선생님과 역할을 바꿔가며 연습하고 고3처럼 공부했던 시간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 부담스럽고 힘들어 도망가고 싶어도 '억지로' 되게 만든 그 인터뷰는 감동적이다. '리얼 미'와 상의하고 결정한 가슴 뛰고 신나는 삶이다.


당신의 마흔은 아직 오전이다

"100세를 24시간엥 빗대어 계산하면 1년은 대략 14분 24초., 40세는 오전 9시 36분이 된다. 이제 막 출근해서 한창 열심히 일할 시간이다. 50이나 돼야 비로소 정오, 낮 12시가 된다. 해가 가장 높이 떠오른 12시를 밤 12시처럼 살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준비 없이 50대가 된 사람들은 60대부터 밤 12시처럼 불을 끄고 '오프 모드'에 들어간다. _p.47"


"50대, 60대, 70대 30년간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이 온다. 경쟁과 책임으로 둘러싸인 마흔의 지금 이 시간, 나를 둘러싼 이 좁은 세계가 전부가 아니다. _p.48"


"스무 살 때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꿈, 일상에 쫓겨 두고 왔던 꿈을 다시 소환하자. _p.49"


꿈을 소환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누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책을 사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쓰는 것이 죄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엄마도 좀 크고 싶다. 나이 들수록 왜 갑자기 안 하던 일을 하냐며 욕 먹기 십상이라고 하니 지금부터 연습을 해야겠다.


"40대부터는 나를 위해 당당하게 돈과 시간을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 나를 위해 꿈을 꾸고 꿈을 위해 당당히 돈을 쓰는 행위가 가족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자연스러워지도록 연습해야 한다. _p.49"


스스로 내는 상처가 더 아프다

"네 동창은 몇 평 아파트도 사고, 골프도 치러다니고, 가사 도우미 도움도 받는다더라." 무심코 부모님이 던진 비교의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미경쌤은 가끔 누군가 함부로 나를 비교하거나 스스로 비교하는 생각이 들 때를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노트에 쓰고 머리로 외우고 입으로 말해보기'를 추천하며 남이 던진 힌트가 내 하루를 망치고, 과거를 부정하게 만들고, 미래를 무력하게 하지 않도록 주문을 외우라고 한다.' "너 정말 잘 살아온 거야."


"비교는 상처의 힌트같은 것이다. 남이 살짝 던진 힌트를 가지고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남이 주는 상처보다 내가 스스로 내는 상처가 훨씬 더 아픈 법이다. 남이 준 상처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라, 남이 던진 말을 받아 내가 네에게 반복하기 때문에 우울한 것이다. _p. 90"


나를 끌어내리는 것들과 싸워라


남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지 말고 환경과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너를 위한 충고'를 가장한 프로 참견러들에게 끌려다녔더 것은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인 것 같다.


"수없이 거절하고 반대하면서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고 지켜온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반면,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는 이들을 단번에 알아본다. 꼭 그런 사람에게만 함부로 참견하고 충고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_p. 123"



아이만 사춘기가 아니다. 나도 사십춘기다. "싫은데? 내 생각대로 할 건데?" 가족은 꾸준함으로 포기시키는게 가장 좋다고 한다. 정말 원하지만 가족들이 반대할 때는 싸워서 쟁취하기 보다는 싫어하거나 말거나 몸으로 지속하며 진심을 보여준다. 그래야 내 속도대로 나답게 나다운 인생을 만들 수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책상을 가져야 한다

집안의 가장 좋은 자리와 책상은 아이들을 위해 따로 떼어놓았지만, 내 책상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구석진 곳의 허름한 책상이 내 공간이지만, 어엿한 내 서재이다. 새벽 5시. 모닝짹짹이가 되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아무 생각없이 멍때리며 앉아있기도 하지만, 책도 읽고, 종이에 끄적거리고, 공부할 수 있는 '나만의 책상'은 나를 설레이게 한다. 문방구에 가서 마음에 드는 포스트잇과 필기도구, 노트를 사는 일도 큰 즐거움이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다. 등을 곧게 펴고 책상 앞에 앉아야 생각도 바뀐다. 같은 책을 읽어도 침대에서 읽느냐 책상 앞에 앉아서 읽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 책상에서 읽으면 독서대도 있고 필기할 노트와 포스트잇과 펜이 있으니 저절로 수험생 자세가 된다. _p.137"


현재를 사느라 벅차다고 미래를 내버릴 수 없다

자존과 존엄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라서 나만히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현재를 사느라 벅차고 힘들어도 '내가 스스로 가치를 느끼는 일', '가슴을 뜨겁게 데우는 일'을 시작한다.


"첫 번째 직장에서 쌓은 20년간의 자존과 존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50~60대에 어떤 일을 하는가, 내가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느냐가 50세 이후의 존엄성과 즉각적으로 연결된다. _p. 226"


책의 뒷 부분에서는 '불황, 1인 스타트업, 슈퍼 프리랜서, 미래의 돈을 버는 방법' 등이 나오는데 이 쪽(?)은 관심 분야가 아니라서 집중도가 떨어졌다. 그래도 앞으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웹 3.0'에 대해 생계형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40대가 100세까지 돈을 벌고 커리어를 만들며 자존감 있게 살아가야 할 세상은 어차피 웹 3.0세상이라고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차피 '디지털 세상'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있다니 모른척 하고 넘어갈 수도 없고, 세상을 땅의 관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의 '디지털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도록 한쪽 발이라도 담그고 있어야 하나보다.


"디지털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마치 새로운 터전으로 이민을 가는 것과 같다 ... 우리가 조만간 이민 가야 할 나라는 이미 정해졌다. 좋든 싫든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 땅에서 살아야 한다. _p. 271"


커뮤니티가 무한 확장되는 시대가 온다.

살림과 육아로 바쁘다는 핑계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따로 만나는 '모임'은 따로 없다. 하지만 네이버 카페 '미자모'에 가입하여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며 격려를 받는다. 육아, 독서, 운동, 요리에 찐 고수분들이 많아서 보고 배우며 도움을 받고 있다. 커뮤니티가 무한 확장되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까페 활동만 했을 뿐이지만 나도 이미 웹 3.0세상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라고 우겨본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도 놓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유지해봐야겠다.


"커뮤니티 비지니스의 핵심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유용한 무엇인가를 준다든가 ...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데 커뮤니티의 가치가 있다. _p. 271"


"지금처럼 몇 만 명, 몇 십 만 명씩 모여 있는 플랫폼들이 점점 사라지고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이 무한 확장될 것이다. 요즘은 기업들도 예전처럼 수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플랫폼 광고 대신 자신들이 원하는 고객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를 찾아다닌다. 규모는 작아도 그 편이 훨씬 실속 있다 ... 웹 3.0 세상이 가속화될수록 신뢰를 기반으로 탄탄하게 키운 찐커뮤니티만 있어도 충분히 먹고사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 혼자 뭔가를 꾸준히 하는 와중에 주변에서 함께 하자, 도와주겠다 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게 커뮤니티다. 그 일에 진심인 사람이 리더가 되어 커뮤니티에서 리더가 되어 열심히 운영하다 보니 개인과 커뮤니티가 함께 성정하고, 구성원들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경제 생태계를 찬찬히 구축하는 것이 진정한 커뮤니티 비지니스의 발전 과정이다. _p. 271"





배우 한가인씨와 미경쌤이 나눈 대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40대가 되면 은퇴 생각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여신같은 미모를 자랑하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녀도 이런 고민을 했다고 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부족하고 못나고 아픈 짐을 몇 개씩 안고 살아가니 서로 비교란 참으로 부질없음"을 알게 되는 나이, "그럼에도 꿋꿋이 버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친구들이 자랑스럽고 안쓰려워 진심으로 격려만 해줄 수 있는 나이", 60대의 진정한 동창회가 기대된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여기저기 많이도 쳤다. 쉽게 읽히지만 울림이 큰 미경쌤의 명언들을 참고해서 나만의 인생 해석집을 만들고 있다. '마흔은 잘못이 없다'고, '마흔인데 이룬 게 없어도 정상이다'라고 말해주는 인생 선배 언니가 있어서, 마흔 진짜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많네. 오전 9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