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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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는 이 책이 안철수의 대선출마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책은 박근혜를 비롯한 여러 대선주자들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 분명하다.

나의 결론도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이 책은 대선출마 허가서 같은 것이다.

 

"대선출마할 생각있으니, 그래서 몇 달간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보았으니 국민 여러분이 평가하고 허락해주세요. 제가 대통령 나가도 되는지"

 

내가 보기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그는 몇 달 전 강연에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던 바 있다.

이게 우유부단으로 여겨질지, 신중함과 소통의 의지로 여겨질지는 국민들의 선택이다.

어쨌든 방법은 특이하다.

 

1. 공약집을 국민들이 읽도록 만드는 대단한 전략(?)

 

여태까지 안철수는 대단히 독특한 방법(강연이나 편지, 책 등)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자신의 결단을 보여주곤 했는데, 이 번 책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궁금증을 한껏 증폭시킨 이후에 '대단히 자세한 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들여준다. 궁금증이 시간이 흐르면서 커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서 읽고 있다. 독서란 것은 대단히 '능동적'인 작업을 요구한다. 까놓고 말하면 이 책은 자세하진 않지만 사실상 정론집이나 공약집에 가깝다. 우린 대부분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에 큰 관심이 없고 잘 읽어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돈까지 내게 하고 읽게 하다니... 이것 자체도 신기한 일이다.

 

2. 보수는 안철수를 깔수록, 불리해 질 것

 

우연히 'TV조선'을 보니, 안철수를 진보쪽으로 밀어내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 안철수가 부인과 함께 서울대로 부임했다든가
안철수연구소 주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든가
회사를 경영했으니 털어서 먼지가 나오겠지 등등

(아마 박근혜 대항마라서 그럴텐데) "새누리 등 보수진영은 안철수를 진보로 간주하고 있다."고 우리는 결론내릴 수 있을 듯하다. 아마 앞으로도 안철수 흠집내기가 계속될 듯하다.

하지만 새누리당 입장에서 생각해준다면
안철수를 진보가 아니라 '보수'라고,즉 그들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새누리당에게 유리하다.
(실제로도 안철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일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안철수를 보수로 간주하고 그렇게 국민들에게 인식되는 순간
많은 국민들이 굳이 안철수를 찍을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안철수에게서 '변화'라는 이미지가 사라진다면 안철수는 "좀 착한 잘 나가는 사람"이 되버린다.

한 마디로 그냥 유명한 기업인이자 교수로 전락한단 말이다.

 

3. 진보가 권위를 상실한 시점이라는 것

 

진보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서는 안철수가 '진보적 외양'을 띠게 되는 것이 기분 나쁠 것이다.

그가 "민주화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
하지만 '통진당 사태'로 인해 진보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점이기에
안철수가 진보적 외양을 획득하기가 더욱 쉬워져 버렸다.

즉 안철수가 '진보적 아우라'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안철수 자신도 진보정당이 '계파주의'에 빠졌다고 진단하고, 민주화운동 출신이라는게 이제는 정치인이 되는 특권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그는 37쪽에서 민주화 논리도 구체제적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물론 민주화 논리가 왜 구체체적 사고인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아 미심쩍다. 그냥 진보정치에 실망했다 이 정도로만 보인다.)

게다가 CEO였으면서 진보적 외양까지 획득하였기 때문에 이만큼 안철수의 지지율이 나오는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이미 기업사회이기 때문에

이명박 이후부터 CEO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 권위나 명예를 얻는 자격이 되어버렸다.

 

4. 나쁜 경험(정치)이 적을 수록 좋다

 

노무현과 안철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가 정치인의 경력을 쌓았다면, 후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안철수는 "낡은 체제와 결별해야 하는 시대에 나쁜경험이 적다는 건 오히려 다행"이라고 그의 성격과는 달리 오바마의 말까지 인용하면서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정치경험이 없는게 어쩌면 미덕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처럼 제도정치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는 이 주장도 설득력 있다. 즉 지금 이 시점이기 때문에 먹힐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안철수 본인이 정치인이 아니라는 컴플렉스를 벗어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5. 진심의 정치, 진정성의 정치

 

"저는 민주사회에서 정치적 리더십은 국민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 말 자체는 새로운 것이 없다.

리더십의 핵심은 진심이라고 41쪽에서 말하는데,

결국 그는 자신의 진정성을 주장하는 셈이 된다.

나는 진심이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다라고...

"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진심이 있어야 해요"

(그러고보면 이명박 정부는 정확히 이 말 반대로' 이명박 일당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을 철저히 이용한 셈이다.)

 

6. 하지만 정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안철수는 통합의 리더십을 주장한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현재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적대와 갈등을 먼저 직면하는 과정을 건너뛰고

곧바로 통합과 소통으로 들어가면

결국 투쟁이나 갈등이나 적대를 덮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안철수가 북유럽 복지국가에 대한 의견을 말할 때

난 그가 북유럽 복지국가가 엄청난 투쟁의 과정 속에서 재벌의 양보를 얻어냈다는 사실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안철수가 정치인이 아닌 것도 좋고 소통하려 하는 모습도 다 좋다.

하지만 정치란 싸움의 과정을 동반한다.

어쩔 때에는 상대방을 제거해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안철수에게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의 '정치관'이다.

 

전반적으로 안철수는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핵심문제들에 대해서 간명하면서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도 잘 짚고있다(교육분야가 소홀하긴 하다.)

 

그러나 기존의 구체제와 단절하기 위해서는 '구체제 타파 전략'이 필요하다

구체제를 만든 세력들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하려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이런 부분이 빠져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는 몰상식하고 비상식적인 사회이기에

'상식'을 위해서라도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는 점이다...

도덕적 설득이 정치를 대체할 수는 없다. 말이 정치를 대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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