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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론의 역사 - Social theory : a historical introduction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박형신 외 옮김 / 일신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회학의 위기'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 책의 서두에서 사회학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약화되었다는 언급을 볼 수 있다. 바로 영국의 경우,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다.
"1980년대 동안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부상한 신우파는, 실제로 사회학을 사회주의의 위장으로 간주했다. 대처정부 하의 영국에서는 학술연구 관련 재단이 사회과학의 이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연구지원에서 제외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대처의 유명한 말 "개인만 있고 사회는 없다"란 말은 이러한 상황을 웅변하는 듯하다.
이와 같이 사회학의 연구대상인 '사회'라는 것의 위상이 약화되고 모호해지는 것(신자유주의는 정말 '사회'를 없애지 않는가? 남는 것은 '생존경쟁'이며, 믿을 것은 나 자신 뿐이다)에서 사회학 위기의 '정치적' 본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캘리니코스는 사회학에서 하던 것을 요즘에는 '문화연구'쪽에서 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지젝 같은 경우는 문화연구가 자본주의를 타격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문화산물들을 '분석'만 하고 앉아있다고 비판하곤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요즘은 사회학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이 '정치철학'에 몰려들고 있다고..)
그런데 " '사회'가 무엇인가"라는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회학의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이것은 비단 학문분과로서의 사회학이 아니라, 근대 이후 사회적인 것에 관한 여러가지 사회과학적 사유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사회라는 실체가 있다 없다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근대의 역사는 '사회'라는 것의 문제와 그것의 해결을 위해 사회라는 것에 대한 여러가지 표상들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요즘엔 시민사회란 용어를 많이 쓴다. 하지만 시민사회는 국가와 지나치게 '분리'된 개념이라서 문제가 있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사회학사를 '정치적' 영향사로 서술하는 이 책은 여태까지 '구조'와 '행위'의 결합이라는 사회구성 논리를 세우는데만 몰두해온 사회학을 좀 더 '사회학적으로' 살펴보는 기획인 듯하다. 그래서 아마도 사회학이 아닌, 사회이론이라는 제목을 붙인 듯하다. 하지만 기본 뼈대는 일반적인 제도 사회학의 틀을 갖고 가고 있으며, 다만 사회학 형성을 사회학사 외부의 영향관계를 골고루 다루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헤겔이라든가, 하이데거, 하이예크, 케인즈, 니체 등을 다룬다. 이들이 사회학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학을 계몽주의의 주된 상속자로 간주하면서, "인간이성은 사회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가?"란 질문이 사회학(혹은 사회이론)의 질문이었다고 보고 있다. 계몽주의가 제기하는 여러 문제제기들에 대한 답변의 과정으로서 사회학의 역사를 자리매김하는 것.
계몽주의 유산으로 발생한 프랑스혁명에 대한 해석상의 갈등이라는 전쟁터에 사회학을 위치짓는다. 보수주의 이론가와 자유주의 이론가, 그리고 맑스까지... 결국 사회학은 근대성과의 대결이다. 고전사회학자인 맑스, 뒤르켐, 베버는 특히 '정치경제학'과 대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파슨스도 결국 '공리주의'와 싸운다고 했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경제학과의 대결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학문분과로서의 사회학은 20세기나 되어서야 사회학과라는 제도를 갖게 된다. 뒤르켐은 사회학과 교수였지만, 베버는 경제학자였고, 맑스는 친구 엥겔스에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백수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