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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그리고 그 이후
자크 아탈리 지음, 양영란 옮김, 이종한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지난 해 2008년 9월과 10월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은 사라질 뻔했다. 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의 진단이다. 9월 15일 이명박과 조선일보가 어이없게 러브콜을 보내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세계 최대보험회사 AIG가 손실에 노출되 기어이 국유화되었다. 전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은 위기에 처한 은행들의 '악성채무'만을 골라 사들이고자 했다. 여기에 우파와 좌파 모두 반발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세금을 탐욕의 투기판을 벌인 투자은행에 쏟아붓고자 하는 시도에 미국유권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9월 29일 하원은 이 계획을 '부결'시켰고, 결국 다우지수는 777포인트 폭락했다. 그러자 은행들은 자신들의 자금을 묶어버렸다. '신용경색'이다. 게다가 서브프라임의 신용등급을 AAA로 진단하여 투자자들을 오도한 무책임한 신용평가기관들이 그제야 보험회사 등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그 회사들의 주가는 재차 폭락했다. 이러자 영국에서는 결국 은행 '국유화' 조치를 취했다. 결국 미국도 영국의 처방에 따라갔다. 구제금융을 받는 기업의 경영진 보수는 제한되었고, 이사회에 정부기구가 참여하게 되었다. 보수적 의원들은 이 방안의 사회주의적 색채에 충격을 먹었다. 이제 위기는 실물경제로 옮겨갔다. 그리고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최근 오바마는 뉴욕타임즈로부터 '당신은 사회주의자입니까'란 질문을 받았다. 오바마는 답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사회주의란 말에는 많은 깊은 의미가 담겨있으므로 그렇게 심플한 질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지금은 이념을 따질 때가 아니라는게 오바마의 생각인 듯하다.

자크 아탈리는 연초에 번역출간된 <위기 그리고 그 이후>에서 현재의 위기의 원인 중 핵심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수요 부족에 있다고 보고 있다. 중산층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빚을 얻으라고 부추김으로써 시스템의 모순을 계속 덮어왔다는 것이다. 이게 거품이 되어 터진 것이다. 파생상품만 해결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국유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탐욕 때문만도 아니다.
이 책의 미덕은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해 역사적인 분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는 점점 더 실물경제 위기와 정치 위기를 예고하는" 기능을 수행해왔다. 지금의 위기는 무엇을 예고하는 것일까? 1929 대공황처럼 결국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가? 아탈리는 최악의 경우 그럴수도 있다고 본다. 미국이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릴 것인가? 달러의 생존여부에 달려있다. 그런데 이는 사실상 달러를 많이 가진 중국의 판단에 달려있다. 다행히 아직은 통화위기(달러위기)로는 확산되지 않고 있다. 아마 중국이 내수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달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직은 미국이 망하면 중국도 위험한 것이다. 그러니 아탈리는 미국이 금방 망할 것 같지는 않다고 본다.
70년대의 오일쇼크는 어떻게 극복되었나? 미국의 정보기술혁명으로 극복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는 무엇으로 극복될 수 있는가? 아탈리는 이번 위기가 세계화 이후 첫번째 중대한 위기이며, 네덜란드 튤립투기의 광풍 이후 네덜란드 금융시스템이 성찰적으로 재정비되면서 네덜란드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섰듯,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하게 되면 굉장한 성장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네덜란드 튤립투기는 인간의 탐욕의 표상으로 주식투자서에 단골로 인용되는 사례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품 이후 네덜란드가 세계 최강국이 되었다는 아탈리의 지적은 낯선 것이며 신선하다. 네덜란드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질적으로 새로운 부를 생산해내지도 않으면서 소수집단이 합법적으로 남이 만들어낸 부의 상당 부분을 가로챌 수 있는 ... 이런 부조리를 가능하게 하는 체제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126~127쪽) 지금의 위기는 이런 진실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해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깨달았으면 뭔기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는 이렇게 살지 말자고. 아탈리가 제시하는 것은 세계 금융규제 기구이다. 다소 실망스러운 대안이다. 하지만 아탈리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지금까지는 민주주의와 시장이 비교적 긴장 속에서도 잘 지내왔다. 하지만 이제 시장이 민주주의를 질식시키는 상황이다. 이른바 금권정치 상황인 것이다. 시장은 글로벌한데, 법을 구현하는 국가는 시장을 규제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게 세계화이자 신자유주의다.(물론 아탈리는 신자유주의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쳐들어갈 겨울궁전도 해방시켜야 할 바스티유 감옥도 없는 셈이다!"(142쪽) 문제는 민주주의와 시장이 공유하고 있는 공통가치, 곧 '개인의 자유'라는 원리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소비자민주주의가 되었고, 개인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시장이라는 두 원리를 교묘하게 결합시켜왔다. 소비자는 선택의 '민주적' 자유를 누리면서 시장의 메커니즘에 빨려들어간다. 그런데 소비하지 못하는 자는 이제 사회의 '쓰레기(waste)'가 된다.)

이제 더이상 일국 단위의 해결책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보호주의'로의 길이다. 왜 2차대전이 일어났는가? 각 나라가 대공황의 여파로 각자 먹고살겠다고 보호무역주의로 퇴거하지 않았는가. 아탈리는 보호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본다. 특히 전쟁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금융시장을 제대로 관리감독할 수 있는 세계적 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현재 유럽국가들에서는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동유럽이 쓰러지고 자기 나라가 위험에 빠질 때, 공동 협력 기구를 만들 수 있을까? 특히 미국이 동참할까? 아탈리는 이 해결책이 유토피아적이란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것만이 남아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한다. 특히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선 더더욱 이 해결책밖에 없다. 아니면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단 여러 곳에 분산된 금융감독 권한을 단일 기구로(당장은 IMF로) 통합하고, 나아가 달러가치 폭락을 대비해서 세계 단일 통화를 모색하는게 해법이라고 한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다른 해결책도 있다. 바로 혁명이다. 어떤 형태의 혁명이 될런지는 모르지만, 공황이 생각보다 길어질 경우 혼돈 속에 (사회주의적이든 어떤 형태든) 혁명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아탈리 같은 중도주의자는 배제하는 예측이지만, 확률이 낮다고 해서 발생하지 않는다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러시아혁명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던 혁명이지 않았는가.
"부의 분배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금을 인상하지 않고 수요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중산층이 빚을 지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암묵적인 동의 속에서 1980년대 초부터 소비재구입용 각종 신용카드 발급, 주택 구입을 위한 특별 담보 대출 등을 통해 미국 사회가 기능해온 방식이다."(52쪽)
한국의 경제위기 해결 방식도 다시금 서민들이 빚을 내게 하고 중산층을 몰락시키는 방식이다. 부동산은 붙들고 있으며, 임금은 삭감하고. 유효수요를 죽이고 있다. 전세계가 불황인데 수출이나 떠벌이고 있는 것이다.(기껏해야 현대차나 살아남는 정책 아닌가) 향후 몰락하고 빚지는 국민들은 늘어날 것이다. 도대체 미국의 방식을 반복할 것인가? 과감히 '부의 분배'를 문제삼아야 한다. 부유층을 '건드려야'한다. 분명 금융자본주의는 소수세력에 의한 개미투자자의 합법적이고 매우 비도덕적인 착취라는게 이번 공황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데, 더이상 무엇이 문제인가. 그런면에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신앙과도 같이 붙들고 있는 <시장근본주의과 개발독재의 이상한 조합>은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