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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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종의 기원 / 정유정 / 은행나무

가끔씩 생각합니다. 놀랄만한 지적 능력을 지닌 인간은 본성이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차원의 존재인가.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정확한 답은 아직 제시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겠죠. 때로는 종교라는 망원경으로, 때로는 진화라는 현미경으로, 또는 스스로 경험치를 쌓아가면서 만든 단단한 안경으로 말이죠.

사실 소설이라는 영역에서는 선악의 대립이라는 주제는 작가에게도, 저 같은 독자에게도 그리 매력적인 소재가 아닙니다.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게 비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소설에는 수없이 '악'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데, 그 '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작가에게는 큰 도전일 것입니다. 대부분은 '악'을 설명하면서도 '악'의 속성을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끼거나 극한으로 몰아붙이기를 주저하는데, 정유정은 그렇게 만만한 작가가 아닙니다.

 

1. 악의 평범성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기록하며 한나 아렌트는 악은 어디에도 있고, 도처에 평범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란 종은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면서 말이죠. 이러한 단순 명제는 맞는 이야기인데 한편으로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악'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건 맞는데, 그 악이 단순히 그냥 선언적 '악'의 개념이 아니라 진화론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지키기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개념으로서의 '악'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생존을 위해서 여전히 악은 도처에 있고 악은 모든 종에 있으며 악의 평범성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정유정은 악을 마주하고 싶어 합니다. 내 주변의 환경과 관련 없이 악을 저지르는 사람의 내면에 들어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종의 기원>에서 유진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거겠죠. 철저하게 감정이 배제된 채 자신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사람, 다른 사람의 고통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오히려 교묘하게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사이코패스로 말이죠. 여기에서 작가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정유정은 그 악마의 내면을 들어가서 동화되어야 할 텐데, 생각과 행동을 윤리에 거리낌 없이 나타내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걸 해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는 뛰어난 문학 작품이 되는 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종의 기원>은 교묘하게 진화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유형의 포식자를 만들어내고 행위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면서 재미를 훌쩍 뛰어 넘어버렸습니다.

2. 유진은 악한가

유진은 악인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로서의 악입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제거하면서 느끼는 만족감을 가진 최상의 포식자로서의 유진은, 흔히 말하면 우리 사회에 없어져야 할 존재입니다. 대상으로서 유진을 보면 지극히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 소설이 유진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호흡을 하면서, 기억을 왜곡하고 지우는 유진을 보면서 온전히 제거 대상으로서의 유진을 바라보기보다는 '그 악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에 대한 이해와 분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말도 안 되는 괴물이지만, 그 또한 현실에서도 불현듯 실제로 나타나기도 하니, 그 악인에 대한 평가를 좀 더 객관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겠죠. 이것은 분노나 연민의 문제가 아니고, 해결의 문제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고 문학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저 역시 정유정 작가의 생각에 한 표 던집니다. 환경 속에서 우리 모두는 악이 될 수 있습니다. 뜻하지 않는 우연한 환경 속에서 휘말려버린 <7년의 밤>의 현수처럼 평범한 사람도 순식간에 악을 범할 수도 있으며, 영제처럼 악인의 전형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기에 누구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는 아마도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던 우리 유전자의 '이기적인' 힘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악이라는 것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그런 이기적인 '악'들이 서로 모여있기에, 지능이 뛰어난 우리는 '윤리'를 만들고 '법'을 만들어 낸 것 아니겠습니까? 다만 유진은 극단으로 치우친 '악'의 전형이고 상징이므로, 윤리적으로 엄격해야 하며 법적으로 심판받아야 할 것입니다.

3. 디테일과 스피디한 전개

이런 유진을 만들어 낸 건 전적으로 작가인 정유정의 능력입니다. 이러한 정유정의 능력은 사물을 묘사하거나 행위를 묘사하는 디테일에서 나옵니다. 기존 전작과 같이 이 책에서도 세부 묘사는 대단합니다. 현장이 입체적으로 드러나고, 인물의 맥박은 쉴 새 없이 뜁니다. 두근거리게 하는 상황의 압박감과 심리적 갈등 상황의 묘사는 때로는 유진이 되고, 유진 엄마가 되고, 유민이 되고 해진이 되게 만듭니다. 특히 주인공인 '나'인 유진이 살인의 장면에서 상대를 대하는 묘사력이 압권인데, 철저히 자기 관점에서 차갑게 논리적으로 자신의 변명을 해대며 만들어내는 성격 묘사의 디테일이 놀라습니다. 선택의 상황에서 유진은 감정을 철저히 배제합니다. 그리고 자기 안위에 대한 이해득실로 상대를 파악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는 그저  엄마가 아닌 나를 억압하고 파괴하는 존재로, 이모는 나를 망가뜨리는 공범이자 주범으로, 해진은 결국 목적과 비용의 상관관계의 도구로 전락합니다.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팽팽한 신경전은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장면을 쉽게 그릴 수 있습니다. 스피디해 눈을 뗄 수 없고 침을 꼴깍 넘기기도 여러 차례입니다. 세심한 묘사 때문이겠지요. 세심한 묘사는 정유정 식의 꼼꼼한 취재에 바탕을 두고 작성되기에 더욱 몰입도가 커집니다. 여담이긴 한데, 전작 <7년의 밤>처럼 이 책도 영화 제작자들이 영화화하기에 좋아할 작품이겠다 생각했습니다. 

4. 작가 정유정

항상 책이 나오면 읽고 싶은 마음에 두근두근 댈 만큼 매력적인 작가입니다. 긴 호흡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이야기들을 잘 풀어내고 그 이야기들을 다시 퍼즐을 완성하는 능력이 상당한 작가입니다. 스토리텔링이 훌륭하다는 거죠. 무엇보다도 멋진 것은 생생하게 장면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묘사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7년의 밤>에서 오영제와 현수의 신경전과 결투 장면이 압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작가의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생생한 상황 묘사 때문입니다. <28>에서 늑대 개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을 묘사하는 장면도 머릿속에 남는 까닭도 이와 유사합니다. 더욱이 문장 곳곳에 녹아있는 재기 발랄한 유머와 문장의 역동성으로 독자에게 흡인력을 갖게 하는 양념도 갖추고 있습니다.

작가 정유정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악을 갖춘 캐릭터의 등장인데, <7년의 밤>의 영제가 그렇고, <28>의 동해가 그렇습니다. 다만 <종의 기원>의 유진과 다른 점은 그들은 관찰자의 시선에서의 악인이기에 악을 객채화 할 수밖에 없어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정유정은 마지막 장에 있는 '작가의 말'에서 처럼 악을 더욱 밀도 있게 그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을 객체에서 주체로 바꾸어야 했겠지요. 당연히 그렇게 되면 시점은 관찰자가 아닌 '유진'이라는 악의 시점이 되어야 합니다. 작가는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전환해내어 그려 냈다는 점에서 성공했습니다.

5. 종의 기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인간 본성은 선한 존재입니까, 악한 존재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차원의 존재입니까. 정유정은 이 책에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책의 제목으로 대답합니다. '종의 기원'을 이야기하면서 말이죠. 다윈의 '종의 기원'은 진화론의 선구적인 저서이자 대표적인 표어이기도 하지요. 인간이라는 사피엔스라는 종은 으레 다른 종들이 그렇듯 철저한 진화의 산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종을 멸종시키기도 하고, 정복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살인과 악은 태초에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것일지도요. 그 유전 인자가 아직까지 소멸되지 못하고 남아있다면 가끔씩 우리는 유진 같은 괴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걸 경계해야겠죠. 그래서 법과 제도와 문화가 있는 것 아닙니까.

결국 유진은 기막힌 타이밍과 철저하고 냉정한 계산으로 위기에서 탈출합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관찰자적 시선으로 악을 응징하지 못한 것을 분노하기도 하고 유진의 시선에서 정확하게 계산된 그의 행동과 묘하게 부합하는 상황으로 짜릿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악의 전형인 주인공은 살아남았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또 다른 종의 시작이라고 할까요. 또 다른 악의 시작이라고 할까요. 유진이 살아 있어서 뒷 내용이 자못 궁금합니다. 유진의 활약 일지, 파멸 일지 <종의 기원 2>를 기대해야겠네요. 

 

 

유진의 심장을 뛰게 하려면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무엇일지 몰라 겁이 난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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