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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순수한 시대를 위한 한바탕
반항의 흔적 『호밀밭의 파수꾼』
대학 처음 발을 딛고 비트를 봤다.
정우성의 멋진 눈빛은 둘째치고, 오토바이 위에서 정우성이 두 눈을 감고 양팔을 벌리고 질주하던 모습에 한동안 먹먹했다. 그 시기의 불안과 방황,
무엇인가 주변인이 된 것 같은 내 모습이 영화에 깊게 덧칠해져였을 것이다. 속도감이 최고조로 다다르지만 결국 잡을 수 없는 그 무엇. 그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외롭다고. 아프다고. 그때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그 영화를 반복해 보며 위안을 얻었다. 시간은 상황을 해결해준다. 시간이
흐르니, 상황이 변했고 생각이 변했으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어른이 된 나는 그 반항의 시간의 흔적을 붙잡지 않았다.

아마 그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으면
어떠했을까. 비트 영화는 이 작품의 대체되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읽어버린 나는 '홀든 콜필드'의 반항을 따라가고는 있지만 동화되지 못한다. 그
반항을 존중하지만, 어른들의 거짓과 속물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나는, 홀든 콜필드를 그저 바라보았다. 순수함이 없어진 지금의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라 한다면 힘든 일이라고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런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p230)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왜 홀든의 마지막
장면이 남아있는 것일까. 순수함이 없어져 버렸다고 애써 말하지만 그 순수함을 갈망하는 것일까. 변해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누군가의 만남과
헤어짐을 쉽게 받아들이는 지금의 나를 속으로는 거짓과 위선으로 만들어진 사람으로 여겨버리기 때문일까.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퍼붓기 시작했다.
누가 하늘에서 물통으로 물을 붓기라도 하는 듯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전부 비를 피하기 위해 회전 목마의 지붕 밑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참 동안
난 그냥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완전히 젖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목 근처와 팬티가 많이 젖었다. 그나마 사냥 모자가 도움이 되긴 했지만,
흠뻑 젖는 건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피비가 목마를 타고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며, 불현듯 난 행복함을 느꼈으므로. 너무 행복해서
큰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피비가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정말이다. 누구한테라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p278)
<호밀밭의 파수꾼>을 지금에서야
읽어버린 나는, 나이가 너무 들어서 홀든의 일련의 과정을 치기로 치부하면서도 한편으로 또 다른 생각이 드는 건, 순수한 그 무엇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만약 그때, 홀든의 나이였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더욱 드는 건, 적어도 내가
힘이 들고 사회의 거짓과 가식에 절망했을 때 홀든이 친구가 되었을 터라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은둔의 작가로 유명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매카시 열풍이 불던 그 1960년대 미국의 일방통행식의 사고, 번영과 호황을 누리지만 그 이면의 성찰이 부족했던 사회, 그리고 존
레넌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이 암살 직전까지 손에 들고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이 책은 많은 비하인드스토리가 가득 차있다. 문학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간과한 채 읽어버리면 텍스트의 구조를 분석하고 서정적인 관념으로만 빠질 수 있다. 특히 이 책도 그럴 수도 있다. 이 책이 지루하다는
사람들! 그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라. '홀든 콜필드'라는 그 시대의 질풍노도의 젊은이를 만날 수
있으리라.
"내가 그 애가 죽던 날 밤 차고로
숨어들어, 유리창을 전부 주먹으로 깨부쉈으니까.(p58)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10만 번을 보더라도 에스키모는
여전히 물고기 두 마를 낚은 채 계속 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새는 여전히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중략)...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이번에는 코드를 입고 왔다든지, 지난번에 왔을 때 짝꿍이었던 아이가 홍역에 걸려 다른 여자아이와 짝이 되어 있다든지 하는 것처럼.
아니면 에이글팅거 선생님 대신 다른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든지, 엄마하고 아빠가 욕실에서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은 다음이라든지,
아니면 길가의 웅덩이에 떠 있는 기름 무지개를 보고 왔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늘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설명하고 싶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중략)... 예전에 내가 보았던 것들을 그 애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그리고 매번 그걸 볼 때마다 동생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지. 이런 생각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p164-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