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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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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슬픈 젊은이들의 자화상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얼마 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패션 디자이너가 직원들을 한 달에 10~30만 원의 급여로 장시간 일을 시켜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 디자이너는 사과를 했지만 아직도 시끄럽습니다. 또한 인터넷쇼핑 회사가 인턴들에게 최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시키고, 결국 해고를 해서 분개한 네티즌들이 회원을 탈퇴하고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었지요. 이른 바 '열정 페이'라는 것인데요. 이게 머냐면 젊은 청년들은 열정이 있기에 급여가 적을지라도 스펙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 사회 청년들의 씁쓸한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라가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열정페이'와 '갑을 논란', '취업 고통', '세대 간의 불통, '저출산 등의 일련의 과정이 나라가 점차 절망적으로 변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노동 운동', '민주화 시위' 등 예전에는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먼저 일어선 사람들이 젊은 청년들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너무도 조용합니다. 취업 걱정으로 정신 없어서 그렇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젊은 사람들은 제도를 바꾸는 힘인 투표에서조차 무기력합니다. 여력이 없어진 것일까요. 아님 관심이 없어진 건가요.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절망적인 나라에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은 한계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느꼈습니다. 이 책은 일본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현대 일본의 젊은이들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만성 재정 적자의 상태가 되어 가고 있으며, 빠른 속도의 인구 감소와 출산율 저하, 그리고 급속도의 고령화 상태가 되어 가고 있는 일본을 절망적이라고 필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거품 경제 붕괴 후 비정규직 취업이 일상이 되고 노인들의 삶까지 책임져야 할 지금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일본은 '절망의 나라'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게 있습니다. 바로 그런 절망의 나라에 살고 있는 젊은 당사자들은 정작 자신들은 행복하답니다. 일본 내각부에서 발표한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2010년도 시점에서 20대 남성의 65.9%, 20대 여성의 75.2%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격차 사회'라느니, '젊은이는 불행하다.'라느니 하는 갖가지 연설이 범람하는 가운데도, 오늘날 20대의 약 70%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20대 남성의 경우는 과거 40년 사이에 15%나 만족도가 상승하는 양상을 보이기까지 했답니다.(p129-130) 왜 그럴까요? 일본인 특유의 긍정성 때문일까요. 아니면 힘들지만 행복을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자기 수련을 하는 것일까요. 진짜 행복한 걸까요. 궁금해졌습니다. 왜 절망의 나라에서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하는지 말입니다.

이 책은 그 답을 찾아가는 분석론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 사회에서 젊은이론을 정의하고, 젊은이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파헤치는 책입니다. 요약하자면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지금 생활에 불만족하다는 것은 앞으로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라고 합니다.(p133) 따라서 불만족하다는 것은 미래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의미이지요. 그렇다면 바꾸어 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행복해한다는 것은 앞으로의 사회가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고 있다는 의미이고, 미래에 희망을 걸지 않고 포기하였기에 지금의 현재가 최선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말입니다. 즉, 일본의 젊은이들은 절망적인 미래를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일본 젊은이들은 미래의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찬란한 미래'를 접어둔지 오래이고, 그러하기에 진취적이지 않고 세상을 달관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를 '사토리 세대'라고 하는데요. 사토리는 '득도'했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현재 상황을 되는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아둥바둥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리고 현재에 만족한다는 겁니다.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지 않고 희망을 포기하는 슬픈 현실을 풍자하는 말입니다.

이 슬픈 현실을 견디기 위해 그들은 득도하는 거지요. 그리고 현재가 행복하다고 주문을 외우는 겁니다. 그 주문을 위해 현재를 소비하며 저항하지 않는 거지요. 더욱 문제는 이러한 불행한 현실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며 그들만의 문화 속에서 열정을 소비하며 현재를 만족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 책에서도 말합니다. '오늘보다도 내일이 나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동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젊은이들, 다시 말해, 그들은 작은 공동체 안에 모여 있음으로써 행복을 찾는다고요.

결국 미래는 암울해 보입니다. 지금의 행복이 진정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윗세대와 아래 세대를 부양할 시기가 되면 그때도 행복하다고 할까 궁금합니다. 포기해버린 미래에 그들이 도착한다면 윗세대와 아래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현실과 이미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무력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심지어 필자는 "이대로 간다면 일본은 느슨한 계급 사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일등 시민'과 '이등 시민'의 격차는 점진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일부 '일등 시민'은 국가와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는데 분주할 테지만, 다른 수많은 '이등 시민'은 태평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소일하는 그런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다"(p308)라고 말합니다.

변화를 이루려 하지 않고 미래를 포기하는 '사토리 세대'를 보면 무엇인가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건 바로 '절망의 일본'이라는 문구에서 일본을 우리 나라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일본 사회의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사회, 낮은 출산율과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 닮아도 너무 닮았습니다. 오히려 일본 젊은이들은 '득도'라도 하고 있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이 상황이 무엇인지 갈팡질팡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취업을 위해 사회를 들여다보지 않고, 열정 페이에 강요당하면서도 사회 현상으로 치부해버리는 갇힌 틀안에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절망의 나라의 어찌할 바 모르는 젊은이들'이 있는 사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대안 제시를 하지 않습니다. 섣부른 대안은 오히려 더욱 상황을 망칠 수 있어 말을 아낍니다. '절망적인 일본과 미래가 없는 젊은이'를 분석하고 바라봅니다. 우리가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담담히 말합니다. 책을 읽은 우리의 과제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젊은이들의 희망을 키워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미래 지향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기입니다. 사회 구조를 바꾸어 보려는 열정을 가지게끔 하고 정치적 의사표시의 수단인 적극적 투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실을 왜곡시켜 자위하는 '일베'류의 사이트에 우리 젊은이들을 몰지 말고 그들을 현실세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고 그들이 강력하게 연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대안이 될까요. 다시 한 번 사회를 바라보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 다만 '젊은이 희망론'은 종종 암묵적으로 젊은이들을 '편리한 협력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이에게 권리나 구체적인 혜택, 기회를 주지 않고, 그저 '노력하라'라고만 다그치는 행동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p61)

" 바꿔 말하자면,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 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p134)


" 그렇게 되면 아무리 '격차사회'라든가, '블랙 기업'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도, 젊은이들 스스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는 한 대규모 시위 따위는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자신들의 사회'가 침해되거나, '자기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세계'가 지적을 당했을 때는 어떤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p219)


" 빈곤은 미래의 문제이므로 잘 보이지 않는다. 승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도구는 수없이 많이 준비되어 있다. 이러게 보니 그토록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기 생활에 만족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p299)


" 돌아가야 할 '그때'도 없고, 눈앞에는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게다가 미래에는 '희망'조차 없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달리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왠지 행복하고, 왠지 불안하다. 우리들은 바로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절망의 나라에 사는 행복한 '젊은이'로서."(p316)

 

덧붙임 하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란 일본식 문법구조가 상당히 거슬립니다. 일본식 조사 の의 번역인 것 같은데요. 결벽증이 있나.. 이런 것이 왜 이렇게 거슬릴까요. 어쩔 수없이 제목을 직역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인 것 같은데 '절망의 나라의' 대신 '절망적인 나라의'가 더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덧붙임 둘.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물론 솔직한 리뷰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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