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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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그리고 묵직하게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

얼마 전에 목포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유달산을 등반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에 동백꽃을 보았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텐데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등반을 멈춰 동백을 살폈다. 왜 이렇게 추운 겨울에 꽃이 피는가. 왜 벚꽃처럼 잎이 낱처럼 흩뿌리지 않고 온전한 송이로 떨어지는가.. 신기한 일이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했다. 항상 거기에 그렇게 있는데, 등산을 하면서 숱하게 보았을 꽃인데 이제서야 보인다. 이 책 '책은 도끼다'를 읽고 난 후의 일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의 기행문 한 구절에 동백을 이렇게 표현한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러운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렸다.' 작가 박웅현은 이 글에 감탄을 하며 자기식으로 문장을 풀어 놓는다. 나 역시 도끼로 찍힌 듯 전율이 흘렀다. 내가 쉽게 보고 지나가서 나에게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던 동백이 이렇게도 다가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서 그 후로는 주위의 자연과 사물을 쉽게 지나치는 것을 망설였다.

이 책의 구성 내용은 대략 이렇다. 박웅현의 감성을 깨뜨렸던 도끼들. 박웅현이 읽은 인문학 책을 소개한다. 주옥같은 책들이 전반에 걸쳐 흘러나오며 그 책의 문장들을 박웅현식 감성으로 분석하고 풀어낸다. 그리고 그 머릿속 도끼질의 흔적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강의를 옮겨 놓은 듯 글투가 구어체적인 특징을 가지며, 그러하기에 쉽게 읽힌다. 그렇다고 내용이 쉬운 것은 아니고, 충분히 철학적이고 인문학적 사유가 넘쳐나는 작가와 글들을 소개하여 지적 충족도 얻을 수 있다. 8강. 8장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장마다 새로운 작가와 작품이 등장한다.

1장은 이철수, 최인훈, 이오덕을 소개하는 책이다. 최인훈과 이오덕은 나름 친숙해서 기뻤는데 이철수는 낯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판화가 이철수와 그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꼭 사서 읽고 싶을 만큼 그의 글은 재미있고 신선하다. 2장은 김훈의 책과 문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나 역시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김훈을 종종 꼽는데, 그래서 더욱 반가웠고 행복했다. 수식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놀라운 글을 써내는 김훈은 언제나 존경의 대상이다. 3장은 알랭 드 보통,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소개한다. 예전에 <불안>이란 책을 읽다 덮은 적이 있는데,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생각이 새록새록 드는 장이다. 4장은 대니얼 디포, 고은, 미셸 투르니에를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고은의 시를 음미하며 책을 읽었는데, 고은의 반짝거리는 시를 계속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읽었다. 5장은 지중해 문학의 밝고 아름다운 장을 소개하는 장인데, 읽고 있으면 지중해의 낭만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끽할 수 있다. 6장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고, 7장은 안나카레니나를 말한다. 두 작품 다 읽어 보겠다고 정가제 전에 사두어서, 작품 먼저 읽고 읽을 요량으로 읽지 않고 넘겼다. 꾹꾹 눌러서 읽을 터다. 마지막 장인 8장은 우리 옛 선조들의 지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동양식 사고의 유연함과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있다.


박웅현은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쳐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끼로 와 닿았던 책들은 다시 읽으며 전에는 보지 못하고 넘어간, 새롭게 감동으로 다가온 문장에 또 밑줄을 긋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저자가 읽으며 울림으로 다가왔던 문장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소개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감탄하며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나는 쉽게 지나쳤을 문장을 이렇게 곱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페이지를 넘기는 데 급급하여 작가가 고민을 거듭하여 썼던 사유를 나는 읽어가지 못했구나라는 생각.

박웅현이 '미친 사람'이라고 평하는 김훈이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서술은 몽매해집니다."

너무 멋진 말이다. '이'과 '은'의 세계를 김훈은 이렇게 표현하고 이렇게 아껴 글을 쓴다. 엄청난 인문학적이며 철학적 사고가 담겨 있는 문장들을 우리는 쉽게 읽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저는 책 읽기에 있어 '다독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독 콤플렉스를 가지면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게 되니까요. 올해 몇 권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일 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p34)처럼 다독에 목매지 말고 정말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 책을 읽고 있는가. 문장을 곱씹고 사유하며 글을 읽고 있는가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책을 통해 새롭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즐겁다. 내가 독서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냥 넘어가거나, 생각지 않았던 것들을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도록 누군가가 가르쳐주고 이야기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독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박웅현식 책 읽기에 빠진 게 두 번째 일이다. 처음에 읽은 책이 오히려 이 책<책은 도끼다> 후에 나온 책인 <여덟 단어>였는데 그 책 역시 많은 감흥을 주었다. 후작인 <여덟 단어>가 삶을 살아가진 지혜를 이야기하였다면 이 책은 온전한 인문학적 책 읽기에 집중한 느낌이다. 계속 읽으면서 느낀 건데 쉬운 문장으로 깊은 사유를 표현해내는 그의 글이 참 매력적이다. 박웅현의 책에 웅크린 수많은 명작들, 언젠가는 다 읽어버리라. 2015년에도 역시 '그래봤자 독서' '그래도 독서'다.



이철수는 또 저에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동양의 삶의 태도와 서양의 삶의 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비교하게 해주었는데요, 그것은 역시 판화<가을 사과>에 쓴 한줄의 글이었습니다. ..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p22)


 

오스트리아에 한 음악학교가 있다고 합니다. 그 학교는 음악학교인데도 어린아이들에게 악기 연주를 시키지 않는 대신 애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자연의 음들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바닷가에 가서 자갈을 들고 큰 돌과 큰 돌이 부딪치는 소리, 큰 돌과 작은 돌이 부딪치는 소리, 파도가 치는 소리를 들으며 얘기하는 것이죠. 이렇게 음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이 중요한데 우리는 기술만 가르치고 있으니까 요즘 교육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p38)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파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곳에 있을 시간이 삼 일밖에 없기 때문입니다.(p51)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주목해주거나 다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가를 알아줘을 때 사랑에 빠진다는 거죠.(p115)


​알랭 드 보통은 바로 그것, 상대적 궁핍과 궁핍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덜 불안해진다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거지가 질투하는 대상은 백만장자가 아니라 좀 더 형편이 나은 다른 거지다."라는 버트런드 리셀의 말도 같은 문맥인 거죠.(p120)

프루스트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했던 방법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대화의 소재를 다른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찾았다.(...) 그는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대신에 당신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이 부분은 제가 삶의 태도로 가져가고 싶은 부분이라서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p136)


알랭 드 보통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했으니, <동물원에 가기>에 있는 키스에 대한 이야기로 알랭 드 보통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키스는 모든 것을 바꾸어버린다. 두 살갗이 접촉하게 되면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가, 암호화된 말의 교환은 끝이 나고 드디어 이면의 의미들을 인정하게 될 터였다.'(p136)



제가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목표로 삼는 건 온몸이 촉수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책을 읽고 나면 촉수가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혹은 없던 촉수가 생겨나는 느낌인데요. 세상의 흐름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내 인생을 온전하게 살고 싶어요. 오늘의 날씨, 해가 뜨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사람과의 만남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해요.(p139)

 


낯선 곳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에요.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말하죠. 익숙한 것을 두려워하라고, 땅버들 씨앗 같은 삶의 태도로 살았으면 좋겠다고요.(...)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내 마음대로 직조할 수 없어요. 시대라는 씨줄과 내 의지라는 날줄이 맞아야 해요. 내가 아무리 날줄을 잘 세운다고 해도 씨줄이 너무 세게 밀고 들어오면 휘게 되어 있어요. 살다 보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아요. 급한 물이 밀려올 때가 있죠. 그럼 타야지 어쩌겠어요.(p154)

 

 


 

우리 팀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첫째는 '모든 사생활은 모든 공무에 우선한다'이고 둘째는 '모든 술자리는 모든 회의에 우선한다'입니다. 꽃 보러 가야죠. 나라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정도로 꽃이 흐드러진 날에는 꽃 보러 가는 게 맞아요.(p172)


 

 한형조의 <붓다의 치명적인 농담>에서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더 소개하겠습니다. '내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리라'라는 기필을 거두십시오. 세상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 오만과 야만을 버려야 합니다.(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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