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저께까지만 해도 눈이 계속 펑펑 내리더니 오늘은 날씨가 맑다. 그래도 밖은 눈이 꽤 쌓여있어서 햇볕에 반짝이는 눈을 보고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토스토프옙스키의 <죄와 벌>을 덮었다. <죄와 벌>을 읽고 있자니, 라스콜니코프의 의식의 흐름을 쫒고 있자니 내가 미친듯이 빨려들어가는 느낌,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날과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생각의 소비가 심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을 놓치기 싫어, 표지도 산뜻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집어 들었다. 토스토프옙스키를 힘들어해 톨스토이를 선택하다니,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 같다.

​톨스토이 <부활>을 어렸을 때 읽었다. 십대 시기에 읽은(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부활>은 가물가물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읽었다. 그래서 어렵다는 것과 힘들다는 느낌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가 평생의 역작이라지만, 읽을 힘도 읽을 능력도 없을 때라 <부활>에서 멈췄다. 기회가 되면 읽어야지 다짐해본다. 우선 도스토프옙스키 먼저 읽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책은 톨스토이의 세 단편이 실려 있는데, 천사 미하일로 인해 일어나는 이야기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결국 죽어서는 2m가량 밖에 되지 않는 땅만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그리고 우직한 바보인 이반이 악마를 이기는 <바보 이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편 모두 한 번쯤은 읽거나 들었던 이야기일 정도로 유명하다. 어린아이에게도 쉽고 재미있게 읽혀(나 역시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이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집이기는 하지만  권선징악의 계몽주의와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도처에 드러나 있어 쉽게 톨스토이의 세계관과 종교관을 읽을 수 있기에, 가벼운 책만은 아니기도 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천사 미하일은 출산한 여인의 영혼을 차마 두지 못하고 벌을 받지만 하느님의 세 가지 말의 뜻 '인간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의 답을 구하면서 다시 천사로 환생한다. 답은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  허락되지 않은 것은 '육체를 위해 무엇이 없어서는 안되는지 아는 지혜'라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인데 결국 우리 인간은 사랑을 가지고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공동체적 사랑의 힘을 실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재물에 욕심을 부리는 바흠이 결국 끝없는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쓰러지고 그가 차지한 땅은 불과 2m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와 끝끝내 우직하게 일하고 노동의 신성함을 믿는 이반에게 군대와 재물의 탐욕의 악마에 승리를 거둔다는 비폭력 저항 운동<바보 이반>이야기의 계몽적이고 의도적인 우화와 연결된다. 결국 책을 덮었을 때 우리 모두 비슷하게 공감해버리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계몽주의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톨토이는 왜 이런 계몽주의적 소설을 썼을까? 톨스토이의 인물사를 보면 해답을 얻을 수 있는데, 그는 말년에 문학보다 종교 사상에, 교육 수준이 낮은 민중 계몽에 더 힘썼다고 한다. 그 때 탄생한 작품이 이러한 짧은 교훈적인 우화들이었기에 이 세 작품은 그의 말년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들인 셈이다. 물론 톨스토이의 이러한 변화가 그리 반가움의 대상은 아니었나 보다. 톨스토이의 기독교적이고 계몽적인 소설은 많은 문학도들에게 도스토프옙스키와 비교되며 호불호를 양산해냈으니 말이다.

그래서 도스토프옙스키와 톨스토이를 비교하는 논쟁은 재미있다. 러시아 문학의 최고점인 두 사람 중 누가 더 낫냐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방향이나 주제 의식이 서로 달랐기에 선호도는 다를 수 있음을 공감한다. 나는 아직 두 대문학가의 소설을 완독하지 못하여서 이 논쟁을 그냥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지만, 언젠가는 두 거장의 작품을 비교 분석하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까지는 사람의 의식을 철저히 파헤쳐가며 의식의 흐름을 폭발적으로 전개해가는 도스토프옙스키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나의 독서량이 짧으니 우선 여기까지 하고 보류다.

단숨에 세 편을 읽었다. 좋은 이야기도 많이 읽어서 머릿속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가볍게 읽고 싶을 때(절대 가볍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삶의 긍정을 생각하고 싶을 때, 바르게 사는 가치를 고민해보고 있을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어렴풋이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을 꺼내는 재미도 쏠쏠하니 한 번 정도는 톨스토이의 우화를 정독해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가거라, 그래서 그 어머니의 영혼을 거두거라. 그러면 세 가지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게다. 인간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깨달은 다음 하늘로 올라오거라."(p53)

"바흠의 하인이 달려와 그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의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쓰러져 죽은 것이었다. 하인은 삽을 들고 바흠의 무덤을 판 뒤 그곳에 그를 묻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정확히 2미터가량밖에 되지 않았다.(p96)

"다만, 이 나라에는 한 가지 관습이 있다. 손에 굳은살이 베긴 사람은 대접을 받을 수 있지만 손에 굳은살이 없는 사람은 남이 먹다 남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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