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유시민을 키운, 유시민과 같이 읽는 인생의 지도

유시민을 기억한다. 한창 정치 및 사회에 관심이 막 생길 나이어서 '100분토론'을 꽤 열렬하게 시청했었다. 그때 MBC 100분토론 사회자가 유시민이었다. 날카로운 인상이었으나 웃음기가 어려있었고 말쑥했다. 무엇보다도 토론을 리딩해 가는 능력이 참으로 놀라웠다. 패널들의 잘못된 논리적 모순을 정확하게 지적하였고, 자칫 산으로 갈 수 있는 토론에 중심을 잘 잡아 논제에 집중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편향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진보를 이야기하는 그의 언뜻언뜻 비치는 언행에 묘한 동질감을 느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노무현 대선 활동에 그가 뛰어들 즈음, 읽은 게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였다. 유시민에게 항상 연관되어 따라오는 유명한 글이다. 1985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항소'를 하며 직접 썼다. 명문이다. 글이 논리적이고 적확했으며 읽기 편하며 유려했다. 군부 독재의 비민주성과 사건의 왜곡과 날조에 맞서서 신념을 가지고 통쾌하게 썼다. 그때 그의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니 그 젊은 시절에 얼마나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였는지 느낄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의 신념과 논리적 사유가 부러웠다. 노무현을 따라 정치의 길에 들어선 유시민은 장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치열하게 정치와 싸우다 돌연 정계 은퇴하였다.

이 책 <청춘 독서>는 그런 유시민의 인생을 만든 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갈림길과 장애물이 나타날 때마다 도움받았던 낡은 지도를 꺼내 살펴보는 것처럼 유시민은 긴 여정을 함께 했던 지도를 들여다보면서 지난 시기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를 차분히 되짚어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했다. 그래서 고전이라고 일컫는 문학과 철학, 인문 사회학의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유시민을 읽을 수 있었고, 더불어 유시민의 치열했던 고민과 성찰도 아울러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분야의 위대한 생각들을 유시민의 안내에 따라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진보와 자유를 한 번쯤 고민해보았던 사람들은 유시민의 지도를 지금에서야 같이 보고 있다는 황홀한 경험도 해 볼 듯하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문학과 인문과학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가치의 우열을 가늠하기 힘든 총 열네 개의 책들이 유시민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한다. 문학 작품이 총 다섯 편이고 나머지는 인문과학 책이다. 다섯 편의 문학 작품 중 세 편이 러시아 문학이며 책 후기에서 나와 있듯이, 더 쓰고 싶었던 작품들도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 문학이었다니 사상적 원천을 대략 가늠해볼 수 있겠다. 난 개인적으로 문학 작품에 대한 위대한 작가들의 철학적 고민에 대해 좀더 집중했으며 그들의 책에 대한 유시민의 서평이 흥미로웠다. 항상 문학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문학은 인간의 삶을 고민하게 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철학을 생성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인 것 같다. 아마 유시민도 그러하였을 것이기에 그의 마음에 남아있는 이런 문학 작품들을 나 역시 다시 한번 꺼내어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다 버릴 것이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에 관련한 서평,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인가'(p70), 푸쉬킨의 <대위의 딸> 서평,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p92),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슬픔도 힘이 될까'(p182),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p246)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인구론>서평에서 만난 맬서스의 피도 눈물도 없는 그의 논리적 편견에 눈을 뗄 수 없었으며, 푸쉬킨과 솔제니친의 문학에서는 삶에 대한 연민과 슬픔과 노여움을 바라보는 담담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먹먹했다.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에 관련한 서평은 헨리조지의 명쾌한 경제학 논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그의 사상을 통해 사회의 진보와 그에 따른 빈곤을 날카롭게 바라보게 하는 시각을 갖는 데에 도움을 받았다.

또한 새로운 책을 소개할 때마다 계속해서 지적 확장도 이루어졌는데  <종의 기원> 서평을 읽으면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대입해 보며 이타적 인간의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유시민을 만났으며, <역사란 무엇인가> 서평에서 나타난 인간의 진보에 대한 유시민의 믿음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참 반가운 것이었는데, 가장 최근에 읽었던 내용이라 그랬고,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의 법정 씬에서 강렬하게 나온 책이라 더욱 그랬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50면을 살면서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것이다'(p311)에서 말하는 것처럼 유시민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확언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역사의 진보, 도킨스의 말을 빌린다면 '문화라는 밈의 스푸'의 진화를 믿기에 그의 자유와 진보에 대한 믿음이 와 닿았다.(물론 김언수가 <눈먼자들의 국가-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편에서 세월호 사건을 통해 우리의 역사는 퇴보될 수도 있다는 주장에 심히 공감해 버렸지만 난 그것이 김언수의 문학적 역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의미 있는 책 읽기였다. 정당인 유시민이 아닌 '자유주의자', '지식소매상' 유시민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아쉽기는 하지만 때로는 정당인 유시민보다 작가 유시민이 더 좋다. 아마도 그건 그가 거친 정치 세상에 있으며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는게 안쓰러운 마음도 들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생각과 사상을 같이 공유하고 시대를 같이 읽어가는 작업에 같이 독자로서 동참할 수 있어 그럴 것이다. 얼마 전에 <나의 한국현대사>라는 책이 나왔다고 한다.  유시민의 책을 더 읽고 싶다. 그리고 '지도에는 길섶에 핀 들꽃이나 종달새 노래의 아름다음을 표시할 수 없다. 그런 아름다움을 맛보게 해준 책들은 전혀 다루지 못 했다'(p314)는 그의 고백처럼 그러한 것까지도 읽어 가고 싶다. 꼭 이런 책들이 나오길 바란다.

​덧붙이며)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와 항소이유서에 마지막 단락에 실린 멋진 문장임과 동시에, 항소이유서 때문에 유명해진 네크라소프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항소이유서 : 유시민 사이트 링크 http://www.usimin.net/?p=395 

차례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리영희 '전환 시대의 논리') / 청춘을 뒤흔든 혁명의 매력(마르크스,앵겔스 '공산당 선언') /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인가(맬서스 '인구론)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푸시킨 '대위의 딸') /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맹자 '맹자') /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최인훈 '광장') / 권력투쟁의 빛과 그림자(사마천 '사기') / 슬픔도 힘이 될까(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다윈 '종의 기원) /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베블런 '유한계급론') /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헨리조지 '진보와 빈곤) /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역사의 진보를 믿어도 될까(카 '역사란 무엇인가')

​다시 인구론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우리 모두는 갖가지 편견과 고정관념을 지니고 산다... (중략)... 그렇다면 나는 맬서스와 얼마나 다른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 신념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통념들 가운데 그릇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을 것인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속에도 그런 것이 없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인구론>과 맬서스는 금이 간 거울이다. 내 생각도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일그러져 있지 않는지 경계하면서, 거기에 나를 비추어 본다. 생각은 때로 감옥이 될 수 있다!(p91)

​저학력 저소득 고령층 유권자들이 유한계급의 속물주의와 물신숭배 문화를 충실히 대변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준평화적 야만 문화'단계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우리나라가 매우 심한 편이지만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혁신과 진보는 언제 어디서나 저속하고 품위 없다는 인습적 비난에 봉착한다는 베블런의 다음과 같은 분석에 위로를 받으면서 자문해본다. 나도 그처럼 팔짱을 끼고 냉담한 태도로 이 세상을 관찰만 하면서 살면 마음이 편해질까?(p243)

​카타리나 블룸이 묻는다. "그대는 신문 헤드라인을 진실이라고 믿습니까?" 나는 대답한다. "아니오. 믿지 않습니다. 헤드라인을 진실로 믿어도 되는, 그런 좋은 신문을 집에서 구독해보는 것이 내 간절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소망입니다."(p294)

​나는 단지 역사가의 작업이 그가 속한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가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흘러가는 것이 사건만은 아니다. 역사가 자신도 그 흐름 속에 있다. 역사 책을 볼 때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언제 집필되었는지 언제 출판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때로는 이런 것이 더 많은 비밀을 드러낸다. 만일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같은 책을 두 번 쓸 수 없다는 말 역시, 같은 이유로 진실일 것이다.(역사란 무엇인가 p60~61 재인용,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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