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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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
'이 모인 얇지만 무거운 책

NO. 01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세월호가 침몰하는 그 날에 나는 한창 아이들의 질문과 씨름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인지되어 있는 것을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배가 침몰하고 있대요.'라고 하는 말에 '침몰한다고 방송에 나오는 것을 보니 구하고 있겠네.'라고 얼핏 생각하며, 설명하는 방식을 점검하는데 열중했다. 이어 '전원구조 되었대요'라는 는 말에 '그랬군'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저녁에 뉴스를 보다 당황했다. '전원 구조'의 오보를 뒤로하고 학생들이, 승객들이 가라앉고 있었으며 잔혹하게도 TV는 그 무엇도 하지 않는 채 무심히도 그 모습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었다.

 방송은 연신 세월호 이야기로 가득 찼지만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생존자들의 숫자는 번복되기 일쑤였고, 행정부는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세월호는 가라앉고 있었고, 그 속에는 어린 학생들이 있었다. 처음의 그 놀람이 점점  쓰라림으로 다가왔다. 안타까웠다. 이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사실들. 선장을 위시한 선원들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것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인재의 징후들, 그리고 책임을 떠 넘기는 모습들을 보며 좌절했다.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에 웅크리고 앉아있었을 학생들 생각에, 그것을 안타깝게 지켜봤던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고통스러웠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4월은 비극이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 모든 수학여행, 현장학습 일정이 취소되었다. 배가 가라앉았기에 배를 이용한 현장 체험은 아예 통제되었으며, 계속해서 안전 교육 지침에 관한 공문이 쏟아졌다. 그리고 난 또 아이들의 질문에 씨름해야만 했다. '왜 배가 침몰했어요?', '왜 학생들이 가만히 있었지요? 나갔으면 살았을 텐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대답하기가 힘이 들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고민했던, 머릿속에 있는 것들에 대한 쉬운 설명은 여전히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아니 이번에는 어렵게라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숨이 턱 막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가늠하기도 힘들 만큼 총체적인 부실은 쉽게 설명되지 못하였다.

이번 달 초에 이 책을 읽었으니, 세월호가 침몰한지 200일쯤 되었다. 아직도 세월호 침몰은 진행 중이며,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사주','불온세력'이라는 딱지를 감당하며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식 잃은 것이 완장이냐'는 눈물날만큼 악랄한 말에도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 그래서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어쩌면 지극히 합당하다. 김애란, 김행숙, 김연수, 박민규, 진은영, 황정은, 배명훈, 황종연, 김홍중, 전규찬, 김서영, 홍철기. 열 두 명의 작가들이 세월호의 사건을 바라보며 글을 썼다. 아파하며 때로는 담담히 받아들이며, 때로는 분노하고, 좌절하며 글들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잊혀지고 있다고 생각한 그 아픔이 절대 잊혀질 수 없음을 느끼며 나도 묵묵히 읽어나갔다.

작가들의 시선에서 세월호의 침몰은 단순히 배의 침몰을 의미하지 않았다. 세월호를 통해 그들은 우리의 어긋난 삶을 말하며, 존재와 부재를 인식하게 하고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김애란은 특유의 ​단어의 섬세함과 언어를 통한 사건의 묘사로 세월호의 아픔 속에 나를 떨어뜨려 놓았고, 김연수는 담담하게 지식인의 목소리를 내면서 퇴보하는 현 상황을 이야기하며, 박민규는 직설적으로 세월호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며 침몰하는 국가를 비판한다. 전규찬, 홍철기는 신자유주의 속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며 황정은 작가는 이야기 속으로 나를 끌어들여 결국 그들의 깊은 슬픔에 빠뜨렸다. 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만큼 이 책은 사람이라는 개인의 시선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며 가독성도 훌륭하다.

특히 역사는 퇴보할 수도 있다는, 오이디푸스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은 지금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하는 김연수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편과 유가족의 정당한 싸움을 불온 세력이라고 매도하는 사회적 폭력과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의 연민의 눈을 비판하는 진은영의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편은 두세 번 다시 읽을 만큼 통찰력 있는 글들이었다. 문학동네 편집주간 신형철(요즘 난 이 사람 책에 푹 빠져 있다)의 엮으며 쓴 마지막 글에서는 이 책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읽을 수 있는데, 그의 말로 나 역시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고 싶다.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그들과 삶이 어긋나버린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한다. 

 " 요컨대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좋은 문학이 언제나 해온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 말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다. 4월 16일의 참사 이후, 상황은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실은 수장될 위기에 처했고, 슬픔은 거리에서 조롱 받는 중이다."(책을 엮으며, 신형철, p230)


NO. 02

 

 

차례

 

김애란 (기우는 것, 우리가 본 것) / 김행숙 (질문들) / 김연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 배명훈 (누가 답해야 할까?) / 황종연 (국가재난시대의 민주적 상상력) / 김홍중 (그럼 이제 무얼 부르지?) / 전규찬 (영원한 재난상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은 없다) / 김서영 (정신분석적 행위, 그 윤리적 필연을 살아내야 할 시간: 저항의 일상화를 위하여) / 홍철기 (세월호 참사로부터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 / 신형철 (책을 엮으며)

NO. 03

 

 

밑줄 긋기

 

 " 희생자 가족 중 누구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그곳에서 그런 식으로 불리게 될지 몰랐을 거다. 뉴스를 본 많은 이들이 희생자 이름 위에 자기 이름을 덧댔다. 혹은 자기 자식 이름을 포개며 같이 울었다. 중학생들은 처음엔 군대에서, 그 뒤엔 대학에서, 최근엔 고등학교에서 큰일이 났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라 자조했다. 모두 공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인재였다.(기우는 것, 우리가 본 것, p11)

 "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그러곤 그 농담을 끝으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 했다. 요즘 나는 자꾸 저 말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 경사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는 어떻게 푸나.(기우는 것, 우리가 본 것, p17)

 "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 연민과 시혜의 언설이 난무하는 사회가 어째서 뻔뻔스러운 사회인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백일 넘는 시간 동안 참담한 상황을 보며, 서글프게도 니체의 저 구절들이 이해되었다.(​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p75)

 " 그들의 정당한 싸움이 '몹시 가여운 사람'이라는 사회적 온정주의의 선을 조금이라도 넘어가면 그들은 곧바로 시체 장사꾼으로, 혹은 불온 세력으로 매도되며 사회적 폭력에 노출될 것이다.(​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p83)

 " 그 팔꿈치들의 간격이, 그 광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렸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고백해야겠다. 그 점점한 아름다움을 믿겠다. 그러니 누구든 응답하라. 이내 답신을 달라.(가까스로, 인간, p98)

"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정부가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려고 할 때, 그런 말들은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죽이려 든다.(책을 엮으며,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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