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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빙하의 부엉이
조너선 C. 슬래트 지음, 김아림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2년 3월
평점 :
탐험일지라고 한다면, 보통은 이미 오래전 죽은 탐험가들이 목숨을 걸고 적어내린 느낌을 주지만
이 책은 지금도 건강히 살아있는 미국인이 쓴 현대식 탐험일지이다.
대주제는 물고기잡이부엉이. 하지만 잘 몰랐던 러시아의 생활상이나 연해주 자연 환경 그리고 멸종위기종의 생태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는 생생한 자연 관찰일지이기도 하다.
줄거리.
멸종위기종을 연구하는 조류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조너선 C.슬래트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우연히 물고기잡이부엉이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당시에는 이 부엉이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서, 깊이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는 상황.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저자는 연해주에서 유일하게 물고기잡이부엉이를 연구하는 세르게이 수르마흐와 함께 현장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아무도 살지 못하는 환경에 서식하는 원기 왕성한 종이라는 명성으로 보면 물고기잡이부엉이는 시베리아호랑이 못지않게 연해주의 야생성을 상징한다. 숲을 공유하며 사는 이 두 종 모두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데, 연어를 잡아먹는 날개 달린 생명체 쪽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훨씬 더 적다. _p.19
여느 멸종위기종보다 더 알려진 바가 없는 수수께끼의 부엉이.
저자와 함께 부엉이 탐사를 하는 팀원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앞으로 안전하게 번식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인간이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부엉이의 생태와 특성을 파악하는 것. '보호'가 아닌 '보전'을 위한 연구인 것이다.
이 특별한 탐험은 초반에는 여러 방면으로 난항을 겪는다. 러시아 연해주는 야생 환경이 특히 잘 살아있는 곳이라 지역적 특성을 모르면 사람 한 명 없는 숲에 갖혀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야생동물에게 공격 당해 죽거나.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현지에서 만나는 러시아인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러시아인들은 술을 정말 좋아한다고 한다. 특히 보드카는 거의 매일 마시는 모양이다.
-러시아의 관습에 따르면 손님 대접을 위해 보드카 한 병을 식탁 위에 놓으면 다 비우고 나서야 치운다. _p.45
저자는 연해주 겨울의 추위와 갑작스런 기상 변화, 잘 발견 되지 않는 부엉이 흔적 뿐만 아니라 러시아 현지인들의 보드카 권유와도 싸워야 했다. 야생에서 낚시나 사냥을 하며 술마시는 낙으로 사는 현지인들에게 멸종위기 부엉이를 연구하러 왔다는 외지인은 특별한 재미거리이기 때문이다.
탐험은 늘 위험 투성이였고 갑작스런 폭설, 폭우, 강물의 높아진 수위 등은 연구팀을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까지 몰고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고 결국 물고기잡이부엉이의 발견, 포획, 생태 환경 개선까지.
목표했던 바를 이루고 잔잔한 감동까지 전해준다.
재미 포인트.
특히 물고기잡이부엉이와 저자의 교감에 대한 몇몇 대목은 재미를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부엉이 소리를 흉내내서 자기 영역에 다른 부엉이가 들어온 줄 알고 불같이 화를 내며 주변을 경계하는 부엉이의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는 장면에서는 나도 같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저자는 정말 다양한 러시아 현지인을 만났다. 그들이 들려주는 기상천외한 삶의 이야기도 이 책을 읽는 주요한 재미 포인트다. 술취한 의사가 해주는 맹장 수술을 그냥 받았다는 남자의 이야기, 여행처럼 바다에 나갔다가 조난당해 거의 죽다 살아난 남자의 이야기, 홀로 외딴 숲에 살며 정령의 존재를 믿는 착한 괴짜 남자 이야기 등.
자연에 사는 이들은 거칠고 규정지을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낯선 이들과 교류하며 서로를 돌보는 미덕은 우리 도시인들보다 훨씬 훌륭하게 느껴진다.
-이곳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고 챙긴다. 우리는 밀가루, 설탕, 파스타, 쌀, 치즈, 양파 같은 식료품을 갖고 온 다음 강에서 송어를 낚거나 현지인에게 고기를 얻곤 했다. _p.268
저자는 미국인, 주된 배경은 러시아, 주제는 멸종위기의 부엉이, 장르는 탐험일지.
낯선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읽는 내내 연해주 지도를 훑어봐야 했고, 모르는 단어가 거의 매 페이지마다 끼어 있어서 계속 인터넷 사전을 검색하면서 읽었다. 낯선 야생 환경을 상상하기 위해서 각종 나무와 야생동물들 이미지를 자주 찾아봤다.
쉽게 읽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책이고,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야생의 생생한 탐험을 간접경험 하게 해주는 진귀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환경피해가 심각해지는 작금의 시절에 아직도 이런 야생이 살아 숨쉰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도시 생활을 벗어나기 어려운 우리들에게 숨겨진 진짜 자연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
낯선 내용이 주는 신선한 지적 깨달음에 깊이 빠지고 싶다면,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