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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평점 :
*황금가지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쓰는 리뷰입니다.
무녀굴. 제목이 암시하듯 오컬트적인 요소 있음. 설화, 퇴마사, 귀신 나옴. 이 정도 키워드면 어떨까. 퇴마물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양 주먹을 꼭 쥐고서 로망! 하고 소리지를 사람이라면 강력 추천. 모처럼 본격 퇴마소설이 나왔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은 구입할 가치가 충분하다.
내가 알기로는 <<퇴마록>>과 <<신비소설 무>> 이후로 국내에 퇴마물이라는 것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이 밝히기를 창작물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라고 하니 퇴마물은 일단 국내에서는 자생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퇴마록의 영향력 하에 있을까. 나는 영향은 미비하다고 본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제마의식은 퇴마록보다는 영화 <<엑소시스트>>라든가 90년대에 자주 나왔던 재연 프로그램의 엑소시즘과 더 닮았다. 퇴마록은 국내편은 귀신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미 거기에서도 귀신과 싸우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특수효과(오오라를 쓴다든지 번개, 불 등을 쓴다든지)를 활용했고 세계편에서부터는 소소한 귀신 이야기보다는 능력자 배틀물에 가까운 전개를 보여준다. 반면, 이 작품은 비교적 현실적인 퇴마의식을 보여준다. 몸을 빼앗으려는 귀신과 고통스러워하는 육체의 주인, 그리고 퇴마사와의 알력은 엑소시스트에서 나온 전형 그대로이다.
여기에 설화, 밀교, 역사의 비극 등이 버무러져 400여 페이지가 전혀 아깝지 않게 중층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산스크리트어 진언이라든가 법구라든가 무녀나 퇴마에 대한 각종 전문 용어라든가가 일단 문외한이 보기엔는 설득력 있게 작중 곳곳에 배치돼 있다. 제주도 사투리는 제주도 출신인 내가 보기엔 약간 어조라든지가 잘 매치되지 않아 보인다. 그외엔 딱히 불만이 없다. 처음 책장을 열었을 때엔 언제 다보나 싶었지만 보다 보니 금세 마지막 장이더라. 읽는 재미는 충분한 책이다. 특히나 병원에서의 퇴마의식 장면은 영화를 보는 듯하게 긴장감 있고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장면을 꼽자면 난 그 장면을 꼽겠다.
그런데 그 뒤로는 바람이 새는 풍선처럼 서서히 쪼그라드는 것 같다. 주인공이 눈치챈 진상이라는 것은 딱히 기절초풍할 만한 게 아니었고 최종 스테이지로의 여정은 너무 약속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귀신 이야기의 백미는 얼마나 그들의 구질구질한 사연을 고개 끄덕일 수 있게 잘 늘어놓는가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게 잘 묘사됐다. 물론 그것을 여기에 적자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 자세한 건 패스. 듣고 들은 사연과 귀신의 원한과 주인공에 얽힌 이야기를 잘 따라가다가 마지막 스테이지에 이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안타까움이 절실히 느껴진다. 그렇다. 이 작품은 역시 전설의 고향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퇴마록의 라인을 따를 것인지, 전설의 고향을 따를 것인지에 대해 작가가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고 말한다면 심증이 지나친 것일까. 퇴마록에서 중요한 것은 액션이고 논리다. 거기에 집중하다보면 공포는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귀신과 누가 더 세나 도력을 다투고 있는데 공포가 끼어들 틈이 어디 있나. 공포소설의 귀신은 주인공과 힘겨루기를 하는 귀신이 아니다. 결국 귀신은 구축되기 마련이지만 인간은 거기에 못지 않는 피해를 입고 고통을 받는다. 이 작품의 귀신은 그런 귀신이다.
아쉬운 점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사하다보니 서술이 좀 재미 없어진다는 것과 캐릭터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주인공 진명은 그냥 무뚝뚝한 퇴마사일 뿐 별다른 특징이 없다. 과거로부터 고통받는다는 설명은 있지만 그게 다다. 인간으로서의 고민, 혹은 관심을 갖고 뒤따를 만한 매력요소가 부족하다. 금주 역시 마찬가지. 남편을 잃었다거나 딸 세연이 있다거나 하는 작중 상황 말고 그의 일상 속으로 밀착해서 무언가를 같이 고민해볼 기회가 적었다. 혜인은 특종을 위해서 물불 안 가리는 기자 캐릭터인데 이 인물까지 나오니 주요 인물들이 그냥 스테레오타입의 묶음 정도로 보인다. 건조한 공포소설적인 의도적인 연출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고교쿠 나츠히코의 작품을 생각한다면 역시 조금 아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