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향 가는 길
기호필 지음 / 북셀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성공한 신앙인의 간증집은 읽은 후 좌절감이 밀려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고난 가운데 기뻐하는 그 믿음으로 인해 마음이 따스해지고, 우격다짐의 신앙이 아닌 삶에서 피어나는 신앙이 주는 향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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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오래 읽었다.
겨우 한 꼭지 읽고서는 책 한 권 읽은 것처럼 마음이 지쳐 한 동안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다시 꺼내 두 꼭지 읽고 또 넣었다 뺐다... 그러기를 몇 차례...
그렇게 그렇게 힘들게 읽은 책이다.
천 명의 사람을 만나는 심정으로,
내 안의 천 가지의 번뇌를 마주하며...
이 책은 표지에 적힌 그대로 심리 치유 에세이다.
읽다보면 상대방의 문제와 그에 대한 작가의 답을 통해
내 문제를 발견하게 또 해결하게 되는 책이다.
책은 크게 자기 알기, 가족관계, 성과 사랑, 관계 맺기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자기알기에서는 작은 일에 상처 받는 사람,
자존감이 낮은 사람,
관계를 어려워하는 사람,
이중적인 자아를 가진 사람,
죄의식에 시달리는 사람,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중에서 ‘남편의 등 뒤에는 항상 다른 여자가 있습니다’에 담긴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유아기의 결핍감이 평생을 지배한다는 무서운 말에 딸들을 키우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생애 초기에 형성된 허구적 내면세계는 중년기로 접어들면서
대체로 자각되고 정리됩니다.
반평생 찾아 헤맨 사랑이나 삶의 목표가 실은 유아기의 결핍감에서 비롯된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허탈감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른바 ‘중년의 위기’를 겪은 후에는 뒤늦게 화투 패 잡던 손에 괭이를 들거나,
돌아와 조강지처 옆에 서게 됩니다.
간혹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허구적 내면세계의 환상을 청산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철들자 망령’이라는 속담도 있기는 합니다. (77쪽)

2부의 가족관계에서는 자식과의 관계를 어려워하는 부모,
언니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동생,
집과 가족이 싫은 여대생,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괴로운 여학생,
일도, 사랑도 꼬여 힘들어하는 이혼녀,
남편에게 실망한 아내가 등장한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탓인지
 

2부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이 많이 가슴에 와닿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신화적 살해관계입니다’에서 나온 아래의 글귀들은 엄마에 대한 어쩌지 못하고 있던 마음들이 갈 바를 잘 가르쳐 주었다.

아버지와 “화해해야 한다”는, 사십대 중반의 성인이 찾아낸 당위성은 한 켠으로 밀어두세요. 이제 아버지는 생각이 굳을 때로 굳은 노인입니다. 그 분의 마음을 바꾸려고 헛되이 노력하지 마시고, 그 분을 있는 그래도 인정한 상태에서 마인드 님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아버지의 태도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굳이 아버지와 화해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과 같은 무거래의 상태가 계속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에 대한 감정들 때문에 자신이 불편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그리고 자식과의 관계에 그 낡은 감정이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조절하시면 됩니다. 100쪽

또 아래의 글은 1남 5녀 속에서 ‘왜 우리는 다른 가족들처럼 서로 위하고 다독이는 형제자매가 아닐까’ 슬퍼했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우리는 형제자매가 태어나면서부터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성에 대한 환상처럼 자매애나 형제애에도 얼마간의 환상이 존재합니다. 형제자매는 태어나는 순간 결코 서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본질적으로 경쟁하는 관계입니다..... 성장하나 후에도 형제자매는 각자에게 부과되는 책임과 의무를 견주어가며 서로 시기합니다. 부모가 사망한 후 유산을 놓고 싸우는 자식들을 볼 때면 “저들이 죽은 부모한테까지 덜 받은 사랑을 내놓으라며 조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06쪽)

사실 우리 집도 이와 비슷한 문제로 속앓이를 했다.
딸 넷을 내리 낳고 아들이 태어났으니 엄마 입장에선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애정을 지녔으리라.. 거기다 가부장성이 최고조에 다다른 경상도 어느 시골 사람들이었으니..
하지만 딸들 입장에서는 편애 없이 딸들을 키우셨던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와 함께 동생들 공부시키느라 고생한 시간들이 딸이라는 '성' 에 가려져,
거의 막녀격으로 태어나 가족을 위해 그닥 희생을 경험하지 않은
한창 어린 남동생에게 그 모든 찬사와 재산이 가는 것들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드러난 현상만 보면 재산을 탐내는 딸들로 비춰질 수 있지만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언니들 하나하나 돈에 대해 그리 연연해하지 않는 스타일들이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결혼을 못 하고 있을 때
다들 아들처럼 여기고 안타까워했다. 
모두 암묵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친정 재산을 아들에게 주리라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전후로 새로 시집온 올케에게 
지난 날 고생의 장막을 아들이 내린 듯,
딸들은 푼돈이나 준 듯-물론 아들을 띄우기 위함이었겠지만-
표현한 엄마의 표현에 다섯 딸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다 못해
재산분할권을 운운하기도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친정 재산 받아서 고스란히 기부하더라도 나는 받아내겠다고 선포했다.
돈에 있어 가장 아쉬울 게 없고 욕심 없다고 그나마 알려져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다.
나를 비롯한 언니들의 분노와 재산을 탐내는 듯한 태도들의 근본 이유는
돈이 아니었다.
사랑에 대한 갈구였고 인정에 대한 욕구였다.
그토록 애타게 분을 드러내며 사랑해달라고 부르짖었지만
엄마는 다섯 딸을 저버리고 아들을 택한 게 결론이다.

사실 가정이란 원래 행복하고 절대 평화로운 게 아니라 무수한 갈등을 해결하고, 서로의 욕망을 협상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절하는 곳입니다. 가정 폭력이나 가족의 해체는 그런 갈등 조절과 의사소통에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113-114쪽)

드라마 속, 내가 아는 가족들은 죄 서로를 위하고 이타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래서 가족 안에서 갈등이 일 때면 ‘우리 가족만 왜 이런가’ 하고 고민하게 된다.
지금은 딱 우리 부부와 딸 둘이라 큰 갈등 없이 살지만 결혼 전 가족은
훨씬 방대했고 복잡한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작가는 원래 문제 많은 게 가족이라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니가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정상이라고 ‘비정상’이라 여긴 나를 정상의 자리로 옮겨주었다.
고마웠다.
성폭행 당한 피해자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내 잘못인 듯, 내 탓인 듯 여겼던 것들에 대해
“아니야 나도 그래, 쟤도 그래, 우리 다 그래...”하고 움츠린 내 어깨를 도닥여주었다.
책 한 권 전부 귀하고 좋았지만 특히 나는 2부를 통해 많은 해방감을 맛보았다.


성과 사랑을 다룬 3부에서는
분노와 의심으로 사랑을 망치는 이,
쿨한 관계를 맺고 싶은 이,
연애하기도, 헤어지기도 두려운 이,
사랑에 집착하는 이,
나쁜 여자/ 남자에게 끌리는 이,
사랑할 때 잔인하고 파괴적이 되는 이,
이별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
헤어질 이유를 찾는 이,
성욕이 없는 이,
성폭행 이후 자신을 놓아버린 이 등 성과 관련한 고민들이 다루어진다.
그중 나는 ‘나쁜 여자/ 나쁜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요’에 나오는 글에 무척 공감이 갔다.
  

나를 만나면 그가 개선될 거라는 생각은 극단적 나르시시즘이거나,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방어의식입니다.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관계 속에서 내밀한 만족과 안도감을 느끼는   

자기 파괴적 성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나쁜 여자/ 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상대방을 만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콤플렉스가 왜곡된 신호를 보내어 저쪽의 콤플렉스를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191쪽)

그리고 그런 이들을 향해 작가는 이렇게 조언한다.
 

나쁜 상대방을 바꾸려 할 게 아니라 그런 이들을 불러들이는 자신의 기질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자기 중심성을 개발하고 ,
자신의 행복과 만족감을 사랑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동시에 바람직한 사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도 키우시기 바랍니다. (193쪽)

그렇다.  속된 말로 끼리끼리 만난다.  좋은 사람 만나고 싶다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정답이다.  이제까지 어디서 문제 많은 사람만 만났다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워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이다.
작가는 이런 내 마음을 아래처럼 표현했다.
 

천둥치듯 이별을 통보받더라도, 번개처럼 연인이 떠나더라도 아무것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번 사랑을 통해 많은 것을 누렸고 큰 성장을 맛보았습니다. 사랑에서 이별까지, 그 모든 과정의 행복감과 불행감을 풀코스 정식으로 골고루 섭취하게 해준 연인에게 감사하고, 그의 행운을 빌어주세요. 그런 다음 한층 업그레이드된 마음으로 새로운 사랑을 맞으시면 됩니다. 다음 사랑은 더 충만하고 안정될 것입니다. (207쪽)

 사랑은 한만큼 유익이다.
똑같은 고난을 당해도 어떤 이는 그 고난 때문에 더 표독스러워지는 한편
또 어떤 이는 성숙해간다. 사랑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마지막 4부의 관계맺기에서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사람,
화를 내거나 참는 일이 불편한 사람,
죽고 싶은 사람,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본 사람,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긴장된 사람,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괴로운 사람,
나르시시즘 때문에 사회생활이 어려운 사람,
직장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글을 읽다보면 내가 썼나 싶기도 할 만큼 공감이 가는 내용도 많다.
동시에 내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할 거란 생각이 들면서  

한심하게 여겼던 이, 짜증났던 이들에 대한 연민이 절로 생겨났다.
그중 자신을 비난하는 제자의 글을 본 선생님에게 들려준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는 작가의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보면서는, 어쩜 나와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하고 절로 탄복했다. 이 부분은 마지막에 나누기로 하고 4부에서 내가 건진 보석은 아래의 글이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반복적으로 자신을 세상에 맞추어 나가는 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황야 님은 그런 행위를 ‘타협’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하고 계신 듯합니다.
지만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대접을 수용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도덕이나 정의조차
입장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세상과 어울려 사는 성숙한 태도입니다. (294쪽)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겠다는 말로 곤조를 부렸던 내 과거사를 참회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나를 위해 적은 듯한 이런 글귀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고행하는 수도자의 심정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10년이란 세월 동안 마음다지기를 했음에도 여전히 얄팍한 내 내면을
가감없이 마주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몸과 마음으로 힘들게 읽은 탓인지 서평도 한없이 길어진다.
마지막으로 책 마지막 장에 적은 나의 글을 옮기는 것으로 서평을 마무리할까 한다.
 

사랑받고 싶으나 사랑받지 못할 때, 

사랑받았어야 했으나 사랑받지 못했을 때

채워지지 않은 사랑에너지의 공간은

때론 ‘분노’로 때론 ‘집착’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변모한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렇다. 

나의 글쓰기는 불행에서 시작되었고
  

불행할 때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그것 또한 사랑해달라는 절규였음을....

2010.8.14


  이 글은 의와 화평이 만나는 방(http://blog.daum.net/imbeing/?t__nil_login=myblog)에 올린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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