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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리더십
심재희.한화철 지음 / 메가트렌드(문이당)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과거에 축구를 말할 때는 축구장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을 많이 하곤 했다.
여자 입장에서 볼 때, 축구는 22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조그마한 공 하나를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며 골대에 그거 하나 넣어보겠다고 기를 쓰는 우스운 경기라는 생각도 종종 든다. 하지만 그렇게 치면 이 세상에 우습지 않은 스포츠가 어디 있으랴.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일견 그렇게 우스워 보이는 행위가 전 세계의 사람들을 미칠 듯한 흥분을 넘어선 광분의 상태로 몰아넣는 데 기가 막히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효과뿐이랴. 경기의 승패를 떠나서 훌륭한 게임을 보고 난 순간에는 가슴 뭉클한 감동과 무한한 존경심마저 든다. 필드 위를 뛰어다닌 땀범벅의 선수들과 그 선수들을 이끈 감독 및 스태프진에 대해 진심어린 경의를 바치는 것에 조금의 주저도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강렬한 효과로 말미암아 과거 독재 시대에는 군중을 꾀는 몹시 효과적인 수단으로도 사용된 전적이 있는 찝찝한 과거의 축구며 야구며 농구 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제, 축구를 단순히 대중 선동과 흥미를 위한 게임으로 보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엔간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축구의 잠정적인 서포터즈화 되어버린 상태에서, 우리의 눈을 시원하게 해 준 것이 있으니, 바로 축구의 종가라는 잉글랜드의 축구다. 프리미어리그라던지, 챔피언스리그라던지, 몇 년 전에는 머릿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단어가 일상에 친숙하게 자리 잡은 것도 그 무렵부터이다. 그 와중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오래된 할아범이라는 퍼거슨 감독이 우리의 훈남, 박지성을 간택하였고, 그저 우리 지성 오빠(미안, 오빠라고 딱 한번이라도 불러보고 싶더라 ㅡ,.ㅡ)가 종가에서 뛰게 되었다는 생각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른바 맨유에 은근한 호감을 보이게 된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보다 보니 보이는 것이 맨유의 완소남, 훈남, 고마운 꽃미남 선수들. 거 외국물이 좋긴 좋은가보라고 영화 「300」을 보면서 느낀 생각을 맨유를 보며 다시금 복습하게 만들어주신 정녕 고마운 분들이셨다. 경기가 끝난 후 훌렁훌렁 벗어던지시는 푸른 초장의 긍정적인 육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미 통제를 벗어난 내 입이 중얼거리는 대사는 ‘니들도 저녁은 지옥에서 먹을 거냐?’ 홀로 득도하여 빠져버린 무아지경의 황홀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현실은 꿈만 먹으며 살기엔 배가 고프다.
이 책의 한 구절에서 ‘건축물 자체는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그것에 이야기가 붙으면 역사가 되고 상징이 된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동일한 이야기를 하겠다.
‘축구 자체는 스포츠에 불과하지만 그것에 이야기가 붙으면 역사가 되고 상징이 된다.’
맨유는 그저 그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하나의 팀이었지만, 1958년 비극의 역사와 1999년 불굴의 감동의 역사를 위에 입으며 드디어 신화로 등극했다.
그들은 팀의 절반이 사고로 죽어버리는 비극을 딛고 일어났으며, 축구사에 유례없는 트레블 달성의 신화를 창조했다. 이것이 감동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맨유의 축구 스타일에 있다. 맨유는 가진 자의 방어 축구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동물 같은 근성의 폭발하는 축구다. 그리고 그 뒤에 이런 스타일을 결정짓는 날카로운 승부사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있다.
퍼거슨 할애비를 소개하기 위한 서론이 너무 길었다. 축구에 문외한인 여자 나부랭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선 자신부터 설득할 것! (그러나 딱히 설득할 건 없다! 핫핫! ㅡ,.ㅡ) 장황한 서설의 요지는 맴모스급 무시무시한 대형 팀을 무려 20여 년 동안이나 좌지우지하며 떡 주무르듯 주물러 온 이 늙은 감독은 도대체 무슨 재주가 있어 이런 엄청난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을꼬 하는 궁금증이다. 거대한 팀의 거대한 스타들을 말 한 마디로 복종시키고, 눈치 보며 설설 기게 만드는 신통한 재주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뿐인가? 훌리건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분들은 모두 알다시피 그들이 자행하는 막강하고도 생산성이란 전혀 없는 그 파괴력에, 어이가 상실되고 눈가에 쓰나미가 차지 않던가. 그런 폭도 1분 5초전 같은 무리가 65세 넘은 그 할애비 감독의 말 한마디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철썩 같이 믿겠다는 어린양의 유일신앙을 고백하며, 두 손 모아 완두콩 즈려 잡고 메주가 쑤어지기를 기다린다. 이쯤 되면 우리는 나지막이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오빠, 멋져요.”
다윗이 골리앗의 대결이, 신빙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이 이야기가 왜 그토록 오랜 시간 회자되고 회자될 정도로 인기를 끈 줄 아는가? 솔직히 갑옷으로 무장한 그렇게 커다란 장사를 돌멩이 하나로 때려죽이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요즘은 어린 아이도 그런 말은 믿지 않는다. 종교의 힘이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좀 더 대중적인 마인드로 보면 이 스토리는 거대한 강자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 싸우고, 싸워 이기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윗이 이길 때 우리는 마치 우리가 우리를 짓누르는 무자비한 현실의 강자와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긴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맨유는 현실의 대리자 다윗이다. 시즌의 시작은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불협화음도 끊이지 않게 들려오며 시작하지만, 일단 시즌이 시작되면 맨유는 오로지 팀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승리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한다. 현란한 기교의 승부가 아니라 골대를 향해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드는 열정의 경기를 펼친다. 그렇다고 맨유 선수들의 기교가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당연히 그들은 최고다. 여기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승리를 향한 투지가 기술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거침없는 기백에 그토록 미친 듯이 열광하는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어떤 사람이 골리앗에게 가는 다윗에게 이렇게 물어봤단다. “너 무섭지 않니? 저렇게 큰데.”
다윗은 가만히 골리앗을 바라보며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흠, 저렇게 크니 일단 빗맞을 일은 없겠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생의 골리앗은 돌팔매 하나로 쓰러지지도 않는다. (과연 트럭으로 돌덩이를 들이부어도 쓰러질지 의문이다.)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여전히 하나다. 저 커다란, 그래서 적어도 빗맞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골리앗을 향해 던지고 또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던지다 보면 언젠가는 쓰러질 수도, 평생 가도 쓰러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안심하고 던져도 되는 것만 해도 어딘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면 내가 너무 소심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