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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가족
권태현 지음 / 문이당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인생, 마라톤을 시작하다.
42.195km.
지금 어디까지 온 것일까? 앞으로 얼마나 더 달려야 할까? 포기할 수는 없는 걸까? 과연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 걸까?
「인생은 경기장과 같아서 태어난 순간부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기를 시작한다. 방법을 가르쳐주는 법도 없고 연습도 없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이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주저하지 않고 경기장에서 퇴장해도 좋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말이다. 그는 서른여섯의 이른 나이로 스스로 경기장에서 퇴장해버렸다. 사람들은 인생을 흔히 마라톤에 비유한다. 시작은 누군들 힘차지 않을까. 달리다보면 스스로의 스피드에 황홀할 때도 있을 것이다. 피곤치 않은 등과 다리가 자랑스럽기도 할 것이다. 길가에 주저앉은 초라한 노년의 선수들이 얼마나 한심해보이던지. 어서 빨리 완주를 하고 결승점에 들어가 승리의 환호성에 흠뻑 취해 트랙을 돌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데 달리다 보면 어느 샌가 나를 앞질러 달려 나가는 젊디젊은 선수들을 마주치게 된다. 피곤을 모르던 내 등과 다리가 어느 순간부터는 고통을 호소한다. 등뼈가 부서지고 다리의 근육이 뒤틀려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 순간이 찾아온다. 지금껏 묵묵히 버텨준 너덜너덜한 심장과 폐는 가슴이 터질 듯이 발길질을 해대며 당장 그만두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때가 되서야 주저앉아 쉬고 있을지언정 아직 트랙을 내려서지 않은 노년의 선수들의 위대함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마라톤을 시작하다.
민시우는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당하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지만 곧 부도를 당해 사업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자신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부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가족이 함께 몸담을 집 한 칸도 챙기지 못한 그는 결국 가족들을 뿔뿔이 친척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노숙하는 처지가 된다.
흩어진 가족은 참 연약하다. 전업주부였던 아내 지은은 학습지를 돌리며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어보려고 하지만 처한 상황은 버겁기만 하다. 고등학생인 큰 아들은 싸움질에, 삐끼 알바에, 오토바이 폭주족까지 차근차근 양아치의 길을 향해 돌진하는 중이고, 중학생인 둘째딸은 백화점에서 물건을 슬쩍하다 걸려 전화가 오곤 한다. 유약하기 짝이 없는 초등학생 막내아들은 완전히 의기소침해져 있다. 몰아치는 빚쟁이들의 독촉전화와 자고 일어나면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는 서울역 노숙생활만 해도 울고 싶을 지경인데, 아이들은 말썽에, 아내까지 사우의 속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 여유가 되지 않아 가족을 돌볼 수 없는 자신을 무심하다고 생각하고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가 야속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시락체인점을 시작하지만, 벼룩 등에 화전을 내 먹고 거지 똥구멍의 콩나물을 빼먹는 이 빌어먹을 세상은 시우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새 사업조차 일장춘몽이었음을 선언해 버린다. 자아, 마지막 길이 막혀버렸다. 이제 시우는 세상이라는 경기장에서의 퇴장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한다. 속상하게 하는 아이들과 냉정하게 고개를 돌려버린 아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존재일 수밖에 없는 가족. 그 가족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기기 위해 시우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벼랑을 향해 돌진한다.
마치 우리 집, 내 가정의 말 못할 속사정을 보는 듯해 낯 뜨거운, 이 궁상맞은 스토리의 결론은 미묘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우는 더 이상 그에게 생소하지 않은 실패를 또 한번 경험한다. 자살조차 실패한 그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결국 가족들 사이에서 눈을 뜬다. 여전히 빚은 산더미 같으며 새 사업은 사기당한 채이다. 가족이 모일 방 한 칸도 없고, 시우가 노숙자 상태인 것도 변하지 않았다. 뭐 하나 변한 것 없는 상황 속에서 지은은 남편이 살아난 것에 기뻐하고, 아이들은 허둥지둥 달려와 아버지가 눈 뜨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 서로 미워하며 원망해도, 모여살 집 한 칸 없이 길 위에 흩어졌어도, 그들은 가족…… 결국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 혹은 희망
민시우는 노숙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아니, 호의는 바라지도 않는다. 뒤통수나 치지 않아도 고마우련만, 세상은 때때로 잔인함을 과시한다.
비단 그에게 뿐이겠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들에게 세상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고자 회사에 충성하며 버텨내려 노력해보지만, 결과는 비참하다. 밀려드는 대체품들의 물량공세에 결국 사회에서는 떨려나고, 회사에서 고군분투한 그 기간 동안 가족들과 어떤 유대감도 형성하지 못한 탓에 사회에서 떨려난 가장은 가정에서조차 외면당한다. 누구를 위한 충성이며 노력이었는지 스스로도 모를 지경이다.
이 시대의 남자들은, 아버지들은, 가장들은 갈 곳이 없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을 건네는 방법을 모른다. 그네들의 아버지들이 했듯이 벌어온 돈을 퉁명스레 내던지며 속으로 사랑한다 말해야 하는 줄 아는 소심하고 연약한 사람들이다. 알고 보면 미련하게 우직한 사랑만 가득하다 한들 말하지 않은 그 속을 누가 그렇게 잘 헤아려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오해와 서운함이 쌓이고 결국 상처받는 건 가족 모두이다.
가족이란 참 오묘하다. 간사하다. 분명 혼자 만들기 시작한 가정이건만,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가정을 꾸리고 나자 가족은 더 이상 혼자서 없애거나 그만둘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마치 자식처럼. 자식이라는 것이 없을 때는 전혀 필요도 없고 생각 한번 해보지 않았건만, 한번 태어나고 나자 이제는 이것이 없으면 똑 죽을 것 같아지지 않던가.
내가 가족을 부양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 역시 가족에 의해 지탱된다. 마누라와 새끼들이 날 보고 입 벌리고 밥 다고~ 밥 다고~ 악다구닐 칠 때마다, 이 왠수들~ 싶으면서도 그걸 보고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나게 되지 않던가. 앞에서야 저 왠수들 먹여 살리려고 회사일이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내가 일을 못 그만둔다 라고 투덜대지만, 뒤돌아서서 저게 내 뒷배려니 싶어 히죽 웃으며 어깨를 쫙 펴고 장딴지에 힘주고 다시 한번 일어서지 않던가. 가족은 굴레다. 희망이다. 내 등짐이고, 내 유일한 뒷배다.